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와 질병, 자연재해로 부상을 입은 야생동물은 어디로 가게 될까. 생추어리(Sanctuary)는 자생하기 어려운 야생동물을 치료한 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구조센터이자 보호기관이다. 국내 생추어리는 0개로 전무하다. 왕민철 감독은 야생동물의 삶과 죽음을 깊숙이 들여다보기 위해 생추어리를 꿈꾸는 이들을 기록했다. 10여종의 새가 날 수 있는 넓은 물새장, 직선 주행을 좋아하는 늑대를 고려한 긴 형태의 늑대사 등 인간의 관람 방식보다 동물의 본성을 먼저 고려한 청주랜드 동물원(이하 청주동물원)은 국내 1호 거점동물원으로서 생추어리의 희망으로 자리한다. 동물원을 없앨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양극단의 의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을 듯 보이지만 <생츄어리>는 무덤덤히 그 가운데를 가리킨다. 청주동물원을 둘러싼 고민은 또 어떤 챕터로 이어질까. <동물, 원> <봉명주공> 등 인간 중심적인 삶의 뒤편을 부지런히 추적해온 왕민철 감독과 안지환 편집감독에게 물었다.
- 다큐멘터리로 제작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왕민철 2019년 <동물, 원>이라는 작품을 연출했을 때 동물원에서 얼마나 많은 동물이 죽어가는지 목격했지만 영화 구조상 그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그게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화에 등장하는) 반달곰을 충북대 수의대 병원에서 진찰하려 하는데 어쩌면 이 친구를 안락사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상황을 기록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서 자연스레 착수하게 됐다.
안지환 왕민철 감독님과 <동물, 원> <봉명주공> 등을 함께해오면서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생츄어리>를 작업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이번에는 편집만 담당하지 않고 구성작가 역할까지 겸했다.
- 야생동물의 현실을 비추려면 동물원과 동물구조 센터의 도움을 얻어야만 한다. 이 과에서 가장 조심스러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왕민철 사실 동물원은 동물의 죽음을 알리는 것 자체를 꺼려한다. 동물원에 동물이 많으니 죽음이 자주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대중은 잘 모른다. 동물원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알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지점을 끄집어내겠다는 설득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촬영을 허가해준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가지 않도록 취재원 보호를 깊이 고민했다. 그래서 영화의 쟁점이 개인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거듭 조명했다.
안지환 이 허가 과정에서 왕민철 감독님의 대외적인 신뢰가 크게 도움이 됐다. <동물, 원> 개봉 이후 이 감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사람인지, 동물들과 어떻게 상생하고 싶은 사람인지 이해받고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상호적으로 의견을 조율할 수 있었다. <생츄어리>는 현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었다. 이전 작품들이 실질적, 현실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왕민철 <동물, 원> 누적 관객수가 3800명 정도 되는데 야생동물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봤더라. 국내 동물원의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별로 없기도 하고. 거기서부터 추진력을 얻었다. 영화를 보고 각자 더 나은 길을 고민한 결과라 생각한다.
- 청주동물원은 동물 친화적인 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동물원을 유지하지 않으려 동물의 번식을 막고 시설 확장도 계획하지 않는다. 새장과 케이지도 인간의 관람 활동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들의 성향을 고려한 방식으로 맞춰나간다. 청주동물원의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왕민철 글쎄, 김정호 수의사의 힘 아닐까. 사실 청주동물원은 청주시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작은 기관이다. 하나의 사업소인데 보편적으로 많은 공무원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소장도 퇴직을 앞둔 사람들이 주로 맡고. 그런데 이곳에서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일을 해온 김정호 수의사가 애증 하나로 문제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한 개인이 이러한 변화를 완성해나간다는 게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이게 시스템화되지 않으면 김정호 수의사가 퇴직한 이후 어떻게 될지 우려하는 시선도 많다. 예를 들어 청주시는 청주동물원에 동물 구입비를 더이상 지급하지 않는다. 예산에서 아예 빼버린 것이다. 이런 예산이나 정책 문제는 아무리 변화의 의지가 있는 개인이 힘써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 하지만 청주동물원은 현재 동물 수를 늘리지 않고 있다. 동물 구입비를 삭감하는 게 왜 문제가 될까.
왕민철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필요 여부만 따진다면 바깥에선 삭감 확정이 아무 문제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예산이 한번 삭감되면 회복하기 힘든 공무원 사회를 생각할 때 적합한 판단 기준은 아니다. 먼저 1년 전체 예산이 편성되고 그중 일정 부분을 동물 구입비에 책정한다. 그럼 그 항목으로 매년 예산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시에서 특정 부분을 없애버리면 결국 동물원에 대한 전체 예산이 줄어드는 것과 같다. 전체 규모를 일방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원은 계속 동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동물은 계속 죽는다. 이 말은 우리를 계속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동물을 구입해오거나 번식시키는 방식으로. 그게 기존 동물원의 유지 방식이라면 청주동물원은 동물 수와 종을 줄이고 있다. 비면 비는 대로 남은 동물이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지점은 동물원 문화에 무척 큰 전환점이지만 시민과 관람객 중심의 변화가 아니다 보니 큰 공감을 얻지 못하는 듯하다. 정부 차원의, 시 차원의 이해가 필요하다.
안지환 실제로 시에서 운영하는 동물원은 정권이 바뀌거나 시장이 바뀌면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보편적으로 관에서 바라는 동물원의 모습은 하나다. 가족들이 모여 기린도 보고 사자도 보고 하마도 볼 수 있는 풍경들. 그러다보니 청주동물원은 시의 압박을 계속 방어하면서 동물 복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김정호 수의사가 왕민철 감독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담아달라고 요청한 이유가 더더욱 이해간다. 영화의 힘에 호소한 것이다. 하나의 주제가 영화로 나올 때 시 의원과 운영자들이 이 방향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
왕민철 그래서 영화가 개봉하면 일부러 환경부 직원들, 시청 직원들을 초대한다. (웃음) 이렇게 힘들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 이런 의문도 든다. 동물 복지를 열심히 이야기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동물원 수의사다. 동물을 가둔 동물원에서 이런 주제를 짚어내는 게 다소 모순적으로 비칠 수 있을 텐데.
안지환 영화 <동물, 원>에서부터 우리가 끄집어낸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이미 있는 이 동물원을 어떻게 할 건데?’ 계속 운영하자, 모두 없애버리자, 딱 두 가지 관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면 논쟁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구체적인 실무 이야기로 연결돼야 하는데 정답 없는 싸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집할 때에도 챕터를 나누는 과정에서 설명이 필요한 구간은 윤리위원회 회의나 국회 논의 장면으로 채웠다. 이들의 열띤 토론을 보면서 무엇이 최선인지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영화가 대신 판단해줄 수 없는 첨예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 시각에서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집했다.
왕민철 동물원이 있어도 되냐 없어져야 하냐. 영화를 본 분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동물, 원>과 <생츄어리>. 이 두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내 관심이 향한 건 어쨌든 한계를 인지한 테두리 안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태도다. 청주동물원도 무한히 넓힐 수 없고 진짜 야생 환경에 가깝게 만들기도 어렵다. 울타리와 케이지는 모든 동물원이 지닌 현실적인 한계다. 그러니 극단적인 선택권을 막연하게 이야기하기보다 지금 무엇을 보완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최선이다. 영화에서 최태규 활동가는 구출한 곰을 위해 농장에 해먹을 달아준다. 비좁은 공간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휴식 공간을 꾸려주는 것이다. 현재 청주동물원은 부상당한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생추어리를 궁극적으로 지향하지만 그게 국내에서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중간 지점을 찾고 있다.
- 김정호 수의사는 영화에 반복해서 “동물원은 유지되면 안되니까”라는 말을 한다. 이 냉소적인 태도에서 이상하게도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왕민철 김정호 수의사의 매력이다. (웃음) 그게 또 잘 드러났다니 다행이다. 사실 동물원이 사라질 수 없는 무수한 이유 중 하나는 부상 이후 자연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동물과 유기동물을 받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반려동물로 북극여우를 키우다가 감당이 안되니 동물원 주차장에 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릴 때와 달리 성인 남성 상체만해진 거북이를 유기하기도 하고. 폐업한 라쿤 카페의 라쿤들은 외래종이니 밖으로 방생할 수도 없다. 이 아이들이 어딜 갈 수 있겠나. 사람 손을 타버린 야생동물과 장기 치료가 필요한 동물들도 동물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김정호 수의사도 그런 말을 하긴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알고 있다.
안지환 그래서 생추어리가 필요하다. 관람객 없는, 오직 동물만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이 세금으로 운영된다면 아마도 “밥 못 먹는 사람도 있는데!” “동물이 인간보다 더 편히 자네” 같은 댓글이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웃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수의사는 기본적으로 동물에게 따뜻하고 온화한 태도를 지니고 있지만 이들도 결국 과학자다. 사랑하는 것을 보살피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온정적인 태도만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무겁게만 여기는 시선이 있다. 이로부터 거리감을 느끼는 관객에게 한마디 한다면.
왕민철 다큐멘터리가 오로지 어두운 현실만 조명한다는 선입견이 거둬지면 좋겠다. 이것도 결국 영화다. 관객의 영화적 경험을 담기 위해 사람들의 이야기와 동물의 면면을 담아내고자 했다. 무엇보다 이 안에서 논의되는 주제들은 동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로한 부모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나 의료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어려움 등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이 쉽게 연결된다.
안지환 특히 마지막 장면은 꼭 스크린에서 봐야 그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음악에 신경을 많이 썼다. 조광호 음악감독의 섬세한 작업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