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은 알려져 있지만 알지 못하는 역사다. 해방 직후 제주 도민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하는 참극이 있었다는 개괄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막은 접하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다. 특히 군사재판에 회부돼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의 사연은 제주 4·3 사건이 언론이나 TV 매체를 통해 알려진 한참 뒤에나 수면 위에 올라올 수 있었다. 김경만 감독은 제주4·3도민연대에서 진행하는 수형인 구술조사 연구에 함께하면서 수형인과 이들의 유족 120여명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양농옥, 박순석, 박춘옥, 김묘생, 송순희 다섯 할머니의 목소리에 집중한 다큐멘터리다. 김경만 감독이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풍자와 독창적인 유머가 의도적으로 거세되어 있다. <하지 말아야 될 것들>에서 전쟁과 군사주의와 남성성 문제를, <각하의 만수무강>에서 북한을 적대시하던 사람들이 누구보다 전체주의와 ‘이승만’ 숭배에 적극적이던 모순된 풍경을, <미국의 바람과 불>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다뤘던 감독은 훨씬 조심스럽고 신중한 자세로 한국의 가장 아프지만 은폐됐던 역사에 접근한다.
- 제주 4·3 사건 이후 수감됐던 수형인들을 다룬 최초의 작품이다. 수형인 구술조사를 위해 만난 120 여명 중 5명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 배경은 무엇 인가. 이들은 모두 90대 여성이다.
= 처음에는 좀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싶었다. 그런데 구성이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들이 전해준 사연이 워낙 무거웠고 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5명의 할머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문제였다. 다른 분의 이야기를 더 넣기에는 만드는 나도 관객도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할머니들이 쓰는 언어나 태도가 참 좋았다. 4·3 사건이 훨씬 생생하게 전달됐다.
- 양농옥, 박순석, 박춘옥, 김묘생, 송순희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 양농옥 할머니는 수형인은 아니셨지만 제주 4·3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머리말 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또 이승만 이야기를 따로 해주신 점이 특별했다. 박순석 할머니는 남로당 활동을 한 유일한 분이셨다. 제주 4·3 사건은 국가에 의한 폭력이 자행된 학살이기도 하지만 저항 측면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자신의 이야기가 역사에 남았으면 좋겠다는 의지가 영화의 의도와도 확실히 연결됐다. 반면 박춘옥 할머니는 산에 있던 무장대를 두려워했던 분이다. 4·3의 입체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었다. 김묘생 할머니는 처음 찾아뵀을 때 자기는 4·3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부인하는 모습이 이 사건을 방증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송순희 할머니와 그의 가족은 4·3이 과거에서 끝난 게 아니라 아직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 2016년부터 전국 각지를 오가며 수형인들을 만났다. 그사이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출범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70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재심 판결이 있었다. 처음 촬영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할 때 연출자의 생각이나 다큐멘터리의 방향성에 달라진 부분도 있나.
= 제주 4·3 사건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었다가 최근에 다시 후퇴했다. 지난해 4·3 추념식 때는 자신들을 서북청년단의 후예라고 일컫는 이들이 들이닥치는 사건도 있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분위기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현타’가 오더라. 사람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인식을 의심하기보다는 쭉 변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이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주 긴 세월 동안 이어진 4·3은 피해자 대 가해자의 구도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복잡한 사건이다. 실제 3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희생자 중 90%는 국가를 등에 업은 군경에 의한 피해자였지만 나머지 10%는 산에 있던 남로당 무장대 등에 당했다. 그들이 군경이 그랬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벌어진 학살은 조직적인 초토화 작전의 일환이기도 했던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만주를 토벌하던 방식 그대로이기도 하다. 반면 인간 개인이 갖고 있는 폭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야 하는 일이라 영화에 어디까지 담고 담지 않아야 할지 윤리적 고민이 뒤따랐겠다.
= 오락영화처럼 폭력을 전시해서는 안된다는 목표가 있었다. 영화에서 초토화 작전 등이 언급될 때 이를 스펙터클화해서는 안됐다. 할머니들의 증언이 그들이 당한 피해를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쪽으로 흘러갈 땐 이를 덜어냈다. 오히려 할머니들의 언어가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순간들을 영화에 더 쓰려고 했다.
- 감독이나 제작진의 인터뷰가 아닌 면접 조서관의 구술조사로 영화가 진행된다. 이러한 형식 때문에 만들어지는 차이가 있던가.
= 막연하게 다른 인터뷰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달랐다. 인터뷰라기보다는 면접 조사관 선생님과 할머니들의 대화에 가까웠다. 할머니들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숨기기 때문에 계속 묻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상황만 잘 보여주면 관객들이 4·3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대화를 대화처럼 보이게 주로 투숏으로 찍었다. 내밀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최소 인원으로 가야 했다. 나는 대화에 개입하지 않고 거리감을 유지했다. 우리가 아픈 기억에 대해 묻는 것은 물론 할머니들을 찾아뵙는 것 자체가 그들을 괴롭게 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재심 재판에 필요한 영상 기록을 위한 촬영이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해도 되는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 그들은 촬영과 면접 조사에 본인의 의지대로 승낙했고 이들의 증언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 납득했다.
- 수형인들의 증언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 특히 제주의 자연경관을 찍은 숏들이 중간에 삽입된다. 전작에서 미군 선전영화, ‘대한뉘우스’, 공보처 영상 등의 아카이브 이미지를 서로 충돌시키며 그들의 관계와 정치적 맥락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은 관객 각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둔다.
= 전작들은 이미 있는 1층을 토대로 2층을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1층이 아예 없었다. 내가 1층을 먼저 쌓아올리며 직설적으로 그 역사를 이야기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그냥 이렇게 만들고 싶었다. 아직 사람들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관객이 전작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부족한 푸티지 속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던 전작과 달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내가 직접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같은 제주 4·3 사건 유적지라든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돕는 자연 풍광을 찾아다녔다. 비자림로의 잘려나간 나무는 내용상 의미적인 연결이 됐다.
독립다큐멘터리영화가 갖는 의미
- 평범한 인문학도였다가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영화가 재미있었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영화를 많이 봤다. 켄 로치 감독의 작품, <칠레 전투>, 당시 마이클 무어가 한국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로저와 나>도 봤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창작자의 계획과 범위를 넘어서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끼어들면서 작품이 더 다채로워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관심을 둔 것은 나를 포함한 인간들의 현실 인식이었다. 누구나 오해를 할 수 있지만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그게 당연한 삶의 이치인데 사회적으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과거에서부터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쳐나가야 할 문제들이 있는데 뻔한 진영 논리를 내세우며 공격한다. 역사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현실 인식이 마치 중력장처럼 작용해 많은 사람들을 휩쓸리게 한다. 그러니 전 세대와 대화할 때 벽을 느끼고 세상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답답함이 다큐멘터리영화를 작업하게끔 이끌었다.
- 노동·정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 언어와 형식에 얽힌 고민 또한 깊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바람과 불>은 기록영상으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현재 시점에 찍은 이미지로 과거의 푸티지를 충돌시킨다.
= 처음에는 내가 직접 촬영하지 않은 이미지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이런 다큐멘터리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이미지를 쌓아올려 관계성을 만들거나 충돌시키는 작업을 좋아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소스가 너무 부족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들 때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한정적인 푸티지 중 선택지가 너무 없었고 원하는 숏을 찾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편집 템포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더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 이번에 다른 시도를 해본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푸티지 작업을 다시 해보고 싶다.
- 최근 독립영화계가 부침을 겪고 있다. 특히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 당사자로서는 우리가 멸종되어가는 종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영화 업계 전반적인, 국내의, 세계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독립다큐멘터리영화는 독립영화라는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다. 영화를 만들어도 제대로 상영할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럼에도 관객을 직접 만나면 힘을 받는다. 20~30대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관객층이었는데 의외로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4·3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내가 영화를 만드는 게 아주 의미 없는 일이 아닌 거다. 1년에 300번 정도는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다가도 관객을 만날 때 희망을 얻는다.
-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 것 같나.
= 차차기작을 먼저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하다. 제주 4·3 수형인이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다. 좀더 다큐멘터리 같은 다큐멘터리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영화와 달리 당시 푸티지나 사진도 많이 등장할 것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의 이미지와 결이 달라 꼭 보여주고 싶은 컷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