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카트린 브레야의 문제작 <라스트 썸머>(2023)가 4월3일 국내에 개봉한다. 여성의 첫 경험을 문제적으로 그려낸 <팻걸>(2000)에 이어서 감독은 어머니와 의붓아들 사이의 강렬한 멜로드라마로 관객에게 또 한번 강렬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회화적으로 아름다운 프랑스 시골을 배경으로 마음의 상처가 가득한 반항아 테오(사뮈엘 키어셰르)와 냉철하고 이성적인 청소년 변호사 안느(레아 드루케) 사이에 오가는 사랑과 고독, 멜랑콜리를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자신을 “곤충학자”에 불과하다고 소개하는 그녀는 인물의 행동에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에 인물의 감정을 따라감으로써 관객이 “관찰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가 된 듯한 느낌”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관객을 매번 위험하고 찬란한 사랑의 감정으로 이끄는 거장 카트린 브레야와 서신 인터뷰를 주고받았다.
- 덴마크영화 <퀸 오브 하츠>를 리메이크한 이유가 있나. 누가 각색을 먼저 제안했나.
= 프랑스 프로듀서 사이드 벤 사이드가 <퀸 오브 하츠>의 리메이크 판권을 구매한 뒤 내가 원작보다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듯하다며 제안했다. 영화를 보던 중 안느가 구스타브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할 때 거짓말하는 장면이 전형적이라 생각했는데 문득 그 장면을 통째로 뒤집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기 시작해 영화화에 착수했다. 대본을 쓰는 데 한달 정도가 걸렸다. 원작에 드러나지 않은 두 인물의 심리를 깊게 파고드는 데 집중했다.
- <퀸 오브 하츠>와 <라스트 썸머>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우선 안느와 테오의 관계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원작에서 안느는 의도적으로 구스타브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성적 포식자로 그려진다. 반면 나는 테오가 안느를 유혹한 것이 처음엔 치기 어린 장난에 불과했을지라도 결국에는 안느의 매력에 반하는 진실한 러브 스토리를 그리고 싶었다. 안느 역에 레아 드루케를 캐스팅한 것도 안느가 테오가 반할 만큼 치명적인 여성이면서도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어두운 내면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안느와 테오의 관계가 달라지자 이 영화가 100% 내 영화가 됐다는 확신이 생겼다. 또 하나는 원작의 도덕적인 판단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감독으로 지니는 나의 태도와 이어져 있다. 나는 곤충학자의 태도를 지니고 있기에 인물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찍으려 한다. 관객보다 먼저 인물의 행위가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하지 않으며 관객에게 선하고 도덕적인 것의 기준을 암시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아가 나는 내 영화를 통해 관객이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례로 프로듀서 사이드는 결말에서 안느가 처벌받길 바랐으나 나는 도덕적인 판단을 배제한 열린 결말로 끝냈다.
- 테오를 연기한 사뮈엘 키어셰르를 발굴했다. 거칠고 연약한 반항아라는 점에서는 제임스 딘, 금발 곱슬머리를 한 스타일이 꼭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4) 속 타지오(비에른 안드레센)을 보는 듯하다. 이 배우를 캐스팅한 과정이 궁금하다.
= 덴마크영화 원작 속 구스타브의 이미지가 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연약하면서도 폭력적인 분위기의 배우를 원했다. 제임스 딘이나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타지오는 내 궁극적인 환상의 대상이고, 테오 또한 둘의 성격과 닮아 있으며 그 둘의 분위기를 따른다. 테오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준 작품이 있다. 르네상스 화가 로렌초 로토의 회화다. 나는 미술을 사랑하며 나의 영화가 회화와 영화의 중간이라고 생각한다. 테오 캐릭터에 로토의 뉘앙스를 담으려 했다. 원래 테오 역으로 염두에 둔 배우는 사뮈엘 키어셰르의 형 폴 키어셰르다. 폴이 <애니멀 킹덤>을 촬영 중이라서 캐스팅에 실패했으나 그가 남동생 사뮈엘을 추천해주었다. 사뮈엘은 배우 지망생이 아니었으며 연기 경력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카메라 테스트를 한 직후 나와 프로듀서는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현대무용을 배운 만큼 몸짓이 유연해서 테오 캐릭터에 더없이 적합했다. 사뮈엘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연기에 열정적으로 매진했다.
- 프랑스의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하며 인물의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는 점에서 에릭 로메르의 영향이 엿보인다. 로메르 영화와 관련이 있나.
= 영향이 있기는 해도 확연히 다르다. 촬영할 때도 편집자와 로메르의 영화와 내 영화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느와 테오가 나란히 풀밭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장면만큼은 레아 드루케에게 〈해변의 폴린>(1983) 속 폴린처럼 연기해달라고 디렉팅했다. 그때 레아 드루케는 냉정한 변호사가 아닌 15살의 폴린이 된 듯한 유약함을 드러내는 기적 같은 연기를 선보였다.
- 테오와 안느의 두 번째 정사 장면이 인상적이다. 카메라가 둘의 벌거벗은 육체가 아니라 정사하는 순간의 표정을 비추며 격정적인 감정이 드러난다.
= 이 영화에는 총 네번의 정사가 있다. 한번은 남편과 안느, 세번은 테오와 안느의 정사를 그린다. 정사신에서 배우의 나체를 노출하는 것은 그다지 본질적인 게 아니라 생각한다. 정사하는 순간 드러난 두 연인의 얼굴이야말로 나체보다 더 솔직하고 에로틱하다. 둘의 얼굴만 드러나도 관객은 이 둘의 나체를 상상하게 된다. 나아가 나는 그 둘이 신성한 육체적 황홀경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이때 카라바조의 <황홀경에 다다른 막달라 마리아>의 구도를 모방하려고 했다. 또 두 인물이 성관계할 때 대화하는 것을 찍으려 했다. 나한테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픽션이다. 두 연인의 이야기와 감정이 만나는 순간이다. 포르노영화에는 픽션이 없고 오직 성관계만 있다. 픽션에서 생기는 감정, 그것이 내 영화의 핵심이다. 내 영화를 감정에 대한 영화, 사랑에 대한 영화로 봐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