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슬기 / 한국 / 2024 / 86분 / 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10.09 KT 10:00
생활도 관계도 마음처럼 쉽지 않다. 교통정리 일용직과 비정규직 학원 강사를 병행해도 곤궁함은 해결되지 않고 전 애인의 채무 독촉은 점차 심해진다. 어머니 서희의 목돈이 필요한 홍이는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서희를 요양원에서 데려온다. 자기 분의 삶도 벅찬 홍이는 언제나 서희에게 무표정이지만 서희의 드센 성격도 만만치 않다. <홍이>는 이해와 화해 대신 각자의 성정을 끝까지 고수하는 두 모녀의 부정교합의 나날을 그린다. 오픈 채팅에서 인연을 찾는 홍이와 문화센터에서 에어로빅 강좌를 듣는 서희가 매일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는 극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접촉사고에 가깝다. 그렇기에 영화는 인물의 아주 사소한 흠집과 패임, 망설임과 서운함까지 깊고 묵직하게 들여다보는 힘을 갖는다. 황슬기 감독과 홍이 역을 맡은 장선 배우의 뛰어난 팀워크는 일상에서 문득 튀어 오르는 감정의 표정을 표본화하는 집요한 작업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90여 분간 이어간다. 돌봄 노동과 고용 불안정성 등의 사회적 문제는 그 존재를 과시하기보다 인물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요소로 적절히 활용된다. 자주 말을 삼킨 채무표정을 내미는 모호한 인물임에도 홍이의 모습이 오래도록 쉬이 흐려지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