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디스패치]
[시네마 디스패치] 맛과 요리섹션 - 인터뷰
2024-03-28
글 : 김민성 (종이잡지클럽 대표)

인터뷰는 대개 인터뷰하는 대상과 관련이 있는 곳에서 진행한다.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나 인터뷰이가 추억하는 요리가 있는 장소, 자주 찾는 공간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인터뷰이 선정만큼 중요한 건 어디서 인터뷰를 할지다. 그에 대해 어디서 만나야 할지를 혼자 생각하고 몇 군데를 골라서 그와 내가 대화하는 상상을 하는 일은 인터뷰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루틴이다. 이번 인터뷰이가 영화감독 A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린 건 제주도였다. 그는 몇번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국에 오면 제주도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인터뷰를 하러 제주까지 갈 수도 없는 일이고…. A의 영화가 잘 어울리는 장면들을 떠올려보았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를 생각하면 독일 맥주가 유명한 맥줏집이나 영화에도 등장한 중식당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도 정하지 않고 고민만 길어지고 있으니 선배는 횟집이 어떠냐고 했다. 고급 일식당 말고 막횟집. 그 순간 영화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이 영화는 생선을 하나하나 해부해서 무엇이 원래 생선의 모습인지 모르게 만드는 횟집 영화가 아닐까. 그걸 먹는 사람은 생선의 맛을 보면서 어떤 생선인지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정확히 그 생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일종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오늘 인터뷰 장소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셨다고 들었어요. 사진 촬영이 포함된 인터뷰이기 때문에 이런 장소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요. 흔쾌히 재미있게 반응해주셔서 좋았어요. 저도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횟집에서 하는 건 또 처음인 것 같아요.”

“횟집에서 해야 한다고 보내주신 인터뷰 기획안이 너무 재밌었어요. 날생선을 즐겨 먹지는 않지만요. 오늘은 식사보다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자리니까요. 조금 일찍 와서 앉아 있었는데 재미있는 노래가 계속 나와서 영화 도입에 반복시킨 음악도 떠올라서 흥미로웠어요. 같이 온 제 딸 표정을 좀 보세요. (웃음) 엄마랑 맛있게 저녁 먹을 생각에 따라 왔는데 한번도 보지 못한 생선 요리를 보고 속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나요?”

“오늘 인터뷰 주제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요리의 의미인데요. 감독님이 이번에 개봉한 영화에도 여러 요리가 등장합니다. 변호사가 요리를 해주려고 후추를 찾는데 주인공이 찾지 못하는 장면이나 승소한 이후에 중식당에서 여러 중국요리를 시켜놓고 축하하는 장면처럼요.”

“맞아요. 저는 이 영화를 촬영할 때 다큐멘터리적 스타일을 차용하여 사실감을 더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여러 전형적인 클리셰를 뒤집어서 관객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꼭 후추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가정적인 사람인 걸까요? 프랑스 사람들은 무조건 프렌치 다이닝을 먹어야 할까요? 저도 지금 프렌치 다이닝도 중식당도 아닌 횟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요. 말 그대로 일련의 행동을 통해 사실을 추론하는 행위가 과연 진실에 가까운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캐릭터를 만들 때 감독 님과 닮은 점을 심어놓거나 혹은 자기 분신처럼 만든 캐릭터는 아닌가요?”

“저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이 저를 볼 때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사실 캐릭터를 고민할 때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가 있긴 해요. 우디 앨런의 <또 다른 여인>(1988)입니다. 히치콕과 클로드 샤브롤 감독은 항상 제 영감의 원천이고요.”

“오늘 인터뷰에 감독님을 정말 좋아하시는 J 영화평론가 선생님도 동행할 계획이었는데요. 다른 사정이 생겨서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 중 인상 깊었던 영화가 있다면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최근에 본 영화와 인상 깊었던 영화가 일치하지 않는데요. 인상 깊은 영화만 추천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2014년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한 <나를 찾아줘>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정확히는 길리언 플린의 원작에 매료되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영화 속에서는 소설을 완성한 아내와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 남편의 이야기가 나와요. 소설을 영화로 바꾼다고 해도 비슷한 과정일 것 같아요. 감독님은 어떠신가요? 조금 나이브한 질문이지만 왜 영화를 보시나요. 그리고 왜 영화를 찍으시나요?”

“이 질문은 다들 다른 답을 갖고 있을 것 같은데요. 저의 경우에 대해서만 답하자면 영화를 볼 때만 느껴지는 감각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음악을 들을 때만 느껴지는 감각이 있고, 소설을 읽을 때만 느껴지는 감각이 있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그걸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표현하는 게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특히 누군가가 읽는 인터뷰에서 어떤 감각을 명확하게 지칭하는 건 한편으로는 그 감각의 한계를 지정하는 것 같아요. 각자가 명명하는 단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을 텐데요. 뭔가 멋있는 대답을 할 수도 있지만 요새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왜 만드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왜 만드는지 말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왜 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왜 영화를 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즐겁게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정확한 답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죠?”

“반드시 그걸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어떤 질문이든 명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꼭 그걸 정확하게 알고 대답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이유를 고민하고 찾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어느 시기 이후로는 그런 질문을 찾는 것보다 다른 영화를 보거나 쓰는 게 더 도움이 될 거 같아요.”

“벌써 인터뷰를 마쳐야 할 시간이네요.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겠네요. 오늘 식사 어떠셨어요?”

“영화 보셨죠? 거기 주인공과 제가 닮은 게 하나 있어요. 둘 다 요리를 잘 못하거든요. 저는 누군가가 해준 요리는 다 맛있게 먹어요.”

인터뷰 기사를 겨우 송고하고 간단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처음 보는 사람, 혹은 선망하는 상대와 한 시간 남짓 동안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어도 인터뷰는 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 인터뷰는 수다가 아니기 때문에. 생각한 이미지와 다른 이야기가 펼쳐져도 어쩔 수 없다. 인터뷰는 각본이 아니기 때문에.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대부분 인터뷰이를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인터뷰에서 생기는 친밀감은 일종의 영화 속 배역들의 연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나쁜 영화라고 관객들이 생각하지 않듯이. 그렇게 만들어진 인터뷰가 어쩌면 인터뷰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잡지를 만드는 일, 잡지 기사를 쓰는 일은 결국 진짜를 보여주기 위한 거대한 가짜 성 쌓기가 아닐까. 눈이 빨개진 채로 출근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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