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실감과 실천 사이에서,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에코프렌즈 배우 박하선
2024-05-28
글 : 김소미

박하선에겐 지난밤의 성공적인 중고 거래가 남긴 만족감이 아직 생생한 듯했다. “바로 어젯밤 10시30분에 정가의 30%도 안되는 가격으로 모자 하나를 넘겼다. 직접 뵙고 1만원을 깎아드리려 했는데 구매자 분은 쿨하게 거래 후 유유히 사라졌다!” 육아용품 무료 나눔을 하다보니 입지 않는 옷을 중고 거래에 내놓는 일에도 금세 익숙해진 그다. 텀블러, 샴푸바, 옥수수 칫솔 등 쓰레기를 줄이는 일상적 실천을 말하기 시작한 배우의 목소리는 흥미진진한 풍경을 전하는 내레이터처럼 공명했다.

드라마 <동이>(2010)의 인현왕후에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12)의 푼수 선생님으로 돌연 건너간 대담함. 인생의 대소사를 치르며 생긴 공백기를 일련의 복귀작(드라마 <며느라기> <산후조리원> <검은 태양>, 영화 <고백> <첫번째 아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들로 깨부수는 기세. 이 천생 배우 같은 자질의 출처는 자연인 박하선의 말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다 해본다”는 그는 “때때로 찾아오는 좋은 기회를 받아들이고, 고마운 경험은 되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자 연기, 라디오, 예능프로그램, 공익활동에 이르는 다방면의 궤적이 “정말로 좋아서 하는 것들”로 채워졌다. 박하선이 영화제 에코프렌즈로서 전하는 메시지도 같다. “어려워 말고 그저 한번 와보세요. 생각보다 더 재밌고, 생각보다 훨씬 가까울걸요?”

- 지난해 7월,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로 <씨네21>과 인터뷰할 때 연극 출연 소식을 알렸었다. 이후 예술의전당에서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13년 만에 무대에 섰는데.

= 내년에 재공연을 할 예정이다. 어마어마한 배우들이 새롭게 합류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나도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올해 데뷔 19년차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카메라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무서웠다. 바스트숏부터는 스태프들이 보이면서 긴장이 된다. 그런데 큰 무대에서 관객을 마주하는 경험이 곧 훈련이었는지, <바닷마을 다이어리> 중간에 짧게 KBS 단막극(<드라마 스페셜 2023 - 마님은 왜 마당쇠에게 고기를 주었나>) 촬영에 나갔을 때 스스로 훨씬 편안해진 것을 느꼈다.

- MC로 출연한 예능 <이혼숙려캠프: 새로고침>이 5월23일 종영했다. 최근 박하선의 일상은 어떤가.

= 배우이자 엄마의 삶은 일을 쉴 때가 오히려 정신없다. 일하느라 아이의 단 한번뿐인 순간들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부채감이 생겨서 일이 없을 때는 더더욱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됐는데 3월 개학과 동시에 초등학생의 ‘초’자가 초주검의 초자라는 걸 깨닫는 중이랄까.

- 그런 와중에 매일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SBS 파워FM <박하선의 씨네타운>을 순항 중이다. 며칠 전(커버 촬영은 5월9일에 진행했다.-편집자)부터 감기 기운이 느껴지는 목소리인데도 오늘 현장에서 밝은 기운을 나눠주어 감사하다.

= 사연이 길다. (웃음) 항생제를 가급적이면 쓰지 않는 동네 병원이 있어서 주로 그곳에 다닌다. 그동안은 거기서도 감기가 잘 나았는데 이번엔 경과가 좋지 않아 다른 병원에 갔더니 부비동염 진단을 받았다. 앞으로 약을 3주나 먹어야 한단다. 그사이 라디오 진행을 계속하면서 새 작품 촬영에도 들어가야 해서 솔직히 처음엔 좀 우울했다. 내 선택 때문에 동료들에게 민폐가 된 것 같아서. 지금은 장원영씨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요할 때는 항생제를 제때 처방받는 게 좋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으니 나 완전 ‘럭키비키’잖아?

- 벌써 3년을 채운 라디오를 필두로 연기 외적인 커리어에도 거리낌 없이 도전 중인데, 이유가 있을까.

= 예전부터 신애라 선배님을 동경해왔다. 대중과 따뜻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을 계속 해보고 싶다. 라디오에 도전할 때 처음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딱 2년만 버텨보자. 두 번째는, 혹시 그러다보면 10년이 금방 가지 않을까? 그렇게 양가감정을 갖고 시작했다. 확실히 2년차부터 출퇴근이 익숙해지고 직장인처럼 좋은 날이 있다가 힘든 날도 있는 것이 당연해지더라. 당대에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과 가까이서 호흡하는 것은 배우로서 큰 자양분이 된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는 날엔 “엄마도 오늘 일 가기 싫은데 가야 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의외의 장점이고!

- 아이와 함께하는 삶으로 변화하면서 그만큼 환경에 대한 관심도 남달라졌을 듯싶다.

= 미래세대가 살아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의 필요성이 요즘은 너무나 크게 와닿는다. 금방 동나는 육아용품을 쓰다보면 자꾸 버려지는 플라스틱 용기들이 신경 쓰인다. 한번 자각한 뒤로는 가능한 한 리필 상품을 구입한다. 아이 칫솔은 특히 자주 바꾸게 되니까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것을 쓴다. 플라스틱병 생수를 끊고 고체비누 형태로 나온 샴푸바도 써보고 있다. 라디오 부스에 들어갈 때 텀블러를 챙기고 바빠도 배달음식을 줄이는 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즐겁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옷에 대한 입장이 바뀌고 있다. 패션에 무척 관심이 많은데 옷 쓰레기가 특히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된 뒤로 새옷 대신 빈티지로 시선을 돌려보기도 하고 입지 않는 옷은 중고 거래에 내놓는다.

- 영화가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과 행동을 촉구할 수 있을까. 박하선의 관점은 어떤가.

= 2022년에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은 적 있는데 캐나다영화 <고독의 지리학>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외딴섬에 사는 환경보호 활동가 여성이 세계 각국에서 섬까지 떠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를 마주한다. 지구를 돌고 돌아 어느 섬까지 와서 쌓이는 쓰레기의 존재를 영화에서 보고서야 피부로 느꼈다. 영화에는 그만큼 실감을 주는 힘이 있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에코프렌즈 이전엔 대한적십자사, 월드비전 등 NGO의 홍보대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 솔직히 처음에는 망설였다. 내가 그리 훌륭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나서나 싶은 마음에. 그런데 좋은 영화들을 보면서 작은 관심 하나하나가 쌓이는 게 중요하다고 믿게 됐다. 홍보대사 활동은 내 몸만 좀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는 일이니까 힘닿는 경우라면 잘해보고 싶다.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학교에서 한달에 한번 5천원짜리 농산물 상품권을 주면 우리 집은 그걸로 한동안 살 수 있었다. 어떻게 아시고 담임선생님이 여성용품과 속옷 같은 것을 챙겨준 순간도 잊지 못한다. 그 고마움을 지금의 나로서 갚아나가고 싶다.

-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경제력을 이뤘다. 소회가 뜻깊을 텐데, 돌이켜보기에 가장 고마운 작품이 있나.

=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덕분에 처음으로 집을 샀다. 내 집이란 걸 그때 처음 가져봤다. 2년에 한번 이사 가는 게 어릴 때 내 삶이었거든. 돈 쓰는 법을 몰랐던 그 시절의 내가 했던 사치는 노래방 가서 2시간 원없이 노래를 부르는 거였다. 그것만으로도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네!’ 하면서 기뻤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어린이가 날 보면서 반갑게 “맞죠! 개그맨!” 하길래 그렇다고 했다. 아마도 유튜브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을 본 거겠지. (웃음) 내겐 정말로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 흥행한 희극 필모그래피가 어떤 배우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박하선은 성큼성큼 나아갔다. 결혼, 출산을 거치며 작품 제안이 줄어든 사실을 토로한 적도 있지만, 결국 빛난 건 여성 서사를 알아보는 안목과 더 다채로워진 감정의 팔레트였다.

= 아직도 한창 보폭을 넓히고 행로를 개척하는 과정에 있다. 올해 공개될 스릴러물 <타로>(U+모바일tv 7부작 시리즈)가 그래서 기대된다. 예전에 김병욱 감독님이 내게 호러 장르에 어울리는 서늘함이 있다고 말해주셨는데, 나 역시 그런 분위기로 쓰이고 싶은 바람이 늘 있었다. 신작을 통해 ‘박하선에게 저런 얼굴이 있었어?’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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