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퍼펙트 데이즈’, 삶은 곧 수행. 그러니 적절한 여백을 즐길 줄 아는 태도로
2024-07-03
글 : 조현나

히라야마(야쿠쇼 고지)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다. 그의 하루는 간결하다. 새벽에 일어나 식물에 물을 주고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구매한 뒤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화장실 청소가 마무리되면 단골 식당에 들러 술을 한잔하고, 책을 읽다 잠자리에 든다. 오랜 시간 반복해 굳어졌을 그의 생활 패턴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반복된다. 동료 타카시(에모토 도키오)는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화장실”을 히라야마가 왜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는지 모르겠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내뱉지만 히라야마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그에게 예기치 못한 변화가 생긴 건 조카 니코(나카노 이라사)가 무작정 찾아오고 나서다. 엄마와 다투고 가출했다는 니코는 삼촌을 따라 청소를 도우며 그의 방식에 점점 익숙해진다. 히라야마에게 연락을 받고 히라야마의 여동생이 딸을 데리러 온다. 오랜만에 마주한 여동생 앞에서 히라야마는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독일 합작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공공 화장실들을 수리하는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빔 벤더스 감독은 ‘수리한 화장실을 보고 영감이 떠오른다면 관련된 작품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 도쿄에 와 <퍼펙트 데이즈>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일과를 여러 차례 보여주면서도 인물을 깊게 파고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가령 히라야마의 하루에 여러 사건을 접목해 변주를 꾀하고 그 틈으로 인물의 전사, 주변인과의 관계, 개인적인 감정을 유추할 단서를 쥐어주긴 하지만 그뿐이다. 인물과 관객의 거리는 마지막까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여백 가득한 히라야마의 하루를 따라가면서 그가 고립됐다고 느껴질 즈음, 일과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말수도 적고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음에도 히라야마는 종종 미소로 답변을 대신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청소 일을 무시하고 손님의 방문으로 루틴이 어그러질 때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상황을 제어할 순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본인의 선택이라는 듯이. 히라야마가 사진을 보관하는 방법과도 비슷하다. 그는 매일 필름 카메라로 점심시간대의 하늘을 촬영하고 현상한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결과물만 모아둔다. 제외된 사진은 과감히 버린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비워내는 것. 삶을 대하는 히라야마의 태도는 수행자의 것과 유사하다. 그렇기에 “화장실이 등장하지만 화장실 이야기가 아닌”(빔 벤더스) <퍼펙트 데이즈>의 거리두기, 삶에 공백을 적절히 배치한 히라야마의 선택은 더없이 유의미하게 느껴진다. 기교 없는 담백한 촬영과 연출이 단조롭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극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능한다. 몸과 표정에 말보다 많은 것을 담아내면서 야쿠쇼 고지는 자신의 연기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제47회 일본 아카데미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CLOSE-UP

어둑한 밤, 머리맡의 조명 하나만 켜둔 채 히라야마는 조용히 책장을 넘긴다. 타인으로부터의 방해 없이, 오늘 하루에 대한 성찰이나 후회 없이 오로지 책의 세계로 빠져드는 시간. 반복되는 담백한 하루의 마무리가 보는 이에게도 만족감을 선사한다.

CHECK THIS MOVIE

<패터슨> 감독 짐 자무시, 2016

버스 운전사인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일상도 히라야마와 비슷하다. 운전을 마치고 아내와 식사한 뒤 반려견과 산책하고, 맥주 한잔하며 저녁을 보낸다. 히라야마가 점심 무렵의 빛을 기록했다면 패터슨은 시로서 하루를 남긴다. 단조로운 일상에 나름의 운율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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