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상황에 빠져들기, '시민덕희' 배우 라미란
2024-01-25
글 : 이유채

라미란 배우는 “<시민덕희>의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가면서 두번 놀랐다”고 첫인상을 밝혔다. 처음에는 “지극히 평범한 개인이 보이스 피싱 총책을 검거했다는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니 “큰일을 해내겠다는 의도 없이 용기를 낸 인물이 존경스러웠고 그의 삶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를 더 놀라게 한 건 “중국 칭다오 파트가 영화적인 상상력이 발휘된 허구”라는 점이었다.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을 이렇게까지 있을 법하게 그려내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후반부에 빠져들었고 어느새 덕희가 되어 이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라미란이 파악한, 덕희를 덕희이게끔 하는 핵심은 “어떤 극한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붙들고 굳건하게 살아가는 씩씩함”이었다. 이어서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성격은 타고난 측면이 크고 싱글맘으로서 혼자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덕희가 어떻게 중국 칭다오로 직접 날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지를 납득시켰다.

<시민덕희>를 촬영하는 동안 라미란은 “장면 속 상황으로 들어가 맡은 인물이 어땠을까를 계속 상상”하는 작업을 했다. 예컨대 덕희가 은행에서 손 대리(공명)를 찾는 도입부 장면을 준비할 때는 “여성 은행원이 ‘제가 손 대리’라며 나오고, 주변에서는 보이스 피싱이라는 말소리가 들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을 때 덕희가 얼마나 아득해졌을지”를 시뮬레이션했다. 하도 반복하다 보니 그 신을 찍을 때 “정말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게, 호흡 곤란이 온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을 정도로” 주저앉게 됐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사실 이같은 “시뮬레이션 접근법”은 라미란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연기법이다. “많은 사랑을 받은 <응답하라 1988> 때도, <정직한 후보> 때도 그랬지만 내 색깔을 캐릭터에 입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나를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 틀리지 않을 정도로 대사를 외우고 이미 모든 답이 들어 있는 대본에 충실하자는 쪽이다. 그런 뒤 현장에 가서 상대 배우가 주는 에너지를 받아 최종적으로 조율한다.” 감독에게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내가 뭐라고. (웃음) 영화의 지휘자는 감독이고, 감독이 오케이해야 오케이인 거다.”

라미란이 뽑은 <시민덕희>의 명대사

“내 잘못 아냐. 절실한 사람 등쳐 먹는 네가 잘못한 거야.”

공항 화장실에서 총책과 일대일로 맞서는 신에서 덕희가 했던 대사다. 잘못은 피해자인 자신이 아닌 범죄자가 한 거라는 말을 덕희는 가장 하고 싶었을 거다. 그만큼 이 신을 연기할 때 더욱더 당당히, 대사도 힘주어 뱉으려고 했고 자존심이 짓밟히는 게 죽기보다 싫은 덕희의 성격을 분명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에게도 덕희의 이 말이, <시민덕희>가 작은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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