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는 영화의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노출하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로알드 달은 내가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다. 타계한 지 30년이 넘도록 여전히 전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이 작가가, 사실은 나만 알고 싶은 작가라는 사실이 새삼 머쓱하긴 하다. 나는 그의 성인용 단편소설집 <맛>이 우리나라에서 잠깐 절판됐을 때 그 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몹시 다행스럽게 여겼을 정도로 그의 글을 좋아한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굳이 멋 부릴 말도 없어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로알드 달은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쓴다. 그의 글에는 통쾌함을 선사하는 시니컬한 유머가 유유히 흐르며, 경쾌하고 악랄하고 뻔뻔스러우면서도 능청스러운 문체는 그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을 꼭 닮아 있다. 어렸을 때 언니가 영어로 된 로알드 달의 책을 읽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언니는 당시 아직 국내 번역 전이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이어 <The BFG> 등 로알드 달의 책을 차례로 탐독했고, 아직 글자가 빼곡한 책을 읽을 수준이 안됐던 나는 언니가 전해주는 이야기로 로알드 달이 만든 환상의 세계를 전해 들었다. 물론 어린이였던 언니 역시 내게 자세한 줄거리를 시시콜콜 말해줬을 리는 없다. 그저 ‘너무 재미있다’라는 주된 평과 더불어 ‘초콜릿 공장에 초대받은 소년의 이야기’ 정도가 내가 얻은 정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비밀에 싸인 초콜릿 공장을 방문할 자격이 주어지는 초청장을 딱 다섯개의 초콜릿 안에만 넣는다’라는 웡카의 마케팅은 어린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내내 나는 초콜릿을 사먹을 때마다 초콜릿 봉지 뒷면에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들어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속지 앞뒷면을 꼼꼼히 살피곤 했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불쾌한 횡재를 맞이한 경우도 있다. 중1 때, 지금도 굴지의 제과 업체인 모 회사의 대표 초콜릿에서 살아 있는 구더기를 발견한 것이다. 초콜릿을 먹으며 책을 읽다가 우연히 초콜릿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그곳엔 웡카의 금빛 초대장 대신 구더기가 대롱거리며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나는 즉각 초콜릿 껍데기 뒷면에 적힌 소비자 보호실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그로부터 1년 동안 그 회사에서 분기별로 작은 종합 과자 세트와 달력을 받았다. 그 정도면 꽤 달콤한 보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어린 마음에도 내가 받는 작은 과자 상자들이 구더기의 출현을 묵인하는 대가라는 생각에 기분이 썩 개운치만은 않았다. 지금까지도 생생한 구더기의 잔상은 환희보다는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기억이다.
어쨌든 내가 성장하는 동안 제과 업계는 매혹적인 마케팅으로 어린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유행하는 만화 캐릭터의 씰이나 특정 연예인의 사진을 사은품으로 넣어 파는가 하면, 음료수 병뚜껑 안쪽에 새겨진 일련번호로 해외 여행권이나 신형 자동차를 경품으로 주는 마케팅도 등장했다. 한번도 당첨된 적은 없지만 혹하는 마음에 이왕이면 그런 행운의 요소가 있는 제품을 집어든 걸 보면 확실히 그런 마케팅은 소비자의 충성심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요인이었나 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제과 업체가 주관하는 경품 응모는 나의 취미 생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끝내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20대 후반에 쓰던 시나리오 중에는 과자 회사의 비리를 다룬 작품도 있었다. 희망찬 포부와 함께 거대 제과 회사에 입사한 젊은이가 회사의 비리를 알게 된 후, 동료와 함께 비리를 밝혀내며 끝까지 정의의 편에 서서 꿈과 사랑을 동시에 얻는다는 이야기였다.
다소 뜬금없긴 해도 이런 경품 응모 습관이랄지, 시나리오에 과자 회사가 소재로 사용된 계기 따위는 모두 로알드 달의 영향, 특히 어려서 접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빚을 지고 있다. ‘빚’이라는 단어는 폴 킹 감독의 <웡카>를 이해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단어지만 그전에 웡카라는 인물부터 살펴보자.
로알드 달의 원작, 그리고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착하고 순수한 소년 찰리보다 윌리 웡카가 더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로알드 달의 원작 속 윌리 웡카는 천진함 속에 감춰둔 잔혹한 장난기로 못된 아이들과 부자 어른들에게 천연덕스럽게 응징을 내리는 인물이며, 팀 버튼 영화에서 조니 뎁이 그려낸 윌리 웡카도 원작의 노선을 따른다. 버릇없거나 태도가 좋지 않거나 텔레비전만 보거나 너무 부자라서 속물인 모든 아이와 어른이 웡카의 타깃이다. 그렇게 한심하고 못된 인물들이 하나씩 제거된 끝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는 그야말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만 남는다. 착하고 순수하며 예의 바르고 상냥한, 무엇보다도 ‘가난한’ 찰리, 그리고 그가 얻게 되는 거대한 초콜릿 공장 말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웡카가 벌이는 모든 일들은 찰리를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한 작업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폴 킹의 <웡카>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윌리 웡카가 없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만나는 건 악마적인 장난기로 가득한 번뜩이는 눈매의 웡카가 아니다. 관객이 마주하는 건 맑은 눈에 해사한 웃음, 꾸밈없는 목소리를 지닌 청년 웡카다. 다채롭고 화려한 색채와 자연스러운 음성의 노래들로 채워진 영화는 마치 한판의 초콜릿 상자 같다. 그러나 겉껍질을 벗겨내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살핀다면 <웡카>를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청년 웡카의 이야기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윌리 웡카는 꿈이라는 굴레를 등에 업고, 부패한 기성세대가 관료적으로 조직해놓은 단단하고 질척한 현실에 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고단한 청년으로 그려진다. 내용으로만 보면 이 영화는 부당거래로 거액의 빚을 진 청년이 다른 피해자들과 함을 합쳐 거대한 카르텔로 연결된 부패 권력을 뒤엎는 내용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선 도시에서의 첫날 밤, 나쁜 꾐에 빠져 수상한 여관방에 들어서면서부터 청년의 불행은 시작된다. 후에 친구가 되는 누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웡카가 글을 읽지 못해 부당한 계약서에 사인하는 장면은 불공정 계약에 실수로 엮이는 안타까운 청년을 연상시킨다. 지하 세탁소에 사는 사람들도 어쩌다 찾은 여관에서 맺은 부당 계약으로 평생 노예에 다름없는 신세다. 말 그대로 창살이 존재하는 방에 갇혀 그들은 각자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희망을 버린 채 현실을 그저 받아들인다.
공교롭게도 웡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빚’과 관련돼 있다. 웡카와 누들, 지하 세탁소에서 지내는 동지들은 물론이거니와 웡카의 숙적인 움파룸파까지도 모두가 거액의 빚을 진 채무자들이다. 빚의 의미를 조금 더 확대해보면 끊을 수 없는 초콜릿에 빚을 져 비리를 눈감는 수도자들과 주교, 비리를 수행하는 경찰서장도 자유롭지 못하다. 모두들 각자가 진 빚 때문에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이미 체념에 익숙한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 웡카가 다른 건 절대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혼자만의 세계에서 공중부양하는 것처럼 마법사 웡카는 현실에 발을 딛지 않는다. 그는 끝없이 꿈을 지향하고 과감한 모험으로 꿈을 실현시킨다. 엄마가 생전에 남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세상을 떠난 엄마의 현현이 좌절되는 게 유일한 낙담인 이 문맹 청년은 어쩌면 피터 팬과 찰리 사이에 위치한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의아할 정도로 순수하고 이타적인 그의 모습은, 우리가 언젠가 보게 될 후속 편에서의 웡카가 어떻게 해서 희대의 악동으로 변해가며 주변 사람들을 조금씩 응징하는 모습으로 성장해갈지 기대감을 품게 한다.
당신이 영화 속 슬러그워스의 말대로 “좋은 초콜릿은 단순하고 소박한 맛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모든 게 쉽고 낭만적인 <웡카>의 무지갯빛 초콜릿이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번쯤 현실에서 발을 떼 잠시나마 둥둥 떠오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게다가 영화 속에는 담백하고 꾸밈없는 맛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가공되기 전의 초콜릿처럼 진하고 소박한 건 다름 아닌 웡카 그 자신과 웡카를 연기한 티모테 샬라메의 선한 표정과 부드러운 음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