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영화제 칸 클래식 섹션에 초청된 <영화 청년, 동호>(제작 국제신문)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영화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제 개막 전날 칸을 찾은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 현지에서 가장 먼저 만난 이들은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 크리스티앙 존 부집행위원장이었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영화 청년, 동호> 최초 상영 자리에 참석해 직접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1997년부터 매년 칸영화제 사무실에 들렀다는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은 티에리 프레모. 크리스티앙 종 그리고 피에르 뤼시앙 칸영화제 고문까지 세 사람과 쭉 만남을 가지며 칸영화제의 한국영화 초청 및 영화제측의 부산국제영화제 방문을 요청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은 이후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에 중요한 초석이 됐다. 이처럼 국내외 영화계 각계 인사들을 살뜰히 챙기며 한국영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온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의 삶은 개인사를 넘어 한국영화사와 맥을 함께한다. <영화 청년, 동호>는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 문화공보부, 영화진흥공사, 예술의전당, 공연윤리위원회 등에 몸담던 시절부터 59살의 나이에 ‘영화제’라는 새로운 일에 뛰어든 이후의 인생 궤적을 좇아가며 한국영화의 격동기를 함께 담는다.
- <영화 청년, 동호>에는 영화진흥공사 사장 시절부터 “한국영화가 살 길은 해외시장에 있다”고 판단했다는 인터뷰가 나온다. 그 근거를 어디서 찾았나.
= 1987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강수연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영화진흥공사 전문위원이 대리 수상을 했다. 그때만 해도 해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그리 높을 때가 아니라 호텔도 좋은 곳은 못 받았고(웃음) 임 감독도 영화제를 떠난 후였다. 솔직히 영화진흥공사에서 해외 영화제에 관심을 두지 않기도 했다.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임권택 감독의 <아다다>가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 초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르주 로직 집행위원장이 직접 영화진흥공사 사무실에 와서 영화를 본 뒤 경쟁부문에 올렸다고 하니 분위기만 조성해주면 좋은 성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임권택 감독 그리고 당시 KBS 드라마를 찍고 있던 신혜수씨를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방송국에 직접 연락해 배우의 일정을 조율했다. 당시 박수길 주캐나다 대사에게 부탁해서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의 식사 자리에 나와 달라고 요청하고, 문화공보부에 천호선 주캐나다 공보관을 영화제 기간에 몬트리올에 파견해달라고 했다. 메종뇌브극장 규모가 거의 1500석 가까이 되는데 공식 상영시간이 아침이라 관객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현지 교회와 성당에 전화를 걸어 한국 교민들이 극장에 와서 <아다다>를 관람하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 우리와 수교하지 않던 공산권 국가에서 열리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초청도 배경이 있었다. 영화진흥공사에 있을 때 88 서울올림픽에 맞춘 사업을 기획하면서 소련, 동독,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등 공산권 국가 영화 중 영화제 수상작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짰다. <차이코프스키>라는 소련영화 필름 상태가 좋지 않아 소련영화 수출공사에 문의했더니 동남아 지사장 구에나디 차레그라드스키가 갖고 있다고 하더라. 그를 한국에 초청해 한정식집, 카페를 데리고 다니며 대접했고 이후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초청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당시 한국영화가 러시아에서 상영되는 것은 처음이라 10명 이상의 대표단을 꾸려 준비했다. 그리고 그해 강수연 씨가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제에서 만난 헝가리수출입공사와 부다페스트 및 다른 지방 도시를 돌며 한국영화 순회 상영을 하자는 합의도 했다.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영화제가 자국 영화를 해외에 소개하고 양국간 문화 교류에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다. 그때 영화제에 관심을 두면서 결과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일도 하게 됐다.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시절 해외 영화제를 오랫동안 방문하다가 단편 <주리>의 감독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영화 청년, 동호>는 칸영화제 상영 직전에도 직접 설명했듯 “배우로 참석”하게 됐다. 각각의 경험이 어떻게 다르던가.
= 2013년 <주리>가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상영됐을 때 무대 위에 올라가서 “지금까지는 영화를 선정하거나 관람하기 위해 영화제에 왔는데, 막상 내가 연출한 영화가 심사 대상이 되니 너무 떨린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긴장과 떨림이 있다. 75살의 나이 많은 감독으로 올라오니 더 그렇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때와 지금이 또 다르다. 주연배우로 영화제에 와서 쑥스럽기도 하다.
- 영화에 “행정 일을 잘하는 데도 감정을 잘 안다”는 증언이 나온다. 행정과 감정은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체감하는 순간도 있었을 듯하다.
= 문화공보부는 사실상 서비스 기관이다. 정부 홍보 활동을 하며 정부와 국민간의 간격을 좁히는 역할을 한다. 30년 동안 공직 생활을 하면서 대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그때도 말단 직원들과 테니스를 치고 난 후 소주 한잔하는 것을 즐겼기에 비교적 관료적인 자세도 벗어나 있었다.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부임 후 영화계의 반대에 부딪히고 공격을 받았다. 영화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영화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새로 제작되는 한국영화와 수입 영화들을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틈나는 대로 보고 영화계 모든 행사를 찾아다녔다. 원로 영화인은 원로 영화인대로 젊은 영화인들은 젊은 영화인대로 만났다. 내가 국내외에서 알아주는 주당이라 주로 술로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웃음) 당시 ‘오영감’(오늘의 영화감독)이라는 박광수, 장길수, 강우석, 이미례 등 젊은 감독 중심의 모임도 자주 초청해서 술을 마셨다.
-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이 <영화 청년, 동호>에 인터뷰이로도 등장한 배우 조인성과 찍은 사진이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와 찍은 사진을 올린 이유는 무엇인가. (웃음)
= 조인성씨가 성격도 좋고 인성이 참 바르다. 우리 집에도 와서 종종 술을 함께 마신다. 그 사진은 술을 마시다가 찍은 사진을 즉흥적으로 프로필에 올린 거다.
- 영화에 나오는 인터뷰이 중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 임권택 감독은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트리반드룸국제영화제를 함께 갔고 루마니아에서 한국영화 순회 상영도 같이 다녀왔다. 초창기부터 친해져서 술친구로 계속 지냈다. 이창동, 신수원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 주로 만난 분들이고 이장호 감독은 공무원 생활을 하던 시절 최인호 작가와 함께 술집에서 거의 매일 만났다. 박정자씨는 <신의 아그네스>가 나왔을 때부터 내가 너무 팬이라 후원회 모임에 가입해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영화를 소개하는 데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해왔다. 최근 아시아영화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올해 칸영화제에서 많이 초청되지 않아서 아쉽다.
= 올해 칸영화제 아시아영화 초청작이 많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영화제는 프로그래머들의 취향에 많이 좌우된다. 크리스티앙 존 외에 비평주간, 감독주간 담당 디렉터들이 최근 바뀌면서 그들의 선택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는 바냐 칼루제르치치 집행위원장에서 다른 사람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카를로 카트리안 예술감독과 마크 페란슨 수석 프로그래머가 나가고 다른 사람으로 바뀐 영향이 있지 앟을까 싶다. 무엇보다 기존에 국제 영화제에서 인정받았던 감독들, 박찬욱과 봉준호의 뒤를 이을 새로운 이름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면에서 한국영화의 위기로 다가온다.
- 그럼에도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영화인이 있나.
= 영화제 일을 완전히 떠난 지 2~3년 됐기 때문에 새로운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하긴 했지만, 최근 김보라 감독을 포함해 젊은 여성감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젊은 영화감독들이 데뷔할 수 있는 특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든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이후 아시아 각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이 나서서 이런 지원 사업을 계속 끌어나가야 한다. 지지난 칸영화제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CNC(프랑스국립영화영상센터)와 라운드 테이블을 열어 양국간 영화 협력을 약속하고 그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인더스트리 포럼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페미스(FEMIS, 프랑스 국립영화학교)의 공동 아카데미 설립을 논의한 바 있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한- 프 영화 아카데미 발대식을 연 후 페미스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또는 한국영화아카데미 학생들간의 공동 워크숍을 진행 중이다. 이같은 공동 제작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재능 있는 젊은 영화인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 당사자 외의 관객에게 <영화 청년, 동호>가 의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영화에는 내가 공직 생활을 했을 때와 영화계로 간 이후에 했던 역할 양쪽이 모두 나온다.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저렇게 다양한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한다면 나도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사람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다.
- 영화 말미 카메라를 들고 또 다른 영화를 찍는 모습이 등장한다. 지금의 꿈은 무엇인가.
= 지난해 칸영화제 칸 클래식 섹션에서 <룸 999>(1982년, 빔 벤더스 감독이 동료 16명에게 영화의 미래를 물었던 다큐멘터리 <룸 666>의 포맷을 이어받은 영화다. - 편집자)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과연 지금과 같은 미디어 상황에서 영화가 존재할 것인가 혹은 사라질 것인가 두 가지 견해를 담았다. 나는 영화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해 3월부터 캠코더로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다.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부산 등에서 인터뷰를 했다. 영화계 원로들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은 물론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광주극장이나 헤이리 시네마 등의 모습을 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생애지만 나 또한 영화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에 동네 사람들 혹은 내가 속한 로타리클럽의 동호인들에게 극장을 빌려 영화를 보여고 있다. 최근에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파묘> <건국전쟁> 등을 봤다. 이렇게 영화를 나누는 일이야말로 내가 원로 영화인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