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
Apple TV+ | 8부작 / 연출 안네 세비스퀴, 그레그 야타네스 / 출연 제이크 질런홀, 루스 네가, 피터 사즈가드, 레나테 라인스베, 빌 캠프 / 공개 6월12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모든 가능성을 집어삼키는 제이크 질런홀이라는 중력
스콧 터로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무죄추정>은 법정 추리물의 촘촘한 플롯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시리즈는 검사장 선거를 앞두고 시카고 검찰청이 맞닥뜨린 충격적인 사건에서 시작한다. 동료 검사였던 캐럴린(레나테 라인스베)은 기이하게 결박된 채로 자택에서 살해당한다. 재선에 도전한 검사장 레이먼드(빌 캠프)는 차장검사 러스티(제이크 질런홀)에게 서둘러 수사를 맡긴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전에 레이먼드는 선거에서 패배한다. 새로운 검사장은 러스티의 숙적 토미(피터 사즈가드)에게 사건을 이첩한다. 토미는 수사권을 쥐자마자 러스티와 캐럴린 사이의 과거를 파헤치고, 급기야 러스티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물론 탄탄한 경력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그는 레이먼드에게 변호를 부탁한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될수록 러스티가 숨겨온 비밀들이 점점 그의 목을 조여온다. 동료의 죽음을 수사하던 검사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앞선 문장은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둔다. 사건을 둘러싼 가정법에는 권력의 음모론, 원한에 의한 복수극, 혹은 모범시민의 이면까지 어떤 단어를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무죄추정>을 이끄는 긴장감은 ‘어떤 해석도 쉽게 소거할 수 없음’에서 비롯한다. 피고인의 부도덕함, 기소인의 열등감, 변호인의 야심 등 등장인물들의 이해관계는 유력한 정황증거마저 혼란스럽게 만든다. 법정 추리물의 기본 미덕인 탄탄한 플롯과 입체적인 인물 묘사를 착실히 수행하며 얻어낸 성과다. 커리어 첫 시리즈 주연에 도전한 제이크 질런홀은 다층적인 얼굴로 러스티를 연기해 팽팽한 미스터리의 구심점을 만들었다. 어떤 증거도 드러내지 않는 그의 표정은 강력한 자장이 되어 논리와 진실마저 빨아들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최현수 객원기자
<블랙 바비>
넷플릭스 | 감독 러제리아 데이비스 / 출연 러제리아 데이비스, 블라 메 미첼, 키티 블랙 퍼킨스, 스테이시 맥브라이드 이르비 / 공개 6월19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바비>의 카메라 바깥에 있는 모든 흑인 여성에게 바치는 찬사
감독(러제리아 데이비스)은 어릴 적 흑인 인형으로 가득했던 이모의 방을 회상한다. 이모(블라 메 미첼)는 바비 인형을 발명한 마텔의 직원으로 일하며 첫 흑인 바비 인형 블랙 바비의 탄생에 공헌한 바 있다. 영화는 이모의 자전적 경험을 시작으로 블랙 바비의 탄생 비화를 추적한다. 나아가 블랙 바비가 백인 중심인 기존의 미적 기준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부상하는 과정을 그린다.
<블랙 바비>는 <브리저튼> 시리즈의 숀다 라임스가 제작에 참여해서 13년 가까이 되는 기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 공을 들인 만큼 아카이브가 풍성하고 자료가 연대기순으로 깔끔히 정리되었다. 바비 인형을 만든 주역뿐만 아니라 감독 본인을 포함한 여러 흑인 여성의 회상으로 바비가 흑인 소녀에게 지닌 의미를 드러낸 점도 인상적이다. 개인의 자전적 서사가 흑인 페미니즘 역사와 공명하는 지점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김경수 객원기자
<악몽의 룸메이트 시즌2>
넷플릭스 | 4부작 / 감독 신시아 차일드 / 공개 6월26일 (*출연자는 일반인이라 크레딧 표기 없어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집 안의 서늘한 공기는 포착하지만 집 밖의 겨울은 모른 체한다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악인은 우리와 같은 집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블룸하우스가 제작하고 <뉴욕 매거진>의 저널리스트 윌리엄 브레넌이 각본을 담당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악몽의 룸메이트>는 동거하는 룸메이트가 저지른 잔혹하거나 엽기적인 범죄 사례를 다룬다. 시즌2에도 오랜 절친이자 룸메이트에게 아이를 빼앗길 뻔한 사연, 집이 있어야 하는 부부를 노리는 집주인, 퇴역 군인과 죽은 전우의 아내가 동거하며 생긴 범죄, 집주인에게 폭행당한 룸메이트 등 네 사례가 다루어진다. 자극적인 소재로 인해 대중의 흥밋거리로만 소비될 여지가 있는 기획이지만 감독은 소재의 자극성을 중화하려 노력한다. 저널리즘 정신을 따라서 사건의 맥락을 입체적으로 다룬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만 주택문제같이 사건 당사자가 처한 사회적 맥락에 대한 설명이 미흡해 다큐멘터리가 끝난 이후에 이어져야 할 질문을 축소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김경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