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현실에 필요한 영화제를 만들어간다,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2024-10-10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이사장은 영화계의 거의 모든 필드를 거친 범영화인들의 오랜 선배다. <칠수와 만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으로 시작해, 1996년부터 3년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화제의 기반을 다졌으며, 부산프로모션플랜(현 아시아프로젝트마켓)과 아시아필름마켓(현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을 발족시켰던 장본인이다. 이후 부산영상위원회 초대 운영위원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역임했다. 지난해 영화제 내홍 이후 정상화를 위해 혁신을 선언한 영화제가 선택한 인물이다.

- 영화제 초창기 부위원장을 맡았던 곳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셈이다. 개막을 앞두고 각오는.

실제 역할은 집행위원장에 가까웠다. 김동호 전 위원장은 스폰서와 정부쪽을 맡은 조직위원장이었고 영화제 운영이나 내부 방향은 내가 맡았다. 때문에 그동안 영화제가 어떻게 변해왔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디테일한 부분을 들여다보면서 올해는 일단 큰 변화 없이 지켜보기로 했다.

- 그동안 영화제가 어떻게 변해온 것 같던가.

일단 예산과 규모가 커지면서 근로조건이 많이 개선됐다. 영화제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졌다. 처음 영화제 시작할 때 만들어놓은 개념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데 질문을 던져보면 정확한 이유를 알고 하는 것 같지 않더라. 아시아영화 중심의 비경쟁영화제, 파이낸싱 마켓을 통한 아시아 영화인들의 협력 지원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외형은 그대로 있는데 그 내용은 적절치 않은 부분도 있다. 영화제가 30년 가까이 이어져왔으면 ‘무엇이 아시아인가’, ‘누구의 시선으로 본 아시아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부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그냥 범위만 넓혀온 것이다. 상을 주는 방식 등 처음에 만든 틀이 그냥 그렇게 해왔으니까 지금까지 한다는 식으로 남아 있다. 현실에 맞게끔 영화제도 수정되어야 한다. 비전을 갖고 내부의 방향성을 명확히 잡아나가야 한다.

- 부산영화제 부위원장을 맡아 영화제의 기틀을 다질 당시 ‘아시아 중심의 영화제’를 내세운 배경은 무엇이었나.

우리가 글로벌한 국제영화제를 치를 수 있는 역량은 없다고 봤다. 영화제 자체의 힘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과 한국영화계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영역까지 같이 가야 했는데 부족함이 많았다. 한국영화계와 영화제의 관계, 해외영화제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입지가 컸던 홍콩국제영화제를 타깃으로 잡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주를 잡은 게 바로 ‘아시아 중심의 영화제’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시아의 범위가 많이 넓어졌다.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있을 때 아시아필름커미션네트워크(AFCNet)를 만들면서 아시아의 정의를 놓고 회의를 했다. 호주, 뉴질랜드, 하와이(아시아·태평양에 포함된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했다. 정회원은 아시아인의 얼굴을 기준으로 삼고 그외는 준회원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영화제가 말하는 아시아는 좀더 역사적, 철학적인 의미를 담아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 이사장으로서 그리고 있는 청사진이 있나.

현실에 필요한 영화제다. 영화제의 사소한 부분부터 개념에 이르기까지 구태의연하게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OTT나 AI의 도입 등 변화에 대한 요구도 많다. 예전에는 해외 예술영화를 접할 기회가 영화제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관객들의 눈높이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에 맞춰 영화제도 바뀌어야 한다.

- 넷플릭스 영화 <전,란>이 개막작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라는 점을 크게 신경 쓸 것은 없다. 실제 개막식에 오는 관객은 기존 영화제를 찾는 마니아가 아니라 일반 시민이나 관계자가 많다. 입장료도 비싼데 좀더 대중적인 영화를 틀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는 계속 나왔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개막작은 재미있는 영화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 <전,란>은 폭넓게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 부산영화제가 온 스크린 섹션에서 상영되는 OTT 시리즈는 물론 웹툰, 게임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콘텐츠를 아우르는 장이 됐다. 기존의 필름마켓이 ‘콘텐츠&필름마켓’으로 이름이 바뀌고 AI 관련 프로그램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참여한다.

영화제는 영화와 관련된 또는 인접 분야의 영상물들을 모두 펼쳐낼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비공식적으로 영화제에 참여하는 회사들의 콘텐츠도 이곳에서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규모가 큰 영화제일수록 그렇다.

- 동시에 올해 감독전의 주인공 미겔 고메스처럼 시네필을 위한 프로그램도 놓치지 않는다.

영화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한국영화와 아시아영화를 발굴하는 의미에서 월드프리미어가 될 신작을 찾아다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최근 미주·유럽권 영화의 경향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주·유럽쪽 감독 및 배우들의 회고전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잘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엔 협조가 잘돼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팀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도전을 계속해볼 계획이라고 얘기한다.

- 박도신, 강승아 두명의 부집행위원장이 집행위원장을 대행하는 형태로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아무래도 집행위원장 자리가 공석이면 영화제가 잘 굴러가도 완전히 정상화되지는 않았다고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 텐데.

기존 집행위원장 역할은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이, 행정적인 측면은 강승아 부집행위원장이 맡고 있다.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새 집행위원장 후보를 올려야 하는데 한명의 후보도 올리지 못하고 해산이 됐다. 영화제 정관을 보면 임원추천위원회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 영화제가 끝나면 이사회를 열고 현실에 맞게 정관을 수정한 뒤 집행위원장 공고를 낼 것이다. 내년 2월에 새 집행위원장을 임명하는 것이 목표다.

- 지난 몇년간 부산영화제의 운영에 차질을 빚게 한 사건들을 돌아보면 영화제는 영화만 고르고 초청한다고 굴러가는 곳이 아니다. 정치적 이슈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부산시와의 관계도 고민해야 한다. 영화제를 이끄는 이사장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은 영화제를 잘 모를 수 있다. 심지어 영화제를 잘 모르는 영화 담당 기자도 있지 않나. (웃음) 오해에서 빚어지는 문제는 잘 설명하고 설득해서 해결할 수 있다. 부산시의 요구사항도 잘 들여다보면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다. 대화를 하며 조화롭게 풀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