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은 민중의 공분을 사는 거대 권력자 악인 조태오(유아인)를 상대로 경찰이 판을 뒤집고 응징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베테랑>는 사법 체계의 한계를 질타하는 여론 속에서 여전히 시스템 안에서 악인을 잡아야 하는 경찰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선과 악은 구분될 수 있는가.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 전편보다 확장된 질문에서 출발해 <베테랑>를 완성한 류승완 감독을 칸영화제 현장에서 만났다.
- 9년 만의 속편이다. <베테랑2>는 어떤 배경에서 출발했나.
= <베테랑>이 예상치 못하게 큰 성공을 거뒀다. 선악의 경계를 명확히 그어놓고 일종의 유사 스포츠 경기처럼 관람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게 너무 크게 터졌다. 개봉 당시에도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베테랑>의 성공이 무척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베테랑>을 새롭게 접하는 젊은 세대가 등장하면서 몇몇 대사들이 밈이 되고 ‘사이다 같다’고 반응하는 현상이 우려됐다.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선악의 구별이 그리 선명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데 이렇게 소비되는 게 맞나? <베테랑> 이후 비슷한 톤 앤드 매너를 가진 <극한직업> <범죄도시>가 나왔고 다른 제작진들이 그 톤 앤드 매너를 재미있게 발전시키고 있는데 굳이 내가 또 비슷한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베테랑2>의 후보로 다양한 버전의 스토리가 있었다. 1편의 톤 앤드 매너를 재탕하는 것 같은 버전은 위험하다며 폐기하기도 하고, <베테랑> 시리즈와 어울리지 않아서 버린 것도 있다. 그러다 선악의 개념이 아닌 ‘정의와 정의가 충돌한다’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처음에는 외유내강이나 황(정민) 선배님이나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지 부담을 가졌지만, 다행히 시나리오 완성 후 가볼 만한 길이라고 판단했다.
- <베테랑> 이후 <범죄도시> 시리즈까지 편마다 다른 빌런 캐릭터가 등장하는 프랜차이즈가 자리 잡았다. 이같은 구조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고 싶었나.
= <부당거래>를 할 때 마동석 선배를 통해 소개받은 형사 분이 우리가 취재할 때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범죄도시> 시리즈가 새로 나올 때마다 “2편의 소재는 이겁니다”, “3편의 소재는 이겁니다” 하고 먼저 소재를 알려준다. 서로 부딪치지 말자고 내통하는 거다. (웃음) 정말 솔직하게는 서로 다른 영화이기 때문에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 <베테랑>의 조태오를 잇는 강렬한 빌런의 등장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막상 보니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속편이더라. 이번 편에서 서도철(황정민)이 잡아야 하는 대상은 명백한 죄가 있는 이들을 죽음으로 심판하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떠오른 연쇄 살인범 ‘해치’다.
= 전통적인 의미의 빌런을 없애고 싶었다. 엄밀히 말하면 <베테랑2>는 빌런이 없는 영화다. 위험한 게임이지만 오히려 성공한 시리즈이기 때문에 시도해 볼 만한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베테랑> 시리즈의 중심은 서도철 캐릭터에 있고, 그가 누구와 싸우느냐가 빌런 자체보다 중요하다. <베테랑2>에는 서도철의 그림자가 많이 나온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그림자와 싸운 것일 수도 있다. 20~30대 때의 서도철이 조금만 더 나갔다면 해치처럼 됐을 수도 있고, 그만큼 서도철과 해치는 무척 가깝게 붙어 있는 캐릭터다. 결국 서도철이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 해치의 정체를 숨겼다가 후반부에 드러낼 수도 있었는데 영화 초반부터 바로 보여주더라. 이유가 무엇인가.
= 다양한 버전으로 편집해 봤지만 <베테랑2>는 본질적으로 ‘절름발이가 범인이야’ 게임이 아니었다. 서도철의 대결 상대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반전 게임을 영화에서 시도할 때마다 늘 실패했다.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고 거기에서 파이팅을 해야 하는 감독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수사’하는 것 같은 거지. (웃음) 지금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베테랑2>을 보면 빌런의 정체나 역할을 두고 여러분이 했던 예측이 다 빗나가지 않았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영화다.
- <베테랑>의 서도철은 ‘싸움 X나 잘하는’ 조태오에게 두들겨 맞음으로써 형사가 재벌을 잡을 수 있는 증거를 만든다. <베테랑2>의 액션은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왜 구할 것인가 등의 긴장감에서 출발한다. 이번 편에서 액션 영화를 찍는 이유, 액션이 가능한 세계를 구상해 장르적 쾌감을 줄 수 있는 논리는 어떻게 찾아나갔나.
= 이를테면 박찬욱 감독이 공포영화를 못 보는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내가 기본적으로 비폭력주의자라는 사실이다. (웃음) <베테랑>에는 시원하게 액션을 짤 수 있는 바탕이 명확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불편했다. 나이를 한두살 먹으면서 아예 애크러배틱한 쇼잉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방식이 아닌, 폭력으로서의 액션을 표현하게 되면 충돌하는 지점이 생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때리는 쾌감보다 맞는 고통에 더 신경 쓰는 것 같다. 내가 이소룡보다 성룡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많이 맞아서다. 끊임없이 떨어지고 구르고 맞으니까 더 응원하게 된다. <더티 해리> 시리즈의 해리 캘러한(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다이 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리썰 웨폰> 시리즈의 마틴 릭스(멜 깁슨)가 더 좋은 이유 역시 그들이 아파하고 힘들어해서다. <베테랑2>는 서도철 형사가 나이를 더 먹은 만큼 새로운 상대와 대적할 때 진짜 힘들게 잡았으면 했다. 그래서일까, 나홍진 감독이 한번 현장에 왔다가 “너무 맞는다~” 고 해서 “자네가 그런 소리를?” 이라고 한 적이 있다. (웃음) 그런데 액션 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없다. 예전에는 내가 영화를 만드는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아닌 것 같다. 억지로 인터뷰용으로 멋지게 말을 꾸며내는 것 같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실제로 감독이 영감을 받아서 어떤 장면을 생각해 내는 과정은 대체로 지구의 탄생처럼 우연히 벌어지지 않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테랑2> 안에는 액션 설계의 단계들이 확실히 존재한다. 오프닝의 도박장에서 남산의 추적 신, 예고편에 등장한 빗속 액션 등이다.
= <베테랑>을 아는 관객에게 1편의 톤 앤드 매너를 계승한 전체 요리를 오프닝에서 먼저 선보인 후, 사실 메인은 ‘홍어’였다고 가는 게 <베테랑2>의 전략이었다. 때문에 첫 번째 액션은 ‘버스터 키튼’에서 출발한다. 계단에서 펼쳐지는 액션 신은 초당 18프레임까지 떨어뜨린 저속 촬영으로 찍었다. 그렇게 관객을 방심하게 한 뒤에 본론으로 들어간다. 시나리오와 감정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느냐, 그 와중에 어떻게 하면 장르적 재미를 동반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원래 꽁꽁 얼어붙은 한강을 횡단하는 액션 신을 찍고 싶었는데 안전 문제로 촬영 허가가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다 가족과 남산에 놀러 갔을 때 여기서 대신 액션 신을 찍으면 어떨까 떠올리게 됐다. 내가 감독 데뷔할 때 워낙 가난하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장면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잘 끌어오지 않는다. <군함도> <모가디슈>를 찍은 감독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할 수도 있지만 심지어 그 영화를 찍을 때도 제작비가 많이 들 것 같은 신은 걷어냈다. 미로 같은 공간을 통과한 후 옥상에 올라왔을 때 펼쳐지는 빗속 액션 신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자연환경을 끌어와 만들었다. <밀수>에 이어 연달아 작업하게 된 유상섭 무술감독이 기가 막힌 슬라이딩을 디자인했다. 옥상 배수구를 막고 실제로 물을 계속 뿌리면서 촬영했고 주변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미술팀이 전부 다시 단 거다. 공사 중인 터널의 액션 신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비계(건축공사 때에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를 세우고 깨진 유리 등을 바닥에 뿌려서 위험한 환경을 만들었다. 터널의 구조를 이용해 서스펜스를 주는 설정도 떠올렸다. 뒤로 가면 오히려 터널 공간의 요소들을 걷어내면서 온전히 두 인물의 대결에 집중하게 된다.
- 전편의 명성일보 박승환(신승환) 기자가 유튜브 채널 ‘정의부장TV’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등장한다. 기성 언론과 사법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대신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 SNS의 여론 및 음모론에 더 열광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캐릭터다.
= 정의부장TV는 이미 벌어져 있는 현상이고 이에 대한 극중 인물들의 반응은 각기 다르다. 결국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정보가 과포화되면서 오히려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인가 분간하는 데 게을러지는 것 같다. <모가디슈>의 한신성(김윤석) 대사가 림용수(허준호) 대사에게 “살아가다 보면 진실이 두 개일 때도 있다”고 답하는데, 그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 서도철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의 ‘가족’이 서사에 들어온 것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 <다이 하드> 시리즈는 존 맥클레인이 4편에서 부인과 이혼하면서 캐릭터가 확 달라진다. 원래 어두웠던 <리썰 웨폰> 시리즈는 마틴 릭스가 보다 강력한 악당과 싸우면서 액션의 수위는 점점 강해지지만 자신의 유사 가족을 찾아가면서 캐릭터는 밝아진다. 나는 <베테랑> 시리즈의 서도철이 박제화된 아이콘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그 모습 그대로 있는, 이를테면 <마지막 액션 히어로> 같은 영화 속 인물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다. 다마고치처럼 영화 안에서 스스로 생명을 찾아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베테랑>에서 쓱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서도철의 아내 주연(진경)이 “당신 아드님이 학교에서 애 팼단다”고 하니 서도철이 “맞고만 다니지 말아라. 때려서 깽값 무는 건 참아도 쥐어 터져서 병원비 내는 건 못 참는다”고 한다. 황(정민) 선배네 첫째랑 우리 막내가 한살 차이라 만나면 애들 얘기를 많이 한다. 실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들과의 대화 내용도 바뀌게 됐는데 그런 개인적인 변화가 자연스럽게 영화에도 녹아들게 됐다. 그리고 서도철이 사는 집의 구조가 1편이나 2편이나 비슷하다. 그는 전세로 살면서 주기적으로 비슷한 평수로 이사를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1편을 찍을 당시 빌렸던 아파트와 거의 유사한 구조의 세트를 만들었다. <리썰 웨폰> 시리즈에서 로저 머터프(대니 글로버)의 가족과 맺는 유대 관계가 결국 마틴 릭스를 구원하지 않나. <베테랑> 시리즈에서 서도철이 실재하는 인물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의 가족 이야기를 반드시 만들어야 했다. 때문에 <베테랑2>는 일터에 있던 남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무척 중요했다. 이 영화에서 기술적인 완성도가 제일 높은 신은 다른 장면일 수 있지만 편집하면서, 또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신은 에필로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