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데드맨’ 배우 이수경, 또 다른 길을 찾다
2024-02-06
글 : 이유채

올해로 데뷔 12주년을 맞은 배우 이수경의 연기는 늘 놀라웠다. 타이틀롤을 맡아 얼굴을 알린 <용순>에서부터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조연상을 받은 <침묵> <기적>에 이르기까지 시나리오에 직감을 듬뿍 얹어 한끗 다른 캐릭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데드맨>에선 다른 연기를 시도했다. 거대 경제 범죄 사건이라는 복잡한 이야기를 파악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시나리오라는 글”에 매달렸다. 이렇다 할 전사 없이, 아버지(김원해)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파헤치는 딸 희주 역을 소화하고자 타인의 캐릭터 해석에도 귀를 기울였다.

- 이른바 ‘바지 사장’이라는, 불법 영업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고난도 시나리오다. 혹시 그런 어려움이 재미로 다가와 출연을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평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그것이 알고 싶다>의 빅 팬이다. <데드맨> 시나리오가 그런 추적 프로그램의 한 에피소드처럼 느껴지면서 재밌었다. ‘이름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란 궁금증이 계속 들면서 글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엉킨 실타래 같은 사건이 풀려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쾌감이 컸다.

-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연상케 하는 헤어스타일과 스모키 메이크업을 한 희주의 스타일이 파격적이다. 오랫동안 복수를 꿈꿔온 자는 피폐한 모습일 거란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 나도 처음엔 희주가 3년간 아버지의 복수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이니 외적인 컨셉을 메마른 느낌으로 잡았었다. 그런데 분장팀에서 지금과 같은 과격한 스타일을 제안했다. 굵은 펌에 입술 색을 짙게 바른 모습이 희주와 나에게 어울릴지에 고민이 많았었는데 막상 변신하고 보니 이거다 싶었다. 겉모습이 세니까 나도 따라 자신감이 붙었고 희주의 저돌적인 면모를 하나의 이미지로 제시할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 하준원 감독은 희주를 “직진하는 종마” 같은 캐릭터라고 했다. 본인의 해석을 더한다면.

= 지구력 있고 집요한 사람. 어떻게든 아버지 죽음에 연관된 이만재(조진웅)를 찾아보겠다고 1인 시위를 하고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해온 것을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니다. (웃음) 작품을 할 때 잘 묻는 편이 아닌데 이번에는 내용이 어렵기도 하고 희주의 전사가 없어 감독님에게 질문을 자주 드렸다. 그때마다 감독님은 정확한 설명보다는 종마, 불 등 여러 이미지를 던져주셨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됐다. 보통은 추상적인 이미지에서부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거나 어떨 때는 그것 하나만 가지고 연기하기 때문이다. 뜨겁고 무엇과도 잘 섞이지 않는 느낌의 어떤 이미지들이 쌓일수록 희주가 이해가 됐다.

- 어릴 적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음에도 아버지의 복수에 매달리는 희주를 이해하기가 어렵진 않았나.

= 많이 고민했다. 어릴 적 부모 얼굴도 모른 채 버려졌음에도 부모를 찾고 싶어 하는 분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가 큰 도움이 됐다. 내 생각에 그분들이 근본적으로 찾고 싶었던 건 자신의 뿌리였던 것 같다. 희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정체성과 같은 아버지의 죽음을 못 본 척할 순 없었을 거다. 끝을 봐야 하는 희주의 성격상 외면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았을 거고.

- 이만재와의 첫 만남 신은 어땠나. 조진웅 배우 앞에서 그동안 조사해온 만재의 프로필을 외는 긴 대사를 하느라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 대사도 많고 희주의 목표가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보니 긴장을 많이 했다. 긴 대사를 하는 동안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할 진웅 선배가 신경 쓰이기도 했고. 모두가 이 신이 굉장히 중요한 신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보니 욕심을 내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갔는데 갈수록 내 판단력이 흐려지는 거다. 그때마다 진웅 선배가 “어떤 식으로 하든지 잘할 거”라고 격려해준 덕분에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었다.

- “이름대로 잘 살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묻는 영화를 찍으면서 새삼 자기 이름에 관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 수경이란 이름은 본명이고, 한자로 빼어날 수(秀)에 경사 경(慶)자를 써서 아주 큰 경사란 뜻이다. 매일 이름만큼의 경사가 날 수는 없겠지만 소소하게 기쁜 일이 생기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촬영하면서 했다. 최근 <데드맨> 때문에 이름이 마음에 드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흔한 이름이다 보니 배우 이름으로서는 솔직히 좀 아쉽다. 고등학생(경기예술고등학교) 때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얼결에 데뷔하다 보니 예명을 써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 학창 시절 ‘방학 때 영화 100편 보기’가 목표였다고. 영화와는 어떻게 사랑에 빠졌나.

= 그 계기를 기억해보려고 애쓴 적이 있는데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영화와 뮤지컬을 좋아하시던 엄마 덕분에 또래보다 극장과 공연장이 익숙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작품을 찾아보거나 하진 않았다.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것만 파는 성격인데 그땐 어떤 이유로 영화가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장르, 감독, 배우 상관없이 눈에 띄는 영화들은 그냥 다 보던 시절이었다. 그런 집중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 지금 배우 생활을 하는 데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믿는다. 언젠간 <블루 재스민> 같은 영화를 꼭 한번 찍고 싶다.

- 요즘 제주에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촬영하는 것 말고 또 무엇에 꽂혀 있나.

= 테라스 꾸미기. 집에 자그맣게 있는데 활용을 못하는 것 같아 최근에 귀여운 화로를 들였다. 거기에 매일 장작을 하나씩 넣는 재미가 쏠쏠하다. 돈 아껴쓰는 법도 최대 관심사다. 지난해 지출 내역을 보고 뒤로 넘어갈 뻔했기 때문이다. (웃음) 그래서 올해 계획은 무조건 절약이다. 어쩌다 보니 돈 얘기로 끝맺게 됐는데 이거 완전 <데드맨>식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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