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극장판 스파이 패밀리 코드: 화이트’, 자꾸만 혼자 벅차오르면 오타쿠라고?
2024-03-20
글 : 이자연

이제 막 전쟁이 끝나고 동서 냉전시대가 도래한 지금, 전세계는 물밑에서 치열한 정보전을 펼치는 중이다. 주인공 로이드의 코드명은 황혼. 스파이로서 본국의 지령을 받아 첩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으니 바로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이다. 명문학교 이든 칼리지의 친목회인 임페리얼 스칼라에 들어가 제1야당 국가통일당의 총재이자 대기업 데스몬드 그룹의 총수인 도노반 데스몬드와 직접 접촉하기 위해서다. 가족을 만들고 명문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아이가 좋은 성적(스텔라)을 받아 친목회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최종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배경 작업에 불과하지만 로이드는 이 모든 것을 해낸다. 고아원에서 여러 번의 파양을 경험한 6살짜리 꼬마 아냐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스파이로 의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위기를 느낀 요르가 기꺼이 가짜 가족이 되기로 합의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가정이 된 이들은 각각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스파이 패밀리>의 첫 극장판인 <극장판 스파이 패밀리 코드: 화이트>는 원작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스토리를 창작한 작품이다. 과자 굽기 시험에서 1등한 우수자에게 스텔라가 주어진다는 소식을 접한 로이드는 시험관이 프리지스 지방의 메레메레 케이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들과 짧은 주말 여행을 꾸린다. 아냐에게 직접 메레메레를 경험하게 하고 조리 특훈을 이어갈 셈이었다. 하지만 프리지스 지방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아냐는 초콜릿 도둑이 숨긴 초콜릿을 먹게 되고, 그 안에 담긴 중요한 마이크로 칩까지 삼키면서 소동의 소용돌이로 휘말리게 된다.

<극장판 스파이 패밀리 코드: 화이트>는 관객은 모두 알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들은 모르는 서로의 비밀을 엇박자로 활용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중간중간 가족 내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조하는 장면은 다소 구시대적으로 느껴져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비밀은 지켜지는 가운데) 각자의 난투가 정점에 오를수록 성별과 관계없는 싸움이 조명되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생존본능만이 선명하게 자리한다. 이번 극장판은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어려웠던 액션 장면을 주요하게 다뤘다. 특히 애니메이션 액션이 지닌 한계를 보완하기보다 특장점을 부각하기로 선택한 듯 시점의 변화, 구도, 생동성 등을 유연하게 활용한다. 지금까지 세기적 암살자라는 설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요르는 군 정보부 비밀 병기 ‘타입 F’와의 전면전을 통해 그의 전사를 더욱 궁금하게 한다. 원작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이 한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궁극적으로 본편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을 지녔다. 스토리, 미감, 액션의 3박자가 세계관으로 미끄럽게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딱 한 발짝 남았는데!”

군 정보부에 납치된 아냐를 구하기 위해 나선 로이드가 아냐가 있는 곳에 닿기 직전 위기를 맞는다. 위장 가족이지만 어린이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어른들의 각개전투는 이유 모를 감동을 전한다. 특히 이 가족은 포기를 모른다. 어른들은 스파이와 암살자로서 직업적 집념이 익숙하고, 아냐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간다. 딱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백 발짝 후퇴할 수 있다는 로이드의 결연함이 돋보인다.

CHECK POINT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태풍을 부르는 황금 스파이 대작전> 감독 마스이 소이치, 2011

스파이가 된 짱구의 대소동을 다룬 극장판. 스파이로 활약해 어른들에게 인정받는 레몬은 짱구와 함께 국가안보국 미션을 수행해나가지만 주변 어른들은 레몬의 아이다움에는 관심이 없다. 비밀과 은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자유로워지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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