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오디세이]
[박홍열의 촬영 미학] 주변의 시선을 영화의 중심으로 - 애너모픽렌즈의 미학
2024-10-09
글 : 박홍열 (촬영감독)
블레이드 러너

애너모픽렌즈 기술은 플레어와 왜곡 등의 특징을 통해 일반 렌즈보다 훨씬 다양하고 낯선 화면의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애너모픽렌즈 이펙트의 구체적인 효과와 사례들을 아주 상세히 설명하면서, 왜 한국의 많은 영화와 시리즈가 이러한 애너모픽렌즈의 특수함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제언을 남기고자 한다.애너모픽렌즈 기술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탱크 안에서 군인들이 밖을 더 넓은 화각으로 잘 보기 위해 개발됐다. 하나의 구멍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시야보다 더 넓은 시야의 화각을 확보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렌즈의 이미지 압축을 통해 인간이 볼 수 없는 넓은 풍경을 압축해서 보게 만든 것이 애너모픽렌즈다. 이 기술을 1952년 미국 영화 제작사인 (당시) 20세기 폭스가 ‘시네마스코프’라는 이름을 붙인 와이드스크린 구현을 위해 활용한다. TV의 등장으로 극장이 영화산업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몰입형 와이드스크린을 저렴한 비용에 제작하기 위해 애너모픽렌즈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너모픽 렌즈는 2.35:1 화면비부터 2.75:1 화면비까지 가로가 긴 화면비의 프레임을 표현할 수 있다. 그 당시 와이드스크린은 침체한 영화산업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견인차가 되었고, 애너모픽렌즈를 활용한 시네마스코프는 195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할리우드 대작들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포맷 중 하나가 됐다. 우리가 보는 블록버스터 영화들 대부분이 애너모픽렌즈로 만들어진다.

애너모픽렌즈가 한국에서 보편화가 되기 시작한 것은 풀프레임 디지털시네마 카메라가 등장하면서다. 기술적으로 필름으로만 촬영되던 시절에는 극장 영사기도 애너모픽렌즈로 교체해야만 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경제적 문제로 애너모픽렌즈 촬영이 쉽지 않았다. 디지털시네마 카메라가 2009년 무렵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애너모픽 렌즈로 촬영된 영화는 <클래식>과 <마더> 정도로 극히 드물었다. 디지털시네마 등장 이후 극장 영사 시스템도 디지털화되면서 애너모픽 포맷 상영은 쉬워졌다. 다만 초기 디지털시네마 카메라들은 애너모픽렌즈로 촬영된 고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했다. 결국 디지털시네마 카메라에 풀프레임 센서가 등장하고 데이터 이미지 처리 능력 기술이 발전된 후부터 애너모픽렌즈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에 요즘 한국의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선 애너모픽렌즈가 사용된다. 화면비가 가로로 더 길어 프레임 위아래에 검은색 바가 있는 영상들은 애너모픽렌즈로 촬영된 경우가 많다.

애너모픽 이펙트- 왜곡의 미학

더 킬러

애너모픽렌즈의 매력은 와이드스크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애너모픽렌즈는 일반 렌즈가 갖고 있지 않은 독특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 특성을 애너모픽 이펙트라고 한다. 첫 번째 특성은 가로로 긴 블루라인 플레어다. 빛이 렌즈 안으로 들어와 다양한 모양을 내는 것을 플레어라고 한다. 애너모픽렌즈는 이 플레어가 가늘고 길게 가로로 찢어진 형태로 나타난다. 애너모픽렌즈에서 이 가늘고 긴 빛 선들의 색이 블루라, 블루라인 애너모픽 이펙트 플레어라고 부른다. 이 이펙트는 SF 영화에서 많이 사용된다. 사이버틱한 미래적인 분위기를 블루라인 플레어를 통해 표현한다. <블레이드 러너>, <스타워즈> 시리즈,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에서 SF 설정들을 강조기 위해 적극 사용됐다.

J. J. 에이브럼스 감독은 <스타트렉>뿐만 아니라 그가 연출한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도 극적인 감정을 고조시킬 때 블루라인 플레어를 적극 활용한다. 근래 나오는 애너모픽렌즈들은 디지털 렌즈 설계로 옐로라인 플레어도 표현할 수 있다. 데이비드 핀처의 최신작 <더 킬러>에서는 블루라인 플레어와 옐로라인 플레어 두 색상의 라인 플레어를 서사의 축으로 가져온다. 최고의 킬러인 주인공이 임무를 수행하기 전까지 그의 공간 안을 옐로 플레어로 채우고 극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가 쏜 총알이 빗나가고 임무에 실패하여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자 애너모픽 플레어는 블루라인 플레어로 바뀐다. 나트륨 가로등으로 옐로 빛이 가득한 밤거리를 애너모픽 블루라인 플레어가 가로지르며 주인공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애너모픽 플레어 이펙트를 많이 사용한다.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 클라이맥스 장면인 아파트 외부 계단 신에서 주인공 다가오와 유기노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 빗줄기가 멈추며 구름 사이로 해가 비춘다. 태양이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듯 비친다. 애너모픽 옐로 라인 이펙트가 태양과 도쿄 하늘을 가로지르고, 빌딩 위 항공 장애 표시등도 애너모픽 플레어 이펙트로 분위기를 더한다. 내리던 비가 멈추고 강렬하게 등장하는 태양을 활용한 애너모픽 플레어 이펙트는 이 작품에서 예상치 못한 결말의 감정에 일조한다. 반면에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많은 작품은 애너모픽 이펙트 플레어뿐만 아니라 일반적 렌즈의 플레어도 제거하기 위해 현장에서 애써 노력을 기울인다. 플레어가 극 중 인물과 이야기, 감정의 방해 요소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문라이트
고질라 VS. 콩

두 번째 특성은 프레임 안의 수직과 수평 구조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눈으로 보면 정확한 수직과 수평을 애너모픽렌즈는 휘어지게 보이게 한다. 말 그대로 공간을 왜곡시킨다. 초점거리 50mm 이하 애너모픽렌즈에서 이 효과를 더 잘 드러낸다. 수직과 수평 구조의 왜곡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영화 중 한편이 <무간도>다. 실제 자신이 서 있지 않아야 할 공간에서 위치가 바뀌어 서 있는 두 주인공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정을 애너모픽렌즈를 통한 공간의 왜곡을 통해 극대화한다. 이 공간의 왜곡을 또 다르게 표현한 영화 중 한편이 <문라이트>다. 어둠 속에 가장 빛나는 블루와 더불어 왜곡된 주변의 시선을 애너모픽렌즈의 왜곡된 이미지를 통해 과감히 맞서 통과해간다. 흑인, 성수소자, 빈민이라는 사회의 왜곡된 시선에 사로잡힌 주인공 샤이론이 어른인 후안에게 받은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프레임 안으로 가져올 때 애너모픽의 수평과 수직 왜곡이 활용된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과 세상의 일방적인 시선은 블루라인 플레어로 표현되고, 사회의 왜곡된 시선에 맞서는 왜곡된 이미지로서 어둠 속의 블루와 함께 애너모픽의 수직과 수평 구조의 뒤틀림이 샤이론을 빛나게 한다. 반면 첫 번째 효과와 비슷하게 애너모픽렌즈를 사용한 한국의 많은 작품은 실제 공간이 왜곡되어 휘어지게 보이는 것을 기피하며 애너모픽렌즈를 사용해도 이 공간 왜곡의 효과를 의도적으로 없앤다.

세 번째 특성은 세로가 긴 타원형 보케다. 보케는 망원렌즈에서 심도가 얕을 때 배경의 광원들이 뭉개져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 렌즈들의 보케는 찌그러지거나 살짝 각진 원형에 가까운 모양을 보여준다. 애너모픽렌즈의 보케들은 세로가 긴 타원형의 찌그러진 모양을 보여준다. 이 보케들은 광원이 많은 밤 장면에서 인물들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일반적 렌즈의 보케는 많이 보아온 익숙한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조금은 낯선 애너모픽렌즈 보케는 인물의 감정을 강조하거나 로맨스적인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데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애너모픽렌즈로 촬영된 <라라랜드>나 <스타 이즈 본> 같은 멜로영화에서 애너모픽 보케는 주인공들의 시선을 통한 감정 표현의 도구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고질라 VS. 콩>에서는 애너모픽렌즈의 수평, 수직 구조 왜곡과 블루라인 플레어, 보케 이펙트를 통해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재해석한다. 지구 지상의 공간은 블루라인 플레어가 가득하지만 애너모픽렌즈에 의한 공간의 왜곡은 적다. 반면 킹콩이 살고 있는 원시림의 세계는 애너모픽렌즈의 수평 수직 구조의 왜곡과 타원형 보케를 결합해 보여준다. 이 두개의 왜곡된 효과가 배경을 소용돌이치는 이미지로 구현하면서 지구 밑 지하 세계와 숲이라는 익숙한 이미지의 공간을 특별한 SF 이미지 공간으로 만들어 낸다. 풀과 나무들의 녹색 공간을 메탈릭한 건물이나 구조물보다 더 사이버틱한 공간으로 보여준다. 애너모픽렌즈의 이펙트들이 모여 과거를 미래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낸 것이다. <더 배트맨>에서 애너모픽렌즈의 보케는 모호한 이미지들을 구성하며 정의와 복수, 선과 악, 빛과 어둠 사이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면서 배트맨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이용한다. 하지만 보케는 중심이 아닌 배경이다. 대부분 영화는 프레임 안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다. 배경으로 보이는 원형 보케나 타원형 보케의 차이는 영화 창작자들에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특히 한국 드라마(OTT 포함)에서는 인물 중심 바스트숏이 무엇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에 보케의 차이는 대개 사라지고 만다.

네 번째 특성은 렌즈 브레싱(숨쉬기)이다. 카메라 가까이에 있는 피사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피사체로 포커스가 이동할 때, 반대로 멀리 있는 피사체에서 카메라 앞에 있는 피사체로 포커스가 이동할 때 렌즈의 성능에 따라 프레임의 화각과 상의 크기가 미묘하게 변하는 현상이 있다. 이것을 렌즈 브레싱이라고 한다. 이 독특한 효과를 잘 사용한 영화 중 한편은 <엑스맨 탄생: 울버린>이다. 울버린 시리즈는 슈퍼히어로지만 돌연변이로 타자화되어 살아가는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할 때 애너모픽렌즈 브레싱 효과를 적극 사용한다. 울버린 자신이 갖는 정체성의 고민과 주변의 낯선 시선도 이 효과로 담아낸다. 영화 프레임 안 울버린은 카메라 앞에 앉아 있다. 울버린이 있는 공간 뒤로 누군가 들어온다. 멀리 들어오는 인물에서 울버린으로 포커스가 이동한다. 화면이 기괴하고 이상하게 일그러진다. 컷의 초반 포커싱 아웃되어 보이지 않았던 울버린의 얼굴이 화면 가득 나타난다. 울버린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감정이 들여다보이는 듯하다. 애너모픽렌즈 브레싱 이펙트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돌연변이기 때문에 주변화되고 중심에서 벗어난 울버린을 영화적 중심으로 가져온다. 일반적인 렌즈의 브레싱은 렌즈의 결함으로 인식되어 대부분 기피된다. 애너모픽렌즈의 브레싱은 일반렌즈의 브레싱보다 더 도드라져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주변을 중심으로

스타 이즈 본

애너모픽렌즈의 종류는 다양하다. 렌즈의 배열과 압축을 담당하는 렌즈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애너모픽렌즈의 특성은 달라진다. 렌즈의 물리적 왜곡의 정도를 줄이는 방법이 애너모픽렌즈마다 다 다르기에 애너모픽 이펙트도 동일할 수 없다. 이펙트의 크기가 크든 작든 모든 애너모픽렌즈는 모두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의 다양한 차이가 낯설다는 이유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그 효과를 주변에 머물게 두거나 감추거나 배척한다. 한국의 많은 영화는 우리 눈에 본 그대로 화면에 담기를 지향한다.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이미지들에 익숙해져 있다. 그렇기에 애너모픽 효과들이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하고 극 중 인물의 감정과 이야기를 해치는 요소로 느끼곤 한다. 그러나 익숙함이란 낯선 것들을 배제한 시간이 쌓였을 때 얻는 편안함이 아닐까. 익숙한 영화 이미지 문법을 ‘정상적’이라고 할 때, ‘그것을 기준으로’ 애너모픽렌즈 이펙트들은 ‘비정상적’ 이미지가 된다. 익숙한 이미지를 훼방하는 이미지의 표현이 된다. 하지만 다른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영화는 인간의 눈이 아닌 카메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담아낸다. 인간의 지각과 카메라의 지각은 같을 수 없다. 인간의 지각으로 카메라의 눈을 전부 알 수 없기에 그것은 늘 익숙하기 어렵다. 그러니 애너모픽렌즈 이펙트는 그 낯섦을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다.

더 배트맨

카메라와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일은 인간의 눈을 대체한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보지 못하거나 볼 수 없는 세상의 풍경을 카메라와 렌즈의 눈으로 만날 때 우리가 놓쳤고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영화가 세상의 다양한 모습과 목소리를 담기 위해 카메라와 렌즈의 낯선 특성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익숙함에 균열을 내는 도구로 카메라와 렌즈의 물질적 특성을 수용하고 활용한다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분명히 다른 세상을 만나고 다른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중심주의적 서사와 보편적 감정에 방해가 된다는 기준으로 배제되고 지워지는 물리적 표현의 ‘낯섦’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이 영화가 해야 할 또 다른 몫이다.

영화의 주제나 영화 안에서 발화되는 내용이 소수성을 지향하고 이 사회의 작은 목소리를 담아내려 한다면 그 영화의 표면, 그 표현 방식을 봐야 한다. 그 영화의 표현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움 안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익숙하고 낯익은 풍경 위로 낯섦과 이상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카메라와 렌즈의 물리적 특성들을 ‘비정상’이란 이름으로 외면하고 있는지를 재고해야 한다. 모든 왜곡을 그 작품의 서사와 주인공의 감정 안으로 품고 있는지 따져야 한다. 영화 이미지에서 표현은 중심 밖에 있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가져오는 것이어야 한다. 중심 밖에 버려지고 타자화된 왜곡된 이미지들을 프레임이란 중심 안으로 가져와 미시적 차이를 통해 의미를 생산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너모픽렌즈는 왜곡을 통해 주변을 중심으로 가져올 수 있는 잠재성의 물질이다. 이 잠재성을 사건화시키는 일이 창작자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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