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오디세이]
[박홍열의 촬영 미학] 서사에 가려진 채로 서사를 빛내는 색,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옐로와 블루
2024-07-24
글 : 박홍열 (촬영감독)

영화 속의 색은 지각 가능하다. 하지만 강력한 서사와 캐릭터 앞에서 우리의 감각은 색에 대해 인식 불가능 상태로 놓일 때가 많다. 색에 대한 지각이 곧장 반응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영화 속 색은 분명히 있다. 다만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미처 인식하지 못한 영화 속 색들이 쌓여 긴장과 감정을 잘 만드는 영화 중 한편이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다.

영화의 룩과 관련된 색감을 구현하는 빛의 색은 옐로와 블루가 주를 이룬다. 가시광선의 스펙트럼 안에서 조명기의 광원이 만드는 색온도(빛의 색을 파장으로 표현하는)가 옐로에서 블루까지기에 카메라와 조명기에서 만들어내는 빛의 색도 옐로에서 블루 사이다. 이 두 가지 색으로 이 세상 모든 영상의 색감이 표현된다는 것은 무한의 옐로와 무한의 블루가 존재한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영상의 색감을 카메라나 조명, 후반작업인 색보정에서 조정하는 색만으로 모두 구현할 수는 없다. 미술과 의상이 함께 작용하여 표현될 때 영상의 색감이 제대로 표현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카메라에서 표현되는 색(이 영화는 필름으로 촬영돼 필름이 만드는 색감도 포함)과 조명이 만드는 색, 더 중요한 미술과 의상의 색이 전체적으로 통일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영상의 색감을 구현한다.

모스의 옐로, 시거의 블루

유기적이고 통일된 색은 이 영화 속에 두 주인공이 서로 가까이서 직접 만나지 않음에도 한 프레임 안에서 쫓고 쫓기는 극적 긴장감을 발생시킨다. 우연히 발견한 돈을 갖고 쫓기는 주인공 모스의 색은 ‘옐로’다. 반면에 자신만의 원칙을 갖고 모스를 쫓는 킬러 시거는 ‘블루’다. 옐로 컨셉의 모스는 옐로 카우보이 모자에 베이지색 셔츠와 갈색 카우보이 구두를 신고 있다. 모스가 사는 트레일러 하우스의 내부도 다 옐로다. 실내 전체는 옐로 나무벽으로 실내 가구와 소품들도 옐로와 옐로 계열의 색들로 가득하다. 거기에 공간을 채우는 빛과 설정된 등불도 옐로다. 시거가 등장하기 전까지 옐로로 가득 채워진 이미지들이 화면 안에 가득 보이고 시간에 따라 축적되며, 우리의 무의식 안에 자리 잡는다. 옐로 모래사막 가운데, 옐로 셔츠를 입은 주인이 있는 옐로 휴게소 안으로 블루의 시거가 들어온다. 인트로에서의 등장 이후 잊었던 시거가 등장한다. 블루 컨셉의 시거는 블루 청재킷에 블루 청바지를 입고 있다. 옐로로 가득 찬 이미지 사이로 낯선 블루가 중심에 선다. 옐로와 함께 시거의 블루도 관객의 무의식에 침입한다.

시거가 모스를 쫓고 있지만 영화 시작 후 1시간 동안 두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한 공간 안에 있을 때도 둘은 한 프레임 안에 담기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없을지라도 둘의 색이 한 공간에 존재한다. 모스가 머무는 단층 모텔의 외관과 실내는 온통 옐로다. 저녁 외출을 마치고 모스가 모텔에 돌아온다. 그런데 복도의 형광등 불빛이 블루로 바뀌어 있다. 모스가 자신의 방을 택시를 타고 천천히 지나간다. 모텔 복도 블루 형광등 빛이 모스의 얼굴 위로 닿는다. 지금껏 옐로 공간에서 옐로 빛만 닿았던 모스에게 처음으로 블루의 빛이 얼굴에 닿는다. 모스는 시거의 존재를 모르지만,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택시 운전사에게 자신이 머무는 모텔을 지나쳐 가라고 요구한다. 모스는 예감으로 느끼지만, 관객은 앞서 보고 무의식에 축적한 시거의 블루로 그의 존재를 감각한다. 시거는 돈 가방에 든 위치 추적기의 도움으로 모스가 머무는 모텔을 찾아낸다.

해가 막 진 뒤 블루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저녁 시간, 시거가 블루를 가득 갖고 모스가 머무는 모텔에 도착한다. 모스는 시거가 도착했는지 모른 채 옐로로 가득한 모텔 방 안에서 돈 가방을 숨기고 있다. 실내의 옐로와 실외의 블루가 컷과 컷, 색과 색으로 부딪힌다. 모텔 복도를 따라 걷는 시거의 등 뒤의 형광등은 모스가 봤을 때는 블루였지만 시거가 보는 이 장면에서는 옐로로 바뀌어 있다. 모텔에 같은 형광등 색이 달라져 있다. 영화 조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빛의 컨티뉴어티가 어긋나 있다. 의미와 이야기의 컨티뉴어티가 아닌 색으로 감정의 컨티뉴어티를 만든다. 모스가 머물 것이라 예상한 방 안으로 시거가 들어선다. 방 안은 온통 옐로로 가득하다. 옐로 방 안으로 시거가 들어선다. 시거의 몸을 블루 빛이 백라이트로 감싼다. 모스는 그 방 안에 없다. 방 안에는 옐로와 블루만이 충돌하고 있다.

보색의 만남

한 공간 안에서 이뤄진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몸이 아닌 빛의 만남이다. 모스가 국경 근처 도시 모텔에 들어선다. 이 모텔도 모두 옐로다. 방으로 들어온 모스는 불길한 예감에 불을 끄고 총을 들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불이 꺼진 방 안으로 거리의 가로등 빛이 들어온다. 이 빛도 옐로다. 조용한 실내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발의 그림자가 모스의 방 앞에 멈춘다. 모스가 들어올 때 복도의 불빛은 화이트 옐로였다. 모스의 방 앞에 시거가 등장하고 방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복도의 빛은 화이트 블루로 바뀌어 있다. 모스의 옐로 방 안으로 시거의 블루 빛과 그림자가 들어선다. 둘은 이렇게 각자의 색에 맞춘 빛으로 처음 만난다. 그 순간 시거의 무기가 모스를 가격한다.

둘의 실제적 첫 만남인 거리 총격 장면에서 밤거리는 나트륨 가로등의 옐로 톤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서 쫓기는 모스에게 총알이 날아온다. 반대편 블루 형광등의 빛이 하나만 켜진 상점에서 날아오는 총알이다. 블루 형광등을 등지고 시거가 실루엣으로 등장한다. 모스는 옐로 나트륨등 아래 숨어 있다. 블루 빛을 등진 시거가 모스를 쫓아온다. 부상 당한 모스는 아픈 몸을 이끌고 멕시코 국경 검문소로 향한다. 모스가 향하는 멀리 보이는 멕시코 국경의 불빛은 옐로다. 모스가 등지고 떠나는 미국 국경소의 불빛은 블루다. 시거가 그를 쫓고 있는 공간은 블루다. 옐로를 향해 모스는 가고 블루가 그를 쫓고 있다.

영화는 정보를 설명하는 장면이나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대사가 적음에도 마지막까지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보이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색이 이 긴장을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다. 옐로와 블루는 보색이다. 보색은 만나면 백색이 되지만 서로의 색을 구성할 수 없는 반대편에 놓여 있다. 보색이 만나 하나의 백색을 완성하며 영화를 완성하고, 보색인 두 색이 서로 쫓고 쫓기며 대결하면서 긴장을 만들어 감정의 서사를 구축한다. 이 영화에서 색은 의미로 구축되지 않는다. 정보로 기능하지 않는다. 의미 없는 반복으로 표현된다. 차이 나는 반복이 영화의 생명이라면, 영화 속 색은 반복되면서 그 차이들을 끊임없이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색은 차이를 생성하는 도구로서, 인간이 즉각적으로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 속 축적된 색은 인간의 무의식적 지각과 의식적 지각과 만나 감정을 발생시킨다. 의미와 정보로서의 색이 아닌 색 자체로서 색의 반복은 영화 안에서 다양한 의미를 만든다. 색은 서사에 가려 있는 동시에 서사의 깊이와 의미를 생성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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