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내가 제시했던 레퍼런스는 뱀, 표범, 상어였다, <듄: 파트2> 배우 오스틴 버틀러
2024-02-23
글 : 박수용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2022년,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엘비스>의 주연을 쟁취한 서른살의 오스틴 버틀러에 대해 세상은 궁금해했다. 2005년부터 여러 틴 시트콤에 출연한 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의 영화와 브로드웨이 무대를 오가며 탄탄한 경력을 쌓아왔다. <엘비스>로부터 2년 후, <듄: 파트2>의 빌런 페이드 로타 하코넨을 연기한 배우에 대해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2023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등 수많은 트로피를 휩쓸며 세간의 관심을 열광으로 바꿔낸 뒤였다. <듄: 파트2> 홍보를 위해 내한한 오스틴 버틀러를 만났다. 나긋하지만 막힘없는 그의 언어는 진중한 배려의 문법을 구사했다. “오스틴이 아직도 엘비스처럼 말한다”는 농담이 퍼질 정도로 배역에 몰두하는 성실함은 유명했지만, 이제 직업적 헌신과 일상의 균형을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원숙함마저 느껴졌다. 잔혹한 검투사의 서늘함과 인터뷰 장을 데우는 다정함 사이의 온도차를 셈해보며 <듄: 파트2>에 파괴적인 매혹을 더한 비법을 청해 들었다.

- 그간 참여한 작품들과는 다른 결의 스페이스오페라에 출연했다. <듄>의 세계관에 흠뻑 빠진 작업의 소회는.

= 원작 소설과 영화 <듄> 파트1의 팬으로서 꿈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파트1을 참고하며 작품의 분위기와 질감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다. 페이드는 지금껏 내가 다루어왔던 캐릭터들과도, 나 자신과도 전혀 다른 성격의 빌런이다. 어렵지만 즐거운 과정이었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다면적으로 고찰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 페이드는 하코넨 가문의 인물 중에서도 독특하다. 짙은 잔혹성은 양아버지인 블라디미르 하코넨 남작과 닮았지만 훨씬 냉철하고 건조한 인상이다.

= 그의 사이코패스적 면모가 형성된 과정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페이드는 폭력과 권모술수가 지배하는 삭막한 가문 내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하코넨 남작 배역을 맡은 스텔란 스카르스가르드의 연기를 참고하며 그의 슬하에서 자란 아이의 내면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고민했다. 페이드의 목소리도 스텔란의 표현과 비슷한 질감을 가지도록 디자인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말투를 닮게 되지 않나. 다만 형인 라반과는 뚜렷하게 대조된다. 라반의 방식이 단순하고 직선적인 폭력이라면, 페이드에게 전투는 몇수 앞을 미리 내다보는 체스와도 같다.

- 페이드에게는 결투가 하나의 게임이라는 당신의 말처럼, 그는 위험하고 어려운 대결에서 더 큰 충만함을 느끼는 듯하다. 절대적인 힘의 우월성을 향한 순수한 집착이 읽힌다.

= 어떤 면에서는 전사의 긍지라 표현할 수 있겠다. 매 대결의 끝에 상대에게 읊조리는 “잘 싸웠다”는 대사가 페이드를 가장 잘 설명한다. 힘 대 힘의 대결에 있어서는 공정성을 추구하고, 그와 자웅을 겨룰 만한 전사들에게는 설사 아트레이데스 출신의 노예라 하더라도 기꺼이 존중을 보여준다.

- 페이드와 관련한 원작 소설의 몇몇 사건과 설정이 <듄: 파트2>에서 각색되기도 했다. 당신의 인물 해석은 원작에 충실한 편인가, 영화 속 세계에 맞춰 자립을 추구하는 편인가.

= 원작의 세계를 충실하게 구현하려는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오직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전달할 수 있는 감동을 만드는 데에서도 인색해지고 싶지 않았다. 사실 소설이 묘사하는 페이드는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만큼 강하지 않다. 검투 장면을 일례로 들자면, 소설에서는 일대일 대결이지만 영화 속 페이드는 홀로 세명을 상대한다. 폴의 성장을 더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그와 대비되는 역할인 페이드 또한 최대한 강하게 묘사하고자 했다.

- 어쩌면 다소 수다스러운 원작의 페이드에 비해 영화 속 페이드가 더 과묵하게 그려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페이드의 대사를 절제하는 각본의 방향성이 마음에 들었다. 상대방을 압도하는 데 말보다 눈빛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표정과 몸짓 등 비언어적 표현의 밀도를 극대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과 캐릭터에 대해 처음 논의할 때 내가 제시했던 레퍼런스는 뱀, 표범, 상어와 같은 동물들이었다. 페이드의 혓바닥과 새까만 치아는 블랙맘바의 그것을, 완전한 이완 상태에서 순식간에 공세로 전환하는 움직임은 흑표범의 도약을 닮았다. 무엇보다 어떠한 인간성도 읽어낼 수 없는 공허한 눈빛이 먹이를 응시하는 상어와 비슷하다 느꼈다.

- 페이드의 첫 등장과 검투 경기 등의 신에서 나타난 흑백 연출이 인상적이다. 색조에 맞추어 연기적으로 변화를 주고자 한 부분이 있었다면.

= 적외선카메라를 사용한 흑백 촬영은 빌뇌브 감독과 그레이그 프레이저 촬영감독의 아이디어다. 하코넨의 본거지인 지에디 프라임의 햇빛이 다른 행성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카메라 테스트를 거치며 적외선카메라에 맺힌 상의 특징을 관찰했다. 내 눈빛은 더욱 짙어졌고 피부는 우유처럼 뽀얀 질감을 띠었다. 앞서 말한 상어의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하는 순간이었다.

- 화려한 액션을 소화하기 위한 준비 과정도 궁금하다.

= 촬영 수개월 전부터 해병대 출신 트레이너와 함께 훈련하며 강인한 전사의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무장했다. 풍채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했으면 좋겠다는 빌뇌브 감독의 요구에 체중도 증량했다. 나이프 액션은 필리핀 전통 무술인 칼리를 수련하며 준비했다. 약 6개월 후 티모테 샬라메와 호흡을 맞추었다. 우리는 촬영장에서 만나자마자 악수를 나누고 곧바로 싸움에 돌입했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장면이기에 나도 티모테도 많은 공을 들였다.

- 티모테 샬라메, 조시 브롤린 등 당신과 함께 작업한 수많은 배우가 입을 모아 당신의 인품을 칭찬한다. 잔혹한 빌런을 연기하며 인간 오스틴과의 괴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 이전 작품들에서는 배역의 이미지에 동화하는 작업 방식을 견지했다. 대표적으로 <엘비스>가 그랬다. 수년간 말 그대로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빙의해 살았다. <듄: 파트2>의 경우 페이드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뚜렷한 경계를 설정하고 배역과 자아를 최대한 분리하고자 했다. 출근해 메이크업을 받으며 페이드의 스위치를 켜고, 촬영이 끝나면 빌런의 자의식을 가라앉히는 식으로. 티모테와 조시를 비롯한 모든 동료와 즐겁고 안전하게 교감할 수 있는 환경이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