[커버스타]
<맨인블랙2>로 내한한 윌 스미스 & 토미 리 존스
2002-06-12
글 : 김혜리
사진 : 정진환
한국에 증가하는 외계인을 잡으러 왔습니다

‘맨 인 블랙’, 줄여서 MIB. FBI도 CIA도 KGB도 그들에 비하면 극히 따분하고 건전한 일상을 영위하는 공무원일 뿐이다. MIB의 임무는 외계인들의 출입국 관리와 보호 관찰, 그리고 가끔 지구를 멸망 위기에서 구하는 것. MIB 요원들은 개인은 현명하지만 집단은 우매하다는 판단 아래 우연히 비밀을 접한 민간인들에게 사정없이 망각 플래시를 터뜨린다. MIB 요원의 방문을 자주 받는 UFO 목격자와 과학자 가운데 질긴 기억력의 소유자들은 방금 사입은 것 같은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 개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완전한 말투를 구사하는 이들이, 도무지 사람 같지 않았다고 간혹 증언하곤 한다. 그렇게 흔적도 없이 잊혀지는 것이 MIB 임무의 중대한 대목이라면, 냉정히 말해 <맨 인 블랙> 1편과 2편의 토미 리 존스(56)와 윌 스미스(35)는 MIB 요원 자격 요건에 대단히 부적합한 남자들이다. 난센스를 허용하지 않는 육중한 존재감으로 사방의 공기에 고압전기를 흘리는 토미 리 존스와 누구랑 마주앉건 상대를 귀빈처럼 흐뭇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윌 스미스를 쉽게 잊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다른 별 사람 정도가 아닐까.

홍콩, 대만 등지 기자까지 초청한 <맨 인 블랙2>의 아시아 정킷을 위해 지난 6월6일 오전 가족을 동반하고 서울에 당도한 두 스타는 “겉으로는 영화 의 홍보가 공식방문 목적이지만, 진짜 임무는 한국지역에 외계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른 조사”라는 윌 스미스의 귀여운 조크로 입성 인사를 대신했다. 언젠가 로버트 미첨은 “스튜디오 시스템에서는 잘할수록 더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고 불평했다. 1편보다 특수분장과 효과로 빚은 외계인 캐릭터와 그들의 소동에 훨씬 더 긴 시간을 할애한 는, 화려한 재능과 그 재능을 장악하는 탄탄한 손아귀까지 지닌 두 배우에게 혹시 좀 심심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을까? 베벌리힐스의 힙합 키드와 텍사스 카우보이가 이루는 보색 대비의 두 사람이 재회한 노부부 같은 친밀함을 과시하는 것은 어쩐 일일까? <씨네21>은 그러저러한 호기심을 품고 입국 이튿날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검은 옷의 사나이들에게 미팅을 청했다.

씨네21: 할리우드에서 날아오는 뉴스들은 이구동성으로 올해 여름이 박스오피스 측면에서 사상 최고의 여름이 될 거라고 야단이네요. 여름 시즌의 좋은 면과 싫은 면은 뭐죠?

토미 리 존스(이하 토미): 1년 중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계절인데 싫을 까닭은 없죠.

윌 스미스(이하 윌): 무엇보다 애들이 학교를 안 가니까.

토미: 여름은 낚시하기도 최고지. 오전에 낚시 갔다가 저녁에는 영화를 보러 가고!

씨네21: 사는 곳에서 해변이 가까운가요?

토미: 목장을 하나 갖고 있는데 그 근처의 호수와 강에서 해요. 우리 딸이 태어나던 주에 굉장히 큰 월척을 잡았다 풀어준 추억도 있죠. 음… 그런데 실은 가장 가까운 극장이 65마일 떨어져 있어서…. 하루 날 잡아 낚시도 하고 영화도 보기는 쉽지 않네요.(웃음)

씨네21: 하지만 여름영화 홍보하느라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금처럼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지겹지 않나요?

윌: 아니, 정말로 즐겨요. 특히 이번엔 모든 인터뷰를 이렇게 친구들과, (동석한 스페인어 개인교사에게 뽐내듯) 콤파니에로 맞죠?, 같이 다니는 기쁨을 누리고 있으니까.

씨네21: 전통적으로 공상과학 판타지는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장르지만 <맨 인 블랙>은 성공했습니다. <맨 인 블랙> 의 특별함은 덩치 큰 여름영화인 동시에 위트와 아기자기한 스토리도 갖춘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도 가 특수효과로 시각화되기 이전 시나리오 단계에서 어떤 장점을 보았기에 선택했을 텐데요.

토미: 아주 넓은 의미에서 ‘에일리언이 된다’(alienated)라는 주제는 모든 인간에게 호소한다고 봐요. 지구상의 모든 나라 모든 종류의 사람들은 한번쯤 어떤 식으로든 ‘외계인’의 입장에 섭니다. 무수한 문학작품과 철학도 같은 문제를 다뤘죠. 요즘 같은 테크놀로지 시대에는 더 중요한 주제구요.

윌: 우리 사회에 암약하는 비밀조직이 있을 거라는 상상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 사람들을 자극해온 생각입니다. 보이는 영역 바깥에 뭔가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 정신의 진화에서 매우 자연스런 요소죠. 스토리의 심장부에는 그런 사람 마음을 정확하게 꼬집는 힘이 있어요. 게다가 시끄럽고, 밝고, 컬러풀하고, 재미있고.

토미: 의 원안은 알다시피 만화책인데, 훌륭한 만화들은 인간이 만든 내러티브 역사가 보여주는 원형적이고 신화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예컨대 세계의 안전을 지키는 고독한 수호자 슈퍼맨 이야기도 그래요. 그러므로 의 틀이 새로운 것은 아니죠. 하지만 은 별나긴 해요. 아, 여기서 별나다는 건 윌이 방금 말한 밝고, 쿨하고, 재밌다는 뜻입니다.(웃음)

씨네21: 완성본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33분짜리 데모 버전을 보면….

윌: 아, 전체 러닝타임이 39분입니다. 다음주엔 끝부분을 붙인 39분짜리 버전을 보게 될 겁니다. (순간 속는 기자를 보고 즐거워한다)

씨네21: (순간 속은 것을 창피해한다) 속편에서 J는 MIB 조직에서 예전의 K가 그랬듯 권위있는 고참이 됐다가 K가 복귀하자마자 다시 주니어 처지가 되고, K는 우체국장으로 초야에 묻혔다가 다시 우주에서 가장 경외받는 사나이로 돌아오는데요. 그 과정의 심리적 경험을 묘사해주세요.

윌: 방금 당신이 다 말했잖아요!

토미: 그렇지만 우리도 더 좋은 답변을 위해 자문자답을 하기도 하니까. 윌, 스스로에게 뭘 묻고 싶지?

윌: 1편 이후 5년 동안의 사연은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죠. J는 5년간 수석요원으로 성장하면서 선배 K의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받죠. 그 고독과 단조로운 삶을. 그에겐 “잘했어!”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MIB 요원에게 누군가 “세상을 구원해줘서 고마워요”라고 치사한다면 그건 임무를 수행 못한 거잖아요? 그게 바로 MIB라는 직업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효과이고 K가 왜 그런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해명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씨네21: 한데 1편 끝에 J의 새 파트너가 됐던 L요원(린다 피오렌티노)은 어디로 사라진 거죠?

윌: 음, 감독에 따르자면, L은 MIB 요원 일에 싫증이 나서 시체들을 상대하는 편이 낫겠다고 결심하고 기억의 소거를 자청했답니다.

씨네21: 33분 버전의 는 CG 스펙터클이 대폭 늘어나 어찌 보면 애니메이션 같은 인상이 강해졌어요. 블루스크린 앞에서 허공에 대고 연기해야 하는 일이 많았겠어요.

윌: 페이크 숏과 그린스크린 앞에서 한 연기가 많았죠. 결국 ‘척’하는 연기가 많았던 셈인데 그거야 배우인 우리의 생업 아니겠어요? 덕분에 완성된 영화를 보러 갔을 때는 나 역시 관객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처음 보는 입장이어서 신났어요.

토미: 어떤 외계인을 상대하고 있는지 감은 있었죠. 모델이나 스케치를 봤고 때로는 감독이 앞에 서서 “자, 여기 커다란 장갑처럼 생긴… 뭔가가 있는 겁니다!”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고.

씨네21: 의 각양각색 외계인 중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토미: 홍관조처럼 큰 부리를 가진 키 7피트짜리 버드맨이라고 있는데, 우아한 모습이 내 취향입니다.

윌: 나는 단연 내 파트너였던 말하는 퍼그 강아지 프랭크죠.

토미: 맞다. 나도 버드맨은 두 번째! 개의 연기를 어떻게 연출한 거냐구요? 그야 랭귀지 스쿨에 보냈죠.(웃음)

씨네21: 영화 사상 최고의 버디를 꼽는다면?

윌&토미: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로렐과 하디, 애보트와 코스텔로….

씨네21: 두 사람의 남자배우가 멋진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윌&토미: (앞다퉈) 콘트라스트! 기교! 엄청나게 잘생긴 외모! 지력! 유머에 대한 이해, 앗! 그건 내가 말했어야 했는데! 근사한 옷!

윌: 그리고 귀요! 큰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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