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기 전까지는 모른다. 무엇이 낚일지. <밤낚시>가 관객에게 영화 안팎으로 제공하는 체험도 비슷하다. 한산한 도로를 통과해 인적 없는 전기차 충전소에 도착한 남자는 공중에서 무얼 잡아채려는 걸까? 1천원으로 10여분의 단편영화 티켓을 판매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6월14일 CGV에서 단독 개봉하는 <밤낚시>는 이 탁 트인 질문들에 따를 어떠한 대답도 들을 준비가 된 현대자동차와 손석구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했다. “아이오닉5에 탑재된 카메라의 시점에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이로써 올 초 콘텐츠 제작사 스태넘을 설립한 후 프로듀서로서 첫 극장 출항을 앞둔 손석구는 말했다. “왓챠의 숏필름 프로젝트 <언프레임드> 제작자로서 제게 단편 연출 기회를 줬던, 먼저 이 길에 도전한 ‘동생이지만 선배인’ 배우 이제훈의 감상이 무엇보다 궁금하다”고. 그렇게 <씨네21> 지면 위에서 성사된 두 친구의 대화는 그들이 줄곧 카페에서 혹은 통화로 해왔다는 수다의 연장선상에서 한결 깊어졌다. 이제훈이 모더레이터로 나선 <밤낚시> 코멘터리를 듣고, 손석구가 인터뷰어가 되어 끌어낸 ‘제작자’ 이제훈의 초심까지 살피고 나니 단편영화 서너편은 너끈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이제훈 <밤낚시>를 두번 봤습니다. 너무 재밌어서 깜짝 놀랐어요. 보통 이런 기획으로 영화를 만들다보면 작품이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어 연출과 연기에 있어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을 법한데, <밤낚시>는 기획, 연출, 연기의 합이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 보고 나서 너무 재밌어서 한번 더 봤어요.
손석구 두번 봐도 20분 좀 넘게 걸리죠.
이제훈 제약이 있는 공간에서 숏이 5개 정도로 나뉜 것 같아요. 자동차의 정면과 뒤, 양 사이드….
손석구 총 6개예요. 자동차 앞에 두개, 옆에 두개, 뒤에 하나, 그리고 안에 하나.
이제훈 그 안에서의 창의적인 표현이 영화로 잘 구현돼서 짧게 느껴졌어요. 뒤에 스토리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속편을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라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더 쓰신다면 반가울 것 같아요. 석구 형은 어떻게 해서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거예요?
손석구 자동차에 달린 카메라의 시점으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현대자동차의 첫 기획안이었어요. 시나리오 단계에서 잡힌 기획안은 어떤 긍정적인 한계선을 긋는 것과 같잖아요. 예를 들어 ‘이 영화는 한 남자가 탈출하는 이야기야. 시대, 공간, 배경은 이렇고, 이 남자에겐 어떤 한계점이 있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적으로 긍정적인 한계들을 지어놓을 수 있죠. 반면 카메라 같은 장비에 제한을 두면 영화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좁아져요. 그만큼 큰 도전이고요. 그래서 호기심이 자극됐어요. 이거 한번 해보면 좋겠다 싶었죠. 여담이지만 곧 개봉할 <탈주>의 각색을 도운 문병곤씨가 <밤낚시>를 연출했어요. 병곤이는 제 오랜 친구이기도 하고, 장편을 같이 준비하는 사이라 단편도 함께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연출을 제안했어요. 그 친구가 창의력이 뛰어나거든요. 한계가 주어졌을 때도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내서 <밤낚시>의 컨셉을 잡았어요.
이제훈 제목만 들었을 때는 밤에 호숫가에 가서 물고기 잡는 영화인가 했는데 SF, 스릴러, 미스터리가 다 될 수 있는 영화였어요. 참신한 아이디어로 쓰인 시나리오, 그걸 살린 연출에 빨려 들어가면서 영화를 봤어요.
손석구 병곤씨가 처음에 <노인과 바다>에서 <밤낚시>의 컨셉을 따왔어요. 남자가 바다에 나가서 벌이는 사투의 절반은 곧 기다림이잖아요. 그 기다림 끝에 무언가를 낚는 거고요. 시나리오작가로서 글쓰는 것도 너무 고독한 일이잖아요. 영감을 기다리는 사투 끝에 하나의 창작물이 나오는 과정에 빗대서 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더라고요.
이제훈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감독님의 창작욕과 상상력이 전해져서 영화가 더 짧게 느껴지고, 끝나는 게 아쉬웠어요. 이야기가 더 있을 것만 같아!
손석구 시나리오와 함께 주인공의 전사, 후사도 다 준비했어요. 그런 게 있어야 우리가 보여줄 파편이 단단해질 테니까요. 그래서 그런 기대도 해요. 어떻게 보면 숏폼 형태의 스낵무비를 만든 것도 도전이었지만 나중에는 일반 관객에게 익숙한 장편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이야기 자체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으니까요. 제훈씨랑 같이할 수 있으면 좋고.
이제훈 끼워주시면 얼마든지! (웃음)
영화는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
이제훈 문병곤 감독님과 인연은 오래됐지만 함께 작업한 건 처음이었죠?
손석구 그렇죠. 문병곤 감독은 제가 연기를 하고 싶어 했던 시절에 지인을 통해 우연히 만난 사이예요. 그 친구도 연출을 하고 싶어 했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는데 몇년 후 이 친구가 뉴스에 나오는 거예요. <세이프>라는 단편영화로 칸에서 단편경쟁부문 황금종려상을 받고 인터뷰를 하고 있더라고요. ‘쟤는 됐구나! 부럽다’ 이러면서 나도 열심히 해야지 했는데, 훗날 저도 데뷔를 했고, <뺑반>이라는 영화를 찍게 됐어요. <뺑반>의 한준희 감독님과 병곤씨가 친해서 현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그때부터 ‘우리도 언제 한번 같이해보자’라고 한 게 벌써 7, 8년 전이네요. 영화 한편이 투자를 받아서 만들어진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요?
이제훈 요즘엔 더 기적 같은 일이죠.
손석구 우리도 그 기적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에요. <밤낚시>는 현대자동차의 비전을 보여주는 광고라 할 수 있겠죠. 현대자동차는 유엔개발계획(UNDP)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긍정적인 작업을 많이 해온 걸로 아는데, 우리에게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왔을 때 서로의 니즈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우린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현대자동차는 그런 아티스트와 컬래버를 해서 단순히 제품을 광고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가 가진 예술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싶어 했으니 너무 잘 맞았죠.
이제훈 훌륭한 조합인 거죠. 기업에서 창작자들에게 자유를 주면서 작업할 수 있고.
손석구 100% 자유가 보장된 상태에서 긍정적인 한계만 주어졌어요. 그런데 그건 어떤 시나리오를 쓰든 마찬가지잖아요.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순수성을 어디서 봤냐면, 사실 작품을 만들고 나서 어떻게 활용할지 어디서 어떻게 틀지 정해놓지 않았어요. 그러다 감독과 제가 극장으로 한번 가보자고 결심한 거죠. 영화를 찍을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극장에 어떤 활력소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이제훈 무척이나요.
손석구 어떤 극장은 우리의 도전에 동참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역시나 좋게 봐준 곳이 있었고, 이렇게 제훈씨와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까지 생겼네요.
이제훈 CGV에서 개봉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관객이 천원을 지불하면 단편 한편을 볼 수 있도록 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파격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시도로 느껴졌어요.
손석구 저희끼리 회의하면서 그런 얘길 했어요. 다이소에서 천원짜리 물건을 사는 경험은 늘 재밌잖아요? ‘천원에 이런 것도 팔아?’ 하면서 가게를 둘러보죠. 극장에서의 경험도 그렇게 재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시작이었어요. 저녁에 밥 한끼 먹고 남는 시간에 잠깐 볼 수 있는 영화, 친구한테 ‘천원 내고 극장에서 영화 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인 것만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또 모르잖아요 이렇게 예산이 적은 스낵무비가 잘되면 새로운 감독, 배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의 허들도 낮아질 테니까요.
이제훈 음악부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폴리 사운드 하나까지 너무 디테일하게 작업해서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 하는 작품이에요. 관객들이 큰 스크린으로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형도 배우로서 고생을 많이 했겠더라고요? 차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손석구 저는 문 감독님한테 그랬어요. <밤낚시>를 찍는 3일이 <범죄도시2> 촬영보다 힘들었다고. 이 작품을 찍으면서 온몸에 멍이 들었거든요. 감독님도 저한테 되게 미안해했죠. 이게 또 영화 만드는 묘미인데, 제가 알기로 처음에는 감독님이 <밤낚시>를 어느 정도의 서정성을 가진 영화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와 <댓글부대>도 같이 찍은 조형래 촬영감독이 대본을 보더니 ‘액션이 좀 들어가야 되겠다’라며 의견을 내고, 그렇게 무술감독을 찾아가니 ‘이런 컨셉의 액션이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각자의 아이디어가 영화에 조금씩 첨가되기 시작했어요. 영화는 역시 다 같이 만드는 거구나를 느꼈죠. 저도 이렇게 날아다니는 정도의 액션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 (웃음) 현대자동차 분들도 고민이 컸을 거예요. 자동차에 달린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거라 영화에는 자동차가 안 나온다고 했을 때도 그걸 허락해주셨어요. 차를 박살내가면서 찍었는데, 아이오닉5도 고생을 많이 했죠.
이제훈 그래서인지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의 영혼이 작품에 진하게 들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아요.
손석구 다들 무언가 시도해보는 재미를 느끼며 작업한 것 같아요. 미술, 무술, 촬영, 음향팀 전부요. 단편은 장편으로 데뷔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우리는 단편이지만 장편 상업영화가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를 끌어오고 싶었어요. 이 영화에 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게 <밤낚시>는 제가 스태넘이라는 제작사를 차리고 처음 제작한 영화예요. 기획부터 배급까지 온전히 다 책임져보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영화 만드는 단계를 하나씩 다 경험했는데, 그중에서 제가 가장 즐긴 부분이 사운드였어요. 믹싱을 한국팀과 영국팀이 번갈아가면서 했는데, 그러면서 사운드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처음엔 극장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2 채널 스테레오로만 믹싱을 했어요. 뒤늦게 리마스터링을 했는데, 극장에서 서라운드 시스템 채널로 잘 나올지 아직도 너무 궁금해요. 사운드가 영화의 절반이라는 말이 정말 맞구나 싶어요. 같은 새소리, 자동차 소리라도 해외 믹싱팀이 하면 뉘앙스가 다르니 영화가 좀더 이국적으로 느껴질 법한 부분도 있다는 걸 경험했고요.
이제훈 그런 점에서도 <밤낚시>는 관객이 극장을 찾아 돈을 내고 볼 때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영화예요. 기획부터 제작 과정, 연출, 홍보, 마케팅, 이제는 배급까지 칭찬해주고 싶은 프로젝트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도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손석구 갑자기 궁금한 게 이제 제훈씨도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제작도 겸하고 있잖아요? 여기서 다 공개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어떤 계획이 있나요?
이제훈 계획은 여러 가지로 많이 하고 있는데요, 지금 제가 운영하는 제작사는 OTT 시리즈로 먼저 인사를 드리게 될 것 같아요. 출연진은 아직 확정짓지 않았는데 열심히 구상하고 있어요. 그 작품에 제가 배우로 참여할지에 대해선 열려 있어요. 제가 타이틀롤을 맡을 수도 있지만, 다른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고요.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제작사를 시작했는데, 창작에 대한 욕심이 생기다 보니 드라마까지도 생각하게 됐네요. 형과 함께했던 <언프레임드> 프로젝트가 도움이 많이 됐어요.
색다른 경험의 영화이길
손석구 우리 둘 다 배우잖아요? 작품을 만든다는 관점 자체는 똑같지만 제작자로서 그 롤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죠. 제작사를 차려서 영화 만드는 일에 조금 더 깊게 관여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좀 들어보고 싶었어요.
이제훈 한편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첫 시작은 ‘글’이잖아요. 배우로서 그 글을 보면서 작가의 의도나 감독의 연출을 상상하고, 함께 만드는 사람들과 그 상상이 일치할 때 너무 좋죠. 내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아이디어가 더해지면 더 기쁘고요. 그런데 글에서 받은 인상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걸 따라야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이 생기잖아요? 그걸 따르기로 했을 때 과정을 돌아보면, 배우로서 당연히 연기에 집중하는 게 맞지만 내가 표현한 것이 편집될 수도 있고, 의도한 대로 나오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렇게 시나리오를 보며 상상한 것과 다른 결과물을 인식하고 아쉬웠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손석구 되게 솔직한 이야기네요.
이제훈 그랬을 때, 내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었죠. 좀더 원활하고 긴밀하게 소통해서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작품 하나하나를 찍으면서 깨달았어요. ‘나는 연기만 잘하면 되지’가 아니라 배우로서 감독이나 다른 파트에 있는 사람들하고도 얼마든지 내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좋은 부분은 응원하고, 아쉬운 부분은 지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소통에 있어 제가 많이 열리면서, 감독님과 작가님, 또 많은 스태프들에게 제 의견을 들려주면서 함께 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그게 작품을 만들어가는 올바른 방향이 아닌가 싶어요.
손석구 제작을 병행하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은 응원해줬지만 간혹 ‘네 그런 행보가 안 좋게 비칠 수도 있다’라는 얘길 들었어요. 제훈씨도 분명 이런 얘길 들어봤을 텐데, 그럴 땐 어땠어요? 저는 ‘진짜 그런가?’ 하면서 걱정도 되고 그랬거든요.
이제훈 저도 그런 이야길 많이 들었는데, 궁극적으로 내가 왜 제작을 하려는지를 생각했어요. 좋은 작품을 보고 싶으니까. 내가 참여한 작품에 스스로 만족하고 싶으니까. 이게 제 대답이에요. 연기에 대해 부족함을 항상 느끼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는데, 연기 말고도 수많은 요소가 모여서 작품을 완성하잖아요. 그런 부분의 아쉬움을 왜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 말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어요. 관객, 시청자들에게도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고요.
손석구 ‘하나만 잘해야지, 제작하다가 연기도 잃고 다 잃는다!’ 주위에서 이런 얘기들도 하잖아요.
이제훈 연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맞죠. 그런데 콘텐츠 시장, 특히 영화의 역사가 100년 이상 지속되는 걸 지켜보면서 제가 품은 의문이 있어요.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더 오래된 고전영화를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는데, 지금 나오는 작품이 예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더 좋은 이야기인가? 내 기억으로는 옛날에 더 재밌는 작품이 많았던 것 같은 거죠. 지금 우리는 배우로서 현재 작품에 빠져서 작업하고 결과물을 보여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 부분이 어떨 땐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부끄럽더라도 결과물로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라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 부담일 수도 있지만 기회가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이젠 이 작품이 안됐으니 다음에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기보단 한 작품 한 작품을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임해요.
손석구 우리 저번에 만났을 때도 제훈씨가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나는 영화 만드는 일에 그냥 올인했다!’ 그 말이 되게 인상 깊어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얘기했어요. 친구가 ‘너, 제작에도 참여하면 더 바빠질 텐데 괜찮겠어?’ 하고 물으면 ‘제훈이는 개인 시간이나 여행도 포기하고 이것만 한대. 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했죠. (웃음) 제훈씨가 그런 말도 했잖아요. 지금 나이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라고. 그것도 맞는 얘기인 것 같아요. 더 늙으면 못할 것 같아!
이제훈 그러니까요. 이렇게 열정을 불태우면서 하기엔…. 그런데 형은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손석구 마음은 가득한데 몸이 힘드니까….
이제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작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함께하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손석구 이번에 개봉하는 <탈주>에서도 (구)교환이 형을 직접 캐스팅한 거예요?
이제훈 제가 직접 캐스팅을 했다기보다는 교환이 형이 출연해주는 게 제 바람이었죠.
손석구 제훈씨의 입김이 캐스팅에 작용한 건가?
이제훈 제가 시상자로 청룡영화상에 갔었는데, 당시 제게 주어진 질문이 ‘감독으로서 누구를 캐스팅하고 싶나’였어요. 그런데 대답하기가 좀 부끄러운 거예요. (웃음) 오히려 그냥 ‘내가 배우로서 같이 작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게 구교환 배우다’라고 한 거죠.
손석구 그것도 제작자다운 능력인 거지. 그때 한창 모두가 교환이 형을 데려가고 싶어 했는데 선점한 거잖아요.
이제훈 시상식 다음날 바로 나무엑터스 김종도 대표님을 통해 교환이 형한테 시나리오를 보냈어요. 교환이 형이 시나리오 잘 봤다면서, 제가 공식 석상에서 프러포즈를 한 게 <탈주>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죠.
손석구 우린 알지만, 캐스팅은 전쟁이잖아요. 듣기로는 촬영 들어가기 1년 전, 1년 반 전에는 시동을 걸어야 캐스팅도 된다면서요. 저도 캐스팅을 당하는 입장이지만 캐스팅하는 분들을 보면 캐스팅이 그 자체로 타이밍의 예술 같거든요. 캐스팅이 정말 쉽지 않잖아요. 제훈씨가 어떻게 보면 그걸 해낸 거네요.
이제훈 그래서 너무 고마웠어요. 같이 작품을 하면서 더 구교환이라는 배우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형은 뭐랄까….
손석구 상대를 긴장하게 만들죠.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 배우잖아요. <탈주>는 아직 개봉은 안 했지만 친구가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고, 제훈씨도 나오니까 예고편을 여러 번 봤거든요. 교환이 형도 이미지 변신을 한 것 같던데, 그런 역할로 섭외를 시도한 제훈씨의 선택도 탁월해 보였어요.
이제훈 오랜만에 극장 스크린을 통해 보여드릴 영화라 너무 궁금하고 떨리네요.
손석구 그래도 이제 나름 한국영화가 개봉을 꽤 하는 것 같더라고요. <탈주>와 비슷한 시기에 여러 편이 나오는데, 난 좋은 것 같아요.
이제훈 예전에는 이렇게 많이 나왔잖아요? 요즘에는 극장 개봉에 소극적이다 보니 내년에 극장에 걸릴 한국영화가 얼마나 있나 생각해보면, 진짜 수적으로 많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개봉 기회가 더 소중하죠.
손석구 맞아요. 그리고 무섭죠. 사실 나는 다시 영광의 시대가 올 거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면서도 무섭기도 해요. 언젠가 영화가 더이상 핫한 문화상품이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이제훈 창작자의 의도를 살려서 좋은 시나리오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같이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손석구 개인적으로 극장 영화를 좀더 하려고 노력해요. 요즘에는 들어오는 작품의 70%가 OTT 작품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영화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하는 것 같아요.
이제훈 저도 무엇보다 극장이 주는 재미와 감동이 좋아서 계속 극장에서 상영하는 작품에 참여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밤낚시>를 보면서 더더욱 관객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느꼈어요. 이런 시도가 계속될 수 있는 기회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손석구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볼 때의 카타르시스가 확실히 있잖아요.
이제훈 <밤낚시>가 특히 그럴 거예요. 요즘 더워졌잖아요? 관객이 짧은 시간 동안 극장에서 에어컨 바람 쐬면서 몰입하고 짜릿하게 나올 수 있는 영화예요.
손석구 관객들로부터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평을 가장 듣고 싶어요. 어찌됐든 저는 <밤낚시>라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온전히 함께하면서 추억도 많이 생겼고,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주어진 시간이 짧게만 느껴지네요. 하고 싶은 말이 뭉쳐 있다 보니 기억은 또 안 나고. (웃음) 그래도 제훈씨와 이야기할 수 있어 뿌듯했고, <밤낚시>도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남을 거예요. 색다른 경험일 거고요. 그러니까 6월14일 CGV에서 개봉하는 스낵무비 <밤낚시>,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이제훈 <밤낚시>를 연출한 문병곤 감독님도 앞으로가 정말 기대됩니다. 석구 형과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계시다니 더 기대가 되고요. 이 시너지에 저도 동참하고 싶네요. 오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어요.
손석구 제 친구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문병곤 감독은 독특한 감성의 시네필이에요. 정말 무언가가 될 것만 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날이 오기를 바라요. 병곤이와 제훈씨와 제가 현장에서 만날 날을!
<밤낚시> 문병곤 감독은
문병곤 감독이 칸을 매료한 시간은 단 20분. 그는 혼자 사는 노인의 절망과 희망을 7분 안에 포착한 <불멸의 사나이>(2011)로 제64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았고, 불법 환전소를 배경으로 한 13분간의 사투 <세이프>(2013)로 제66회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트로피를 품에 안은 후 만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흥미 있는 문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차근차근 공부한다”고 말했던 그는 “자동차에 달린 카메라들로만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밤낚시>를 찍었다고 한다. 그렇게 소설 <노인과 바다>, 언젠가 본 참치 낚시 영상에서 모티프를 얻어 <밤낚시>에 임한 그는 오랜 친구인 손석구와 함께 첫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