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혐오와 모멸 사이에서 삶의 자존을 지켜내는, <조선인 여공의 노래>
2024-08-07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10~50년대 일본 오사카로 우리를 데려간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에서 태어나 오사카 방적공장에서 일한 여자들이 있다. 1910년대 일본의 섬유산업은 호황을 맞았고, 방적 회사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려 조선 여자들을 모집했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 집안의 딸들이 무수히 바다를 건넜다. 기시와다 방적공장의 경우 20여년 동안 3만명이 넘는 조선인 여공이 일했다고 알려진다. 대부분 10~20대였고, 절반 이상이 10대 소녀였다 한다. 여공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12시간씩 교대로 일했는데, 야간에 졸다 실을 끊어먹으면 매질을 당했다. 외부 출입은 철저히 통제됐고, 견디다 못해 도망가다 붙잡히면 고역을 치러야 했다. 공장에는 전염병이 자주 돌았고, 과로와 영양부족에 시달린 여공들이 매년 여러 명씩 죽었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배가 고팠던 재일 교포들은 일본인이 버린 소, 돼지의 내장을 받아 구워 먹웠다. 글을 쓰지 못해 집에 편지조차 맘 편히 부치지 못한 여공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한글을 공부한다. ‘조선의 돼지들’이라 불린 여자들은 조롱의 언어에 스러지지 않고, 도리어 굶주린 짐승처럼 왕성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척박한 땅에 기어이 뿌리내린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인터뷰, 낭독, 재연 등 여러 방식을 오가며 당대 여공의 삶을 스크린 위에 소환한다. 영화를 이끄는 이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7)에서 열연했던 재일 교포 4세 배우 강하나다. 그녀는 방적공장이 있었던 오사카 지대를 거닐고, 이제 노령의 여인이 된 여공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수명의 배우들이 등장해 여공들이 남긴 기록을 ‘대리 낭독’한다. 이는 단순히 활자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기억에 숨겨진 이야기를 살아 있는 육성으로 소환해 이곳에 되살리겠다는 영화의 각오를 느끼게 한다. 가사만 남은 채로 전해지는 여공의 노래에 멜로디를 새로 붙인 것 역시 마찬가지다. 또 영화는 여공들의 우정과 연대, 저항과 싸움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신파나 반일 프레임에 빠지는 일을 경계한다. 다만 증언만으로 충분히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는 가운데, 이를 필요 이상으로 증폭하는 연출도 일부 보인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흘러간 아픈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이것은 민족, 계급, 젠더 등 다양한 층위에서 열위에 놓여 수난을 겪은 이들의 생존기이기 때문이다. 또 쏟아지는 혐오의 시선과 모멸의 언어 사이에서도 분노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끝내 삶의 자존을 지켜낸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날 무렵 그 시절 여공들의 노래가 등장한다. 몸이 아프고 동료가 죽은 상황에서 불렀다는 이 노래 가사는 여공의 바쁜 일과를 읊다가 “오늘 또 하루를 살아가네”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놀라울 정도로 단출하고 투명한 그 한마디는 오늘의 감성과도 맞닿아 있어서, 지금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북쪽에서 온 여행자>(2012), <누나>(2013), <베데스다 인 제팬>(2019) 등을 연출한 이원식 감독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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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일본 방적업에 관해 설명하는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개별 증언이 닿지 못하는 역사의 이면을 전달하고, 증언들 사이 벌어진 틈을 메운다. 역사학자 히구치 요이치는 방적공장에 관한 기념비적 장소들을 찾는다. 그는 하나의 장소에 도달해 떨리는 입술로 “책상에서 (사료를) 읽을 때는 몰랐던 감정이 느껴진다”라고 고백한다. 학자로서 시종 성실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그가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감정의 동요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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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감독 김현석, 2017

오늘 하루 당당할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투쟁의 과정이라는 것을 두편의 영화는 보여준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와 <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를 되살리는 방식과 지향점 등 여러 요소가 사뭇 다르다. 그러나 수난과 치유가 반복되는 뭇 여성의 시간을 좇는다는 점에서 서로 만난다. 결국 그녀들을 살리는 것은 노래와 연설, 마음을 실은 언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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