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의 건축사 청이옌(양조위)에게 1970년대의 홍콩은 사업을 벌이기 좋은 기회의 땅이다. 쩡 사장(임달화)을 도와 부동산 매매 작전에 뛰어든 그는 잠깐의 기지를 발휘해 큰돈을 만지게 된다. 건물은 짓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청이옌은 작은 투자회사 ‘카르멘’을 설립한다. 그리고 점차 주식시장으로 발을 넓히며 카르멘을 홍콩 경제를 주무르는 재벌 기업으로 키워낸다. 11년 뒤 찾아온 홍콩의 경제위기. 카르멘 그룹의 주가도 폭락한다. 카르멘의 비위를 눈여겨보던 반부패 수사관 류치위안(유덕화)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그는 청이옌과 주변인을 심문하며 탐욕으로 얼룩진 황금 제국의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무간도>의 각본가와 두 주연배우가 의기투합한 만큼 정통 누아르를 기대하기 쉽지만 <골드핑거>는 1970년대 홍콩 경제의 황금기를 배경으로 한 금융 범죄물이다. 홍콩영화 역대 최고 제작비를 투입한 프로덕션 위에서 펼쳐지는 일사불란한 앙상블의 재미는 분명하다. 청이옌의 재기를 강조하는 만화적인 연출과 미려한 세트디자인 등 볼거리도 가득하다. 특히 수기로 계약을 체결하는 70년대 증권거래소 풍경은 시대의 아날로그적 향기를 판서의 리듬으로 생생히 담아낸다.그러나 11년의 시간차를 오가는 빠른 템포의 플래시백도, 세트만큼이나 화려한 촬영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오직 스타일에만 치중한 인상을 주어 아쉽다. 여러모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지만 진지함과 익살스러움 모두 과잉인 나머지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무조건적인 상승을 꿈꾸는 청이옌의 동기도 다소 범박하게 그려지는 가운데 인공적인 대결 구도에 제대로 접착하지 못한 채 가속하는 후반부는 혼란을 부채질한다. 더불어 여성 인물을 수동적인 사업 도구로만 소비한 방식은 풍자로 읽힐 여지조차 없어 우려스럽다. 결국 타락한 자본주의를 그리는 원초적 포만감만으로는 금융 범죄의 세계 속에 온전히 몰입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능구렁이 같은 양조위와 강직한 유덕화는 기대에 걸맞은 호연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