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재단 문화콘텐츠공모전은 안전한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동안 공모전을 통해 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기자랑>과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한 장편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이 개봉해 관객과 만났다. <목화솜 피는 날>이 1만 관객을 막 돌파한 주말을 지나, 올해 4·16재단 비상임 이사 임기를 마친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박래군 4·16 재단 운영위원장, 그리고 <목화솜 피는 날>의 구두리 작가를 한자리에 초대했다. 세월호 영화로는 최초로 선체 내부에서 촬영한 <목화솜 피는 날>의 의의, 개봉 상영회에서 4·16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는 연대의 풍경 등을 나누는 사이에도 ‘세월호 영화’는 조금씩 앞으로의 10년을 향해 나아갔다. 6월24일부터 7월12일까지 접수를 받는 올해 공모전 역시 생명·안전·약속의 가치를 전하는 장편 극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에 폭넓게 열려 있다.
- 얼마 전 구두리 작가의 백상 연극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연극계에 오래 몸담고 있다가 <목화솜 피는 날>로 시나리오를 처음 썼다. 며칠 전 1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소회는 어떤가.
구두리 희곡에서는 무대장치에 의존해야 하니까 장소가 바뀌면 가령 “여기가 바다야!”라는 말을 넣어줘야 한다. 시나리오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배운 셈이다. 참사 당일, 나는 지하 연습실에서 한참 머무르다가 중국집에 가서 배우들과 짜장면을 먹으면서 전원 구조 소식을 보고 안도하며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연습실에서 나왔을 때 배가 가라앉았고 아이들이 구조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때의 충격과 부끄러움이 이 작업으로 나를 이끌었다. 지금까지 10년간 조금씩 취재하면서 만났던 유가족, 활동가 분들을 영화 개봉 후 만났을 때 개인적으로도 나 자신이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게도 어떤 살풀이 같은 작업이었다.
- 연분홍치마가 제작하고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가 참여한 <목화솜 피는 날>은 지난해 4·16재단 문화콘텐츠공모전 입상작이기도 했다.
심재명 4·16재단 비상임 이사를 맡게 되었을 때 영화 일을 하는 내가 재단에 무슨 보탬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면서 영상 콘텐츠 공모전을 통해서 작품이 배출될 수 있게 돕는 창구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일반적인 시나리오 공모전과 달리 4·16 참사, 그리고 사회적 재난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는 소재 및 주제의 제약 때문인지 운영 초기에는 지원자들이 없거나 공모전에 뽑혀도 만들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더러 있었다. 지난해 <장기자랑>, 그리고 이번 <목화솜 피는 날>처럼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을 만나는 작품이 늘고 있는 것이 정말 기쁘다. 특히 <목화솜 피는 날>은 영화적으로 너무나 신뢰하는 김일란 감독님과 연분홍치마의 작업이라는 점, 드라마계 스타 감독인 신경수 PD의 영화 데뷔작이라는 점도 놀랍다.
박래군 <목화솜 피는 날>은 유가족들의 지지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점, 특히 앞으로 한동안 세월호 내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게 생각한다. 지난해 정부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선체 내부 진입을 갑자기 금지했는데 납득하기 어렵다. 2026년에 세월호 선체를 목포 고하도로 옮겨 추모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라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 <목화솜 피는 날>을 준비하며 세월호 10주기 영화라는 점에서 작가로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
구두리 작업 초기의 가장 큰 중압감은 유가족 분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었다. 글이 풀리지 않아 한자도 못 쓰는 상황에서 크랭크업을 4개월 앞둔 무렵 목포에 내려가게 됐다. 그때 선체 내부를 동수 아버님이 가이드해주셨다. 3시간 정도를 돌면서 꼼꼼히 봤다. 동수 아버님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맑고 담담한 에너지로 선체 내부를 설명해주셨다. 그에게서 받은 인상을 작품에도 녹여냈다.
- 그 순간을 영화 에필로그에서 박원상 배우가 재현했다. 딸을 잃은 병호(박원상)는 참사 트라우마로 기억상실증을 겪는 동안 다른 유가족들과도 갈등하다가 천천히 일상을 회복하게 된다.
박래군 구두리 작가가 실제로 만난 동수 아버님은 세월호에 가장 많이 드나든 사람이다. 어느 유가족도 처음 세월호 안에 들어가면 오래 있지를 못한다. 동수 아버님이라고 처음엔 왜 안 그랬겠나.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담담히 설명해주지만 그도 엄청나게 어려운 시간을 거쳤다. 그사이에 병도 나고 망가지기도 하면서 지금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구두리 처음 시나리오를 탈고하고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에 피드백을 받으러 간 적 있다. 그때 엄청나게 긴장했었다. 이런 유가족을 묘사해도 될까? 그런데 유가족 분들은, 우리는 이것보다 더 심하게 망가지고 치열하게 싸웠다면서 내가 쓴 시나리오는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다고 하시더라. 그때 한시름 놓았다. 개봉 후 참사 유가족들을 모셨던 상영회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는데 특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 그동안 공모전을 통해 나온 또 다른 훌륭한 작품들을 소개해준다면.
심재명 <말아톤>을 만든 정윤철 감독이 김탁환 작가의 소설 <거짓말이다>를 원작으로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썼고 2021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정윤철 감독의 시나리오는 재난을 스펙터클화하지 않고, 김관홍 잠수사 개인을 지나친 연민의 시선으로 그리지도 않았기에 매우 기대되는 작품이지만 물속 구조작업을 표현해야 하는 등 제작이 만만찮은 프로젝트인 건 사실이다. 드라마 단막극으로 응모한 작품 중에도 우회적으로 은유하거나 상징을 통해 훌륭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 꽤 있다. 이런 작품들이 꼭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10주기를 지나 앞으로의 10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다. 영화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박래군 4·16 세대 이후의 미래세대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활동을 하면서 매번 자각하는 건, 지금쯤이면 모두가 알겠지 싶은 때에 여전히 미래세대는 모른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10년이 지났으니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잘 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 현장에 나가고 직접 다크 투어에 관한 책도 쓰고 했지만,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방법에 대해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심재명 죽은 자들, 희생자들과 같이 사는 사회임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와주길 바란다. 죽음을 터부시하고 정부의 무능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문화 속에 우리는 너무 오래 있었다. 가령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해서 이것이 자본주의의 폐해이기도 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짚어주는 영화가 나왔으면 한다.
- 명필름은 꾸준히 사회적 메시지가 녹아든 작품을 제작해왔다. 올해 4·16재단 비상임 이사 임기를 마쳤는데, 그동안을 돌아보면 어떤가.
심재명 2014년에 광화문에서 영화인들이 동조 단식을 했다. 당시 문소리 배우가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되지 않냐고 해서,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와 함께 뜻을 세워서 단식 운동을 시작했고 광화문에서 기자회견도 했다. 박찬욱 감독, 배우 송강호 등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인들이 흔쾌히 나섰다. 무엇보다 단식하던 날 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밤새 아이들 모습이 담긴 핸드폰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몸 깊은 곳에 새겨졌다. 영화인으로서 사회적 참사에 힘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날 이후로 계속하게 된 것 같다. 관객은 언제나 영화를 통해 새롭게 경험하고 배우게 된다.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들면서 여성 핸드볼팀의 상황을,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들면서 분단의 현실을, <카트>를 만들면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세계를 비로소 제대로 직면했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앎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 박래군 운영위원장은 지금껏 40년 가까이 인권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현장에서 활동하면서도 영화, 그리고 문화예술 콘텐츠의 힘이 참사의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
박래군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투쟁 때 분향소에서도 콘서트를 열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오고 이야기가 전달된다는 걸 내 몸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 같다. 아픈 기억일수록 문화적인 방식으로 기억해야만 오래간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합창, 연극, 공방 수업 등을 열어서 버텼다. 과거에 피해자들은 아파하다가 흩어졌다. 지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국가는 재난 참사를 우연히 벌어진 불행한 사고로 취급했다. 그래서 대충 보상해주고 빨리 치워버리는 것이다. 외딴 풀숲에 위령탑이 숨겨져 있는 식이다. 안산 도심 한복판, 시민들이 많이 애용하는 곳에 생명안전공원을 만들자고 애쓴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세월호는 2026년에 목포 고하도로 옮겨 2029년 추모 교육 공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하도에 생길 추모 공간은 인양한 여객선을 보존해서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 정말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다. 말하자면 세월호는 우리 사회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재난 참사를 대하는 프레임 자체를 바꿨다고 해야 할까. 사고 프레임에서 사건 프레임으로 위치를 바꿨다고도 이야기한다. 이제 우리는 그 이전의 참사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보상이 아니라 진실이 중요해지고 사회적 치유를 논하게 된다. 이 프레임 전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 가족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을 따르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변화의 과정에 있다.
- 앞으로 4.16 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에 참여할 창작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심재명 지금까지는 소재와 주제의 제약 탓인지 출품작간의 완성도에 격차가 꽤 있었다. 세월호 10주기를 지나고 <목화솜 피는 날>처럼 개봉작도 나왔으니 이번 6회 공모전엔 우선 더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길 바란다. 꼭 세월호 참사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야기, 사회의 아픔을 은유하는 이야기로 넓게 접근해도 좋겠다. 용기를 내서 지원해달라.
구두리 창작자로서는 재현의 어려움, 윤리적인 고민에 너무 짓눌리지 말라고 독려하고 싶다.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기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다양한 방식을 표현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