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이 반년 만에 극장가를 다시 찾는다. 지난 해 9월 그의 노래 <영웅 수집가>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듣보인간의 생존신고>(권하정, 김아현 감독) 이후, 2023 이승윤 전국 투어 콘서트 <DOCKING>의 실황을 담은 영화 <이승윤 콘서트 도킹 : 리프트오프>로 돌아온 것이다. 영화는 이승윤 콘서트의 총체를 탐사할 수 있는 기회다. 153분의 러닝타임에 공연 당시 연주한 27곡의 무대를 전부 담았다. “<듄: 파트2>보다 13분 짧은 러닝타임” 이라며 농담을 건네니 이승윤이 즐거워했다. <듄>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행성처럼 이승윤의 콘서트엔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이승윤이 앨범 녹음부터 라이브 연주까지 줄곧 함께하는 밴드 멤버들과 만들어가는 호흡. 라이브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이승윤의 가사. 플라스마처럼 공연장 전체에 맹렬히 소용돌이치는 이승윤의 목소리. 음악을 추력 삼아 말과 음표가 가득 뿌려진 우주로 이륙(lift-off)한 이승윤은 관객과 함께 주저 없이 도킹한다. <씨네21>도 반년 만에 이승윤을 다시 만나 그의 우주를 함께 유영했다. 그의 언어를 따라 공전하고, 그의 음률에 발을 디뎠다.
- 단독 공연 실황이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개봉 소감이 듣고 싶다.
=영화 매체에 살짝이라도 기웃기웃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기술시사까지 마친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 개봉을 해봐야 알 것 같다.
- 처음엔 공연 실황 블루레이 발매 정도를 계획했다고 들었다. 극장 개봉까지 온 기획 과정이 궁금하다.
=현재 소속사인 마름모와 처음으로 연 큰 규모의 단독 공연이다. 이 공연을 영상으로 남기자고 이야기했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공연 당일에도 미정이었다. 사실 좀더 이르게 이 소스를 활용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후 앙코르 콘서트와 연말 콘서트도 여는 등 활동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어떻게 이를 활용할지 고민하던 중 극장 개봉 제안이 왔다. 영화를 위해 찍은 영상이 아니라서 긴가민가했지만 감사했다. 그리고 팬들(삐뚜루)이 극장 개봉을 원하는 걸 알고 있었다.
- 기술시사 전후로 상영본(DCP)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부분이 있다면.
=극장 개봉이 처음이라 내가 기술팀에 어느 영역까지 견해를 전달해도 되는지 잘 몰랐다. 공연장에는 객석과 무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에너지가 있는데 아무래도 극장은 그에 비해 절제된 공간 아닌가. 콘서트의 현장감을 어디까지 담을 수 있을지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 공연 실황 영화의 경우 당사자들이 직접 음향을 믹싱하기도 하던데.
=레이블 단위에서 영화를 위한 음향 모니터링을 세세하게 신경썼다. 믹싱 과정에서 많은 의견을 전달했고, 엔지니어와도 많은 소통을 했다. 영화에 내가 <꿈의 거처>를 부르다 가사를 잊는 순간이 담겼다. 그때 객석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그걸 들은 내가 울컥하며 뭉클해하는 장면이 있다. 언급한 대로 극장 개봉을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객석에 마이크를 얼마 두지 못했다. 그래서 정작 떼창이 잘 안 들린다. (웃음) 그래도 그 장면이 너무 좋다. 그 주고받는 에너지! 콘서트를 하다 보면 응원법,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노래 등 정해진 규칙이 있다 보니 에너지를 주고받을 때 생각보다 많은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에너지가 객석으로부터 오는 순간이 좋다. 관객들이 우렁찬 떼창으로 찰나를 채워주었다. 믹싱 때도 영화에 들리지 않는 객석의 소리를 상상해야 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여기서 삐쭉대고 저기서 삐쭉대며
- 무대에 올라 첫곡을 부르기 전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언가.
=무대에 올라가면 아무 생각 안 한다. 다만 올라가기 직전까지 ‘과연 내가 이걸 잘해낼 수 있을까?’ 하면서 엄청나게 떤다.
- 첫곡은 <웃어주었어>였다. 그런데 앙코르 콘서트에선 이 곡이 마지막곡이었다. 두번의 콘서트에서 이 곡으로 무대를 열고 닫은 이유가 있다면.
=<웃어주었어>는 걸음을 내딛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외치는 곡이다. 그래서 이 곡으로 전국 투어를 열었고 감사하게 앙코르 콘서트를 하게 돼 그 마음 그대로 공연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놓고 또 안 닫았지. 연말 콘서트 <뒤끝>을 해버렸고 그만 영화까지 나와버렸다. 생각보다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다. (웃음)
- <웃어주었어>는 제목만 보면 노래 속 화자가 세상을 향해 웃어주었다는 내용이 나올 거라 생각하기 쉽다. 막상 노래를 들으면 개나리가 화자를 보고 웃어준다는 발상이 재밌다.
=길가에서 만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탄생한 곡이다. 거창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닌 누군가의 사소한 미소와 위로, 웃음에서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 만든 노래다.
- <말로장생>과 <시적 허용> 같은 노래에선 말이 넘치는 세상을 향한 아티스트의 근심이 드러난다. 그리고 <달이 참 예쁘다고> 같은 곡을 들으면 본인이 가진 진심을 언어 이외의 요소로 치환해 전하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의 생각이 가사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언어는 사회를 살며 관계를 맺는 데 필수적인 존재다. 없앨 수 없는 요소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의 언어가 함유하는 범위가 협소해지는 순간 언어는 폭력적으로 변한다. 음악과 같은 언어 외의 도구를 사용하면 언어의 함의보다 폭넓은 마음을 서로 교류할 수 있다.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것들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선택했다.
- 인터뷰에서도, 가사에서도 이승윤은 늘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란 인상을 받는다. 메시지를 음악으로 만들 때 가사를 만들고 멜로디를 구상하는 편인가. 아니면 즉물적으로 곡을 만든 후 이에 어울리는 생각을 언어로 덧붙이는 편인가.
=당연히 곡마다 다르다.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쌓아두는 편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에 생긴다. 말을 다 하고 사는 사람만큼 폭력적인 사람이 어디 있나. 말은 대부분 할 수 없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렇게 할 수 없는 말들을 쌓아놓았다가 어떤 멜로디가 나오면 거기에 대칭시키고 싶은 이야기를 맞춘다. 직선적인 가사의 곡들은 멜로디가 먼저 나온 경우고, 좀더 다듬어진 가사의 곡들은 주로 가사가 먼저 나온 경우다.
- 이승윤은 시적인 가사를 쓴다는 평이 많다. 이승윤의 노래를 시적으로 만드는 요소엔 가사에 담긴 여러 상징도 있지만 <뒤척이는 허울>이나 <꿈의 거처>의 가사처럼 유사 음운을 반복 배치해 말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사례도 있다.
=엄청나게 고민한다. 특히 말맛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곡은 정말 공을 들여 작업을 한다. 다만 곡의 맥락을 이탈하는 말맛은 안된다. 형식을 못지않게 고민한다.
- 스스로 줄곧 거부한다고 밝힌 것들이 있다. 카테고리화, 표준화, 정형화다. 역할이나 지위 같은 정해진 프레임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게 타인을 이해하는 손쉬운 방법일 때도 있지 않나. 하지만 <구름 한 점이나>나 <야생마> 같은 곡을 들으면 당신은 정해진 틀 없이도 있는 그대로 무언가를 수용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것 같다.
=무조건 세상의 형식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준은 필요하다. 세상을 지탱하는 건 표준화와 정형화고 그런 게 있어야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다. 그걸 욕하고 싶진 않다. 그렇대도 내 삶을 표준과 기준으로만 다 설명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표준화된 세상이라면 내가 남에게 피해를 안 끼치는 선에서 여기서 삐쭉대고 저기서 삐쭉대며 살고 싶다. 정형화가 필요한 때엔 정형화의 도움을 받고, 나 스스로 도움이 되어야 할 땐 또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으며 살고 싶다. 모든 거부하는 것들에 ‘X’를 치는 무책임한 가사는 쓰고 싶지 않다. 표준화, 정형화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거부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말해가려 한다.
- 지금껏 이승윤씨가 발매한 노래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정확히 수를 세보진 않았지만 ‘모른다’가 꽤 많이 나온다. <비싼 숙취> <허튼소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에 비해 ‘안다’는 <꿈의 거처> 정도에만 등장한다. 일상에서든 음악에서든 무얼 안다고 확신하는 모먼트는 언제인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이런 마음이다. 지금 이 순간에 관한 확신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다. 내일과 어제를 포함해 대부분은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알고, 어떻게 결과가 나올지도 안다. 어차피 표준화되고 정형화된 세상 속에 살고 있으니, 내 발걸음의 끝이 무언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가는 거다.
- 영화를 보면 이승윤만의 쪼그려 앉아 노래를 부르는 자세가 있다. 의자에 앉아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텐데 <꿈의 거처> <허튼소리> 등의 무대에서 쪼그려 앉아 노래를 부르는 점이 신선했다.
=그 자세가 리듬을 맞추기 가장 편해서 아닐까 싶다. 사실 최근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도수치료를 받는 중이라 이젠 자세를 바꾸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웃음) 아직 의자에 앉아 노래하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다. 자세는 무대에 서는 사람의 태도나 무드, 혹은 관객이 수용하려는 무드를 만든다. 의자에 앉으면 확실히 공연이 차분해지고 좋은 의미로 차가워질 것 같은데, 아직은 그 무드를 만들 당위를 찾지 못했다.
- 이승윤의 음악이나 무대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이승윤 콘서트 도킹 : 리프트오프>를 즐기는 팁이 있을까.
=사실 팬들에게 전부 보여주는 공연의 실황이라 영화가 압축적이진 않다. 생각보다 지루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왔으면 한다. (웃음) 중간에 자도 된다. 러닝타임 1시간 넘어가면 발라드 타임이 있는데 그때 살짝 조시고 1시간30분경부터 다시 신나는 노래들이 나오니까 그때 깨시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공연마다 앙코르 무대 중 자유곡 시간을 마련해왔다.
=처음 매체에 등장해 큰 공연을 막 시작했을 당시 불러야 하는 곡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팬들은 내가 매체에서 부른 적 없는 노래를 이미 좋아한 채 공연을 보러 와주었다. 늘 똑같은 노래를 불러야 해서 그들에게 부채감이 들었다. 토크 시간이 생길 때면 나의 다른 노래를 조금씩 부르기 시작했다. 짧게 1절만 부르며 내 창작곡을 좋아하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준 것이다. 그리고 2022년과 2023년에 <DOCKING>을 시작했을 때 언제 또 공연을 할지 모르니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세트리스트를 들려드리려는 마음으로 만든 코너다. 선곡 기준은 객석에서 제일 처음 들리는 곡을 냅다 연주하는 것이다. 앞으론 여러 상황을 봐가며 자유곡 시간을 꾸려가려 한다.
- 2집 작업기를 담은 레코드북이 4부에 걸쳐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앨범의 프로듀싱을 전담한 조희원 기타리스트는 이승윤씨를 가리켜 “누구보다 곡을 많이 쓰는 사람, 음악을 사랑해 이걸 사람들에게 얼른 들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앨범 작업을 결심한 이후 곡을 쓰기 시작하는 아티스트도 있고, 꾸준히 일정량의 곡을 작업하는 아티스트도 있다. 이승윤씨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원래 계속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오늘 작업실에 가서 뭐라도 하나 만들자, 속된 말로 ‘똥이라도 싸고 오자’는 마인드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매체에 등장한 이후 한동안 전과 같은 리듬으로 곡을 쓰지 못했다. 2집을 계기로 곡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물꼬가 트여 전과 같이 노래를 만들 수 있었다. 이번 3집은 ‘다음 앨범을 내야지’ 하면서 곡을 쓰고 있다. 그전엔 목표 없이 곡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앨범이 근간에 있다.
- 왜 <싱어게인-무명가수전> 등장 이후로 한동안 곡을 쓰지 못했나.
=바쁘기도 했다. 그리고 세간의 말들이 내 노래에 덧붙으니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내 음악이 진짜 그런 음악인가’, ‘나는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라며 오래 재고하게 됐다. 어느 순간 내가 굳이 무얼 정의할 필요가 있나 싶더라. 정의는 남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란 판단이 선 이후 다시 곡을 만들 수 있었다.
=데모곡을 만들었을 때, 그때는 칭찬을 많이 해준다.
- SNS에서 올해 초 다녀온 여행에 관한 포스팅을 읽었다. 여행이 어떤 자극을 주었나.
=2주 정도 베를린에 다녀왔다. 나는 여행을 가면 아무 계획도 하지 않고 떠나는 편이다. 막상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도 내가 어디 위치하는지 몰랐다. 그냥 풍경과 맛있는 커피만 있으면 된다. 아무 정보도 없이 “베를린 참 좋다”며 돌아다니다 여행 마지막날 웬 벽을 마주했다. 이게 무얼까 싶어 지도를 펴니 베를린장벽이 있던 곳이었다. 그때야 ‘좀 공부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 찾아보니 독일사가 무척 재밌었다. 이전까지는 내 견해를 풍경에 덧붙이면 그만이었다. 그 외의 요소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어딘가를 여행한다면 그곳에서의 삶을 이해하려는 공부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3년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부수고 싶은 것으로 주변인들의 환상을 이야기한 적 있다. 지금 당장 부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너무 많은데. (한참을 고민한 후) 자기가 색안경인 줄 모르는 색안경들.
- 적성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수반하는 고통까지 기꺼이 견디는 일을 포함한다고 한다. 이승윤씨는 지금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고 있다. 뮤지션으로 사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느끼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 많은 사람과 제단체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래도 공연을 하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더할 말이 없이 감사할 뿐이다. 지금이 딱 적당하다. 큰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다. 지금보다 더 큰 압박이 오거나 관심을 받는다면 이 일이 적성일지 고민하겠지만, 현재로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