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전주국제영화제]
JEONJU IFF #4호 [프리뷰] 장만민 감독, '은빛살구'
2024-05-06
글 : 최현수 (객원기자)

<은빛살구>

장만민/한국/2023년/122분/한국경쟁

회사 생활과 뱀파이어 웹툰 작업을 병행하는 정서(나애진)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다. 계약금 납부까지 3일. 정서는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 보지만, 어머니는 되려 아버지 김영주(안석환)가 떼먹은 돈을 받아오라는 임무를 맡긴다. 하는 수 없이 정서는 바람을 피고 새 가정을 꾸린 영주가 있는 묵호항의 벌교횟집으로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들고 향한다. 오랜만에 고향을 마주한 반가움도 잠시, 어머니의 돈을 갚을 의사가 없어 보이는 영주는 그녀를 지치게 만든다. 하루빨리 돈만 받고 불편하고 낯선 묵호항을 뜨려 하지만, 시종일관 살갑게 다가오는 이복동생 정해(김진영)를 보며 정서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은행(銀杏)의 한자는 은빛 살구를 의미한다. 고소한 과육을 둘러싼 속껍질이 반짝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은행은 열매를 탐하는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외종피에 악취와 독성을 품는다. 악취는 쉽게 퍼진다. 이는 욕망도 마찬가지다. 거리가 가까우면 전염은 더 빠르다. <은빛살구> 속 돈을 향한 인물들의 태도가 가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탐욕은 마치 흡혈귀와 같아 인과관계를 교란하고 만다. 생존을 위한 흡혈은 어느 순간 피를 갈망하는 삶으로 전치된다. 수단이 목적이 된 순간 가장 먼저 지워지는 이름은 가족이다. 정서가 마주한 남성들도 돈에 잠식된 뱀파이어의 형상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영화는 악취와 독성 안에 남겨진 동질감의 과육을 발견한다. 뱀파이어와 가족 드라마 그리고 물신주의를 흥미롭게 교차시킨 <은빛살구>는 장만민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상영 정보

5월 8일, 21:00 CGV 전주고사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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