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선 조경가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수많은 공간의 조경을 책임지며 언제나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자신의 조경에 담고 보존하려 노력해왔다. 그의 손길이 닿은 공간 목록의 일부를 한반도 지도에 찍어보았다. 그리고 <땅에 쓰는 시>에 등장하는 5곳에 대한 정영선 조경가의 코멘터리를 전한다. 이 코멘터리는 정영선 조경가의 영화 속 구술과 언론매체와의 이전 인터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 중인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의 설명과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종합해 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선유도공원 /서울시 영등포구 선유로 343
“‘새서울우리한강사업’의 일환으로 기존 선유정수장을 철거하는 공원화 사업이 기획 중이었습니다. 원래 있던 정수장 시설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시대적 흔적이니 이를 잘 보존해 공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섬의 모양이 마치 배 같아서 갑판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물탱크를 이용한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선유도공원은 정수 시설의 구조적 특징을 유지한 덕분에 물의 흐름에 따라 공원 환경이 점진적으로 달리 전개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철근콘크리트가 전부 녹음으로 뒤덮일 겁니다. 공원 설계 시 사람들을 설득하러 다닐 때도 ‘100년 후엔 이곳이 녹색덩어리가 되어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공원 자체가 환경보존과 교육을 위한 곳이라 개원 초기엔 돗자리 펴고 도시락 먹는 관람객,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데크를 달리는 관람객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습니다.”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49
“한강관리사업소 자문위원으로 있던 시절, 시에서 샛강 지역을 공사해 주차장으로 만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한강처럼 좋은 자원을 인위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마음이 아팠는데 샛강까지 그렇게 둘 순 없었습니다. 곤충 생태학자, 뱀 생태학자, 식물 생태학자 등을 모아 매일 토론을 하며 공간 조성을 계획했습니다. 샛강에 아름답게 자라고 있던 버드나무와 억새는 베지 않고 전부 보존해두었습니다. 호안과 둔치에 한강수와 지하철 용수를 흐르게 해 생태환경을 복원했습니다. 감사위원들은 물 위에 뜬 나무 데크가 홍수 때 위험할 거라며, 주차장도 화장실도 없이 풀, 물뿐인 공간이 무슨 공원이냐며 어깃장을 놓았지만 자신 있다고 응수했습니다. 조경 후 10년, 한번 더 샛강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당시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현상공모를 통해 육상화가 진행되던 샛강 습지부를 바꾸어 샛강과 한강의 자연유하를 만들어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43길 88
“신관을 짓고 조경 공사를 할 당시 현대그룹에서 자문을 받겠다며 도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엔 환자가 산책이라도 하며 아픈 몸과 마음을 달랠 공간이 필요합니다. 환자 앞에서 울 수 없는 보호자들도 한바탕 마음 추스를 공간을 원할 겁니다. 환자들에게 시달리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걷고 쉴 수 있는 나무와 그늘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래서 커다란 숲을 만들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고,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식물들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나도 살아야지’, ‘생명은 끝까지 남는 거구나’ 하는 회복 의지를 다지길 바랐습니다.”
호암미술관 희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 562번길 38
“1997년 문화유산의 해와 호암미술관의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지어진 전통 정원입니다. 정원을 구성할 때 사군자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다양한 화초를 심어 선조들의 미의식을 통해 전통 정원의 경치를 재현하려 했습니다. 담 안팎의 조망을 잇는 차경(借景)의 원리를 바탕으로, 서세옥 선생 등 한국화를 전공한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공간을 만들어갔습니다.”
경춘선숲길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272-2
“못 쓰게 된 철도를 공원화하는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2010년 이후 폐선된 경춘선의 공원화 프로젝트를 맡게 됐습니다. 기차가 지나는 동안 철로 근처에 사는 이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최대한 지역 주민들이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함께 가꿀 수 있는 정원 공간을 만들고, 산책할 수 있는 길을 조성했습니다. 철길, 철교 그리고 주변 녹지는 최대한 보존해 공간을 기억하는 이들의 향수도 지키려 했습니다. 마을 커뮤니티와 철길의 향수를 고려한 식재 배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