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검은 소년’, 가부장의 역사를 유전하지 않으려는 소년의 역설
2024-02-07
글 : 최현수 (객원기자)

IMF 외환 위기를 겪기 시작한 1997년의 겨울. 고등학생 훈(안지호)의 가족은 아버지 무진(안내상)의 가정폭력으로 붕괴하기 직전이다. 어머니 소연(윤유선)은 두려움에 집을 나갔고, 무진은 홀로 남겨진 훈에게 소연의 행방을 묻는다. 훈을 괴롭히는 것은 가족만이 아니다. 공허한 눈빛의 동급생 기철(노태엽)은 훈을 위협한다. 훈의 유일한 탈출구는 병태(엄지성)의 추천으로 들어간 문학 동아리다. 훈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책감이 드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서정원 감독의 첫 장편 <검은 소년>은 가정과 학교에서 폭력을 경험한 소년의 성장통을 다루고 있다. 주먹과 펜은 훈의 세계를 좌우하는 두축이다. 아버지의 폭력과 기철의 도발은 훈의 폭력성을 깨웠고, 어머니의 애정과 매일 노트에 쓰는 글은 훈의 감정을 풍요롭게 했다. 글과 폭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대항하는 수단이다. 소년은 두 세계를 가로질러 끝내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운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코믹한 부부를 연기한 안내상, 윤유선은 <검은 소년>에선 이혼 직전의 부부를 연기한다. 폭력과 일그러진 사랑의 양면성을 보여준 안내상의 서늘한 연기에 밀리지 않고 소년의 순수와 폭력을 보여준 안지호의 역량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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