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운동의 예술이다. 영화는 운동을 재현하는 권능과 운동의 중단을 경험하게 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 시간은 생략되고, 늘어나며, 분기와 도약 속에 되돌아온다. 말하자면 영화는 시간 경험의 촉매를 제공한다. 어떤 작품들은 역사적 시간이나 시간의 지각을 탐구하거나 표현하기 위해 때때로 정지상태의 달인인 조각을 향해 렌즈를 겨눈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대작 <레오파드>(1963)의 조각도 그중 하나다. <레오파드>는 가문의 내부, 개인의 내면 안에서부터 쇠락하는 세계 혹은 시대를 묘사한다. 비스콘티의 카메라는 우선 대저택의 영지 안으로 들어가고 이어서 가족 미사가 열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원작 소설에서 영지는 무성하게 자라, 뒤엉키고 썩어가는 식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비스콘티가 찍은 오프닝에서 영지 입구에는 대저택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여러 개의 토르소 조각상이 부산한 혁명의 기운과 건조한 바람 아래 요동 없이 도열해 있다. 단단한 돌과 거대한 조각은 인간사에 관한 무심함 또는 영원한 영광을 손쉽게 장담한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무너진 돌무더기는 인간의 무력과 시간의 무참함을 어렵지 않게 표현한다. 비스콘티가 <레오파드>에 이어 만든 <희미한 곰별자리>(1965)에서도 조각은 시간이 야기하는 상실을 환기하는 매개체다. 어쩌면 고향 대저택을 찾아가는 한 커플의 이야기인 <희미한 곰별자리>는 비스콘티가 다시 만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1954)이라고 할 만하다. <이탈리아 여행>은 심리적 위기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조이스 부인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고고학 박물관의 조각상이나 폼페이 유적지의 네거티브 석고 캐스팅을 통해 영화적 운동과 정지, 삶과 죽음을 언급하는 가장 빼어난 작품이 아닌가. 로라 멀비의 표현을 빌리면, 조이스 부인이 이 조각 속에서 소스라치며 목격한 것은 ‘지금’을 강렬하게 연장하는 생생한 운동감이 아니라 운동이 사라진 시간의 각인, 정지상태 속에서 반향하고 있는 지나간 시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폼페이 석고 캐스팅은 더 한층 본질적인 방식으로 영화 미디어 혹은 예술의 본성을 환기한다. 화산 폭발로 죽은 자의 시신이 만든 구멍에 석고를 부어 만든 조각은 죽은 자와의 접촉의 산물이자 접촉의 상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 없는 것과의 접촉을 증언하고, 접촉했던 것이 이제 여기 없다는 것을 증언하면서 예술- 영화 또는 영화와 여타 예술의 만남- 은 하나로 가지런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 시대착오(anachronism)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비스콘티의 대작 <레오파드>가 로마에서 개봉되어 상영되었던 바로 그해에 고다르는 로마와 카프리에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일정 부분 참조하고 있는 <경멸>(1963)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경멸>은 프리츠 랑이 만든 러시 필름 <오디세이아>의 상영과 함께 시작된다. 제작자, 비서, 영화감독, 극작가 부부가 모인 치네치타의 영사실 스크린 위로 파란 하늘과 율리시스, 미네르바, 넵튠 조각의 백색 두상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주지하듯 미네르바는 율리시스를 보호하는 신이고, 넵튠은 율리시스의 적대자다. 화면 속 넵튠과 같은 자세로 필름을 집어던지는 제작자는 넵튠을 구체화하는 인간이며, 프리츠 랑이 본인을 연기하는 감독은 현대의 호메로스라는 것을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미네르바를 구체화하고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수잔 리안드라-귀그(Suzanne Liandrat-Guigues)가 지적하듯 미네르바의 현대적 상관물은 영화다. 영사실 영사 장치와 영사 기사를 담은 역숏이 미네르바와 율리시스를 보여주는 스크린숏 사이에 배치된 점, 미네르바 조각의 90도 회전이 영화 오프닝 속 라울 쿠타르의 카메라 90도 패닝을 반복한다는 점, 고다르가 시나리오에서 <오디세이아>를 제작하는 극 중 영화사 이름을 미네르바로 적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국립 고고학 박물관의 로마시대 조각상을 보여주었던 로베르토 로셀리니나 조각을 통해 귀족적 권위의 세계를 지시했던 비스콘티와 달리 장뤼크 고다르는 싸구려 석고 조각상을 사용하여 신화적 인물을 표현한다. 고다르는 초기작 <네 멋대로 해라>(1960), <미치광이 피에로>(1965) 등에서 예술작품을 인용할 때 대체로 박물관의 진품이 아닌 복제 이미지를 사용해왔다. 고다르는 예술을 소비사회의 일부를 구성하는 상품으로 재현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지위를 비판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고다르는 영화라는 상품을 이중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싸구려 미네르바 조각을 사용했던 것일까? 아니면 영화는 가짜이고 거짓말이지만 <경멸>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대로, 우리의 욕망대로 세계를 볼 수 있게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대항해시기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 도착한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 주민들이 희생제의의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마스크를 신성한 사물로 숭배하는 것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당신들이 만든 이것이 왜 신성하다는 것이지요?” 포르투갈인들은 신성한 이미지는 인간이 제작하지 않은 이미지(acheiropoiete)여야 한다는 가톨릭문화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우상에 경멸조로 오늘날 페티시즘(fetishism)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는 이름을 붙였다. 포루투갈어로 페티시는 ‘만들다’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동사(feito)의 과거분사형(feitiço)으로 형태, 인공물, 제작물, 마법에 걸린 것을 뜻한다. 18세기에 이 낱말에는 환상의 사물이라는 뜻이 더해지고, 19세기가 되면 부분 욕망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브뤼노 라투르는 포르투갈인들이 근대적 사실주의의 맹아에 사로잡혀 이 사물에 신성을 부여하는 아프리카인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 사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한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인간이 사물의 성격을 의도적으로 바꿀 때, 인간 행위와 노동의 성격 역시 바뀐다는 점이다. 의미를 만들고 사랑할 대상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행위는 단순하게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 않던 물리적인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행위, 기계적 제작 행위와 같지 않다.
<경멸> 속 미네르바 조각상은 아프리카인들이 숭배했던 페티시, 우상(idolum, 신을 형상화한 돌조각)과 같은 논리에 속하는 사물이다. 인간이 만든 신의 형상이자, 고대 조각을 흉내낸 조각이며, 이미지 속 이미지다. 그러나 영화 제작자는 바로 그 우상 제작을 통해 제작 행위의 ‘의미’를 생산할 가능성을 갖는다. 로셀리니와 비스콘티처럼 고다르 역시 여러 예술과 대화하고 참조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조각 또는 조각의 논리다. <경멸> 속 미네르바 조각상은 영화산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자 열렬한 영화 ‘이미지 숭배’ 작업인 고다르의 <영화사> 제작을 예견하게 하는 표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영화는 오래전부터 기꺼이 다른 미디어와 예술과 대화하고 다투며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이나라의 누구의 예술도 아닌 영화“오직 영화만이!”라고 말하는 대신 영화가 모방하는 예술과 경쟁하고, 전염되고, 영향을 주고받는 인터미디어성의 사례에 관하여 그리고 몰래, 보란 듯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오래전부터, 새롭게 뒤섞고 뒤섞이는 영화와 예술, 형식과 매체, 장소 사이에서 영화의 계보를 발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