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을 처음 봤던 날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자극적인데 건전하고, 뻔한데 궁금하고, 보수적인데 새로웠다. 도리아먀 아키라는 한편의 만화로 세상을 바꿨다. 이건 단지 ‘만화가 한 소년의 세상을 새롭게 열었다’는 수사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파도가 모여 해안선의 윤곽이 나오듯 소년들의 달라진 세상이 모이고 뭉쳐, 정신 들고 보니 문자 그대로 시대가 바뀌었다.
솔직히 누구나 보는 <드래곤볼>보단 살짝 마이너한 감성의 <유유백서>를 더 좋아했다. 달리 말하자면 <드래곤볼>은 시큰둥해도 당연하게 챙겨보는 기본값이었다. 흐름의 중심이란 그런 거다. 도리아먀 아키라는 소년 만화 시스템의 근본을 다졌다. 전체 수익으로는 <포켓 몬스터>가 앞설 수도 있고, 마니아의 충성도와 파급력은 <슬램덩크>가 더 높았을지 몰라도 일련의 흐름은 모두 <드래곤볼>이 정립한 무대 위에서 성립한다. 전성기 시절 원고를 빠르게 송고할 수 있도록 집에서 공항까지 도로를 깔아주었다거나 연재 종료를 고민했을 때 일본 정부에서 직접 나서 만류했다는 농담 같은 에피소드는 이젠 <드래곤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전설이 되었다.
최근 위대한 창작자들을 연이어 떠나보내며 깨달은 게 있다. 그들은 멈춘 적이 없다. 과거의 영광으로 남길 거부한 채 ‘전설’이란 이름의 감옥 안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았다. 누벨바그의 아이콘 장뤼크 고다르는 스스로 스크린의 불을 끄기 전까지 영화를 만졌고, 얼마 전 타계한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은 세상을 떠나기 3일 전까지 글을 썼다. 도리야마 아키라 역시 현재진행형의 창작자였다. 전투력 인플레와 색깔 변신 뇌절을 거듭하고 있긴 했지만 급작스러운 사망 전까지도 <드래곤볼 슈퍼> 연재를 비롯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들을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죽음뿐이었던 셈이다.
이 평범하고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비로소 시대의 끝자락을 느낀다. 함께 놀고 성장하고 늙어가던, 한 시절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황혼으로 물드는 소리. 과거가 되어가는 소리. 위대함의 끄트머리도 구경 못할 내 입장에선 그들의 전성기, 비범하고 번뜩이는 창작 비결은 별 관심거리가 아니다. 대신 이별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들의 황혼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둘 더해지는 중이다. 중심에서 멀어진 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지키며 시대와 호흡해나갔을까. 마지막까지 작업을 손에 놓지 않았던 심경은 무엇이었을까.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의지와 용기는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안녕(Good bye)과 안녕(Hello) 사이, 도리야마 아키라를 떠나보낸 뒤에야 <드래곤볼>을 제대로 다시 본다.
시대는 점점 빠르게 변해가고 변화는 도둑처럼 찾아온다. 극장을 대체할 것 같았던 OTT 전쟁도 서서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형국이다.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은 점차 정리되고 결국 배급망으로서의 플랫폼 승자가 결정되는 모양새다. 플랫폼 경쟁이 끝나면 창작자의 겨울은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여기저기 힘겨운 소리들이 들려온다. <씨네21>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극장의 황혼, 잡지의 끝자락에서 길을 찾는 중이다. 솔직히 헤매는 중인지 찾는 중인지 헷갈린다. 그럴 때마다 뒤를 돌아 시대를 풍미한 이들의 궤적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과거가 되지 않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