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갈 때 뒤를 돌아보면 굽이굽이져 있는데,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고밖에 생각 안 하잖아요.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져 있고. 그게 인생인 거 같아요.” KBS2 <다큐멘터리 3일> ‘서민들의 인생 분기점–구로역’ 편에 나온 한 청년의 답변이 중요한 변화의 순간마다, 플래시백마냥 계속 떠오른다. 무심한 듯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툭 내뱉은 한마디에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진실의 힘. 누구나 공감할 진심의 힘.
주간지 마감은 생체리듬까지 일주일 단위로 만들어버린다. 매번 눈앞의 잡지에 몰두하다 보면 한달, 한 분기, 일년의 흐름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씨네21>에서는 적어도 1년에 한번, 잡지 개편을 하려 애써왔다. 뒤처지지 않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자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새로움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올해도 개편을 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변화들이 있다. 큰 틀의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깊고 넓게. <씨네21>은 잡지답게 이 모순된 명제를 충족시키고자 한다.
우선 새로운 필자와 코너가 늘었다. 김민하 배우가 ‘타인의 우주’라는 코너로 한달에 한번 글을 보내주기로 했다. 배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느낀 점들, 지극히 사적인 성찰과 경험을 전할 예정이다. ‘신, 전영객잔’ 이후 9년 만에 다시 합류한 남다은 평론가도 반갑다. 마찬가지로 한달에 한번 만날 수 있다. ‘리코더(recorder)’라는 제목의 이 코너는 영화와 마주한 기억을 기록, 영화를 비평으로 다시 녹음하고 녹화해 새롭게 풀어낸다는 의미다. 영화의 선율과 리듬을 리코더 불듯 글의 육체와 호흡으로 연주할 글들을 기대해주시면 좋겠다.
에세이 지면에는 든든히 코너를 지키고 있는 ‘슬픔의 케이팝 파티’의 복길과 더불어 소설가 정지돈, 뮤지션 김사월, 감독 장윤미 3인이 새로 코너지기를 맡아주기로 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낼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마지막으로 공을 들인 지면은 비평이다. 긴 호흡의 ‘프런트 라인’과 번뜩이는 ‘크리틱’ 코너에 더해 ‘시네마 오디세이’ 지면을 신설했다. 개봉영화 이외의 깊이 있는 탐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신설한 이 지면은 박홍열 촬영감독, 이도훈 영화평론가, 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자, 이연숙(리타) 평론가 4인이 함께한다. 영화의 틈, 인식의 틈을 헤집고 비평의 새로운 어젠다를 발굴하려는 시도다. 쉽지 않은 길이 되겠지만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최선을 다해 준비해보았지만 독자들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잘 안다. 개편 한번에 그간 쌓여온 숙제가 해결될 리도 없다. 우리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최선을 넘어 최고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어제의 <씨네21>을 갱신해나가겠다는 다짐 정도다. 익숙함에 속아 진실을 잊지 않도록. 우리의 진심이 여러분 곁에 가닿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