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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훈의 영화의 검은 구멍] 트랜스포머의 변신은 유해하지 않습니다, 21세기 할리우드에 나타난 혼돈의 영화
2024-07-03
글 : 이도훈 (영화평론가)
<트랜스포머>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미지를 과도하게 전시하는 영화들이 대거 제작되었다. 마티아스 스톡(Matthias Stork)은 자신의 비디오 에세이를 통해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경향을 혼돈의 영화(chaos cinema)라고 불렀다. 그는 다양한 기교를 사용하여 다량의 이미지를 빠르게 보여주는 영화들이 할리우드가 하나의 법칙처럼 지켜온 시공간의 연속성을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 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혼돈의 영화를 엽총의 미학(shotgun aesthetic)을 앞세워 전통적인 할리우드의 규범을 파괴하는 불온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 불온한 반란의 선봉에 선 감독 중 한명으로 마이클 베이가 있다. 그가 연출한 <트랜스포머>(2007)와 그 작품에서 이어지는 시리즈는 외계에서 온 로봇 생명체들이 육해공을 넘나들면서 결투를 벌이는 장면을 정신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다양한 프레임과 앵글, 평균 숏 길이의 축소 등을 활용해서 그렸다. 마이클 베이가 추구한 엽총의 미학에 대해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특히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불만을 토로한 이들은 그 작품들이 기계, 금속, 영토, 힘 등에 대한 남성의 판타지를 극대화하고, 지나치게 빠르고 화려한 효과로 인해 서사의 연속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부 기자와 관객들은 ‘따분하다’, ‘멍청하다’, ‘정신 사납다’와 같은 직설적인 표현으로 이 시리즈에 대한 평가를 일축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평가만으로 마이클 베이의 반란이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스티븐 샤비로(Steven Shaviro)는 마티아스 스톡과 대척점에서 <트랜스포머>를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비논리적인 이미지를 앞세운 영화에서 연속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스톡의 주장을 반박했다. 연속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약해지며, 연속성이 물러난 자리를 새로운 형식과 스타일이 대체한다는 것이다. 샤비로는 탈-연속성(post-continu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거 할리우드의 규범으로 이해되었던 연속성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에 나타난 변화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기존 할리우드영화가 서사의 연속성에 대한 관객의 인지를 중시했던 것과 달리 동시대 할리우드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에 대한 관객의 지각을 더 중시한다. 샤비로와 비슷한 관점을 가진 영화연구자들 또한 할리우드가 중시한 연속성의 핵심이 서사적인 것에서 지각적, 본능적, 정동적인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단순히 관객의 정신을 분산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시리즈는 전통적인 영화 형식과 영화 경험에 충격을 가하는 실험에 가까운 것이다.

디지털 이미지의 거대한 소용돌이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그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변신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 시리즈에서 변신은 한편으로는 앞서 언급한 영화 형식과 영화 경험에서 나타난 변화를 의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지의 생성, 처리, 배열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를 의미한다. 주요 캐릭터인 외계 로봇 생명체들은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지구상의 모든 기계장치로 변신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에는 한 기업의 대표가 로봇 종족의 잔해를 연구해서 만든 ‘트랜스포뮴’이라는 물질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우리는 모든 걸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는 <트랜스포머> 시리즈 전체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말과 같다. 그 세계관은 로봇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조립, 해체, 합체되는 순간을 관객의 눈앞에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로봇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서 완성된다. 이 시리즈의 시각효과에 참여한 ILM(Industrial Light & Magic)은 작품 속 로봇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조립의 원리를 적용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하나의 로봇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을 따로 제작한 다음 그 부품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완전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관객인 우리는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된 로봇과 그것의 변신 과정을 보면서 그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진짜인 것처럼 믿을 수밖에 없는 감각을 얻는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로봇이 변신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감춘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로봇의 변신 방식은 다채로워지고 복잡해졌다. 우선 부품과 부품을 결합하는 방식이 주로 쓰였다. <트랜스포머> 시리즈 전체에 하나의 기본값으로 적용된 이 변신 방식은 금속성의 물질들이 서로 마찰음을 내면서 하나의 완전체로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시각적인 볼거리와 감각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다음으로 로봇과 로봇이 결합하는 방식이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에서 중요하게 쓰였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데바스테이터(devastator)는 10개의 건설 중장비가 합체된 것으로, 이 로봇의 변신을 시각화하기 위해 총 8만개의 부품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입자들을 결합하는 방식이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에서 중요하게 쓰였다. 이 작품에는 트랜스포뮴으로 만들어진 50여개의 로봇들이 입자 단위를 기반으로 변신한다. 이처럼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로봇의 변신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규모를 확장하거나 단위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꾸준히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를 이미지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로봇의 변신을 시각화하기 위해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큰 스케일 또는 작은 단위로 이미지를 생성, 처리, 배열한 것이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관객인 우리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나타나는 로봇의 변신을 보면서도 그 전부를 보지 못한다. 찰나의 순간에 수만개의 부품이 결합하거나 셈할 수 없는 입자들이 결합하는 장면은 관객의 지각 범위를 벗어난 현상이다. 우리는 극단적인 편집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뿐더러 소프트웨어와 알고리듬에 의해 미시시간적으로 처리된 이미지의 진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대신 관객은 그 변신의 운동감각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느낀다. 그런 점에서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관객은 이미지를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이미지를 경험하는 자라고 불러 마땅하다. 마치 데바스테이터가 거대한 입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고 했던 것처럼, 관객은 디지털 이미지가 만든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이 영화적 혼돈을 기존의 질서로 바로잡으려고 하지 말자. 그 혼돈은 영화적 경험의 패러다임이 이미지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이미지를 감각하고 느끼는 것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도훈의 영화의 검은 구멍

디지털영화의 등장을 둘러싼 성급한 예찬과 냉소적 비판이 수그러든 상황에서 지난날의 변화를 문자 그대로 캡처해보고 싶었다. 21세기의 대중영화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서 영화가 관객을 매혹하는 방식과 관객이 영화에 반응하는 모습을 교차해서 생각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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