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로봇 드림’, 로봇의 표정에서 찾아내는 수많은 인간감정의 흔적들
2024-03-13
글 : 정재현

만일 당신이 각별한 이와의 관계가 불가항력으로 뜯긴 후 그 이별이 전부 자기 탓이라 자학해본 적 있다면, <로봇 드림>으로부터 상대와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모두 당신 덕이었다는 위로를 건네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동물만 사는 198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한 아파트에 사는 개는 꺼진 TV 액정에 홀로 사는 스스로의 반영이 비칠 때마다 고독이 치민다. 때마침 개는 TV 광고에서 쓸쓸한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반려 로봇을 본다. 동거를 택한 개와 로봇은 서로의 삶에서 다시 마주하기 어려울 찬란한 우정을 나누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행복은 스스로 확신하는 순간 증발해버리고 만다. 어느 날 개와 함께 해수욕을 즐기던 로봇은 그만 고장이 나 멈춰 선다. 개는 백사장에 로봇을 잠시 남겨둔 후 서둘러 수리 도구를 갖춘 채 다시 휴가지를 찾지만, 그새 폐장한 해변엔 다음 여름까지 입장이 불가능하다. 그날 이후 둘은 밤낮으로 상대의 꿈을 꾼다. 홀로 남은 로봇은 우두커니 자신이 없는 개의 시간을 그린다. 다시 혼자가 된 개는 삶의 모든 순간마다 로봇의 흔적을 찾는다.

<로봇 드림>은 무성영화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2D애니메이션이다. 한데 <로봇 드림>은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나 화려한 그래픽디자인 없이도 관객을 눈물짓게 한다. <로봇 드림>의 가장 큰 강점은 처지는 것 없이 영화의 러닝타임 전체를 견인하는 감정선이다. 영화는 사랑에 빠진 직후의 환희와 상대의 부재가 불러오는 적막함, 우정과 사랑 모두에 존재하는 순정과 질투 등의 감정을 사람 외의 존재들에게서도 느낄 수 있게끔 내러티브에 촘촘히 매설해두었다. 단순한 선으로 표현된 로봇의 표정에서 수많은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시청각 요소 모두를 살리는 영화적인 성취 또한 탁월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물 캐릭터의 움직임은 종별로 모두 다르게 구현되어 있다. 음악이 어떻게 시퀀스와 결합했을 때 최상의 감흥을 선사할 수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 연출자의 판단도 눈에 띈다. 끝으로 <로봇 드림>은 뉴욕 배경의 20세기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의 흔적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세라 바론이 지은 동명의 그래픽노블이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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