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까부는 역은 이제 그만! <뚫어야 산다> 박광현
2002-06-19
글 : 위정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뚫어야 산다>에서 박광현의 ‘까부는’ 모습을 기대했다면 일찌감치 그 기대를 접어야 한다. ‘까불지 않기 위해’ <뚫어야 산다>를 택했다는 그는 도무지 관객을 웃음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뚫어야 산다>는 철천지 원수인 도둑과 형사 집안의 아들과 딸의 사랑과 갈등을 코믹하게 풀어가는 영화. 박광현은 ‘대도무문’(큰도둑에겐 문이 없다)를 가훈으로 삼고 있는 도둑 집안의 아들 우진으로, 스크린에 처음 등장한다.

“영화가 궁금했고, 필름의 맛을 보고 싶었”던 그가 <뚫어야 산다>를 첫 영화로 택한 두 가지 이유. “그동안 너무 ‘까부는’ 역만 해왔다”는 자성이 첫째다. 조금씩 나이도 들어가고, 굳어버린 코믹한 이미지도 상쇄시킬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뚫어야 산다>가 주연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 “부담이 적잖아요”라는 말로 초보 배우의 불안감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그의 말대로 <뚫어야 산다>는 주인공 한 사람이 우뚝 서지 않고 대여섯명의 등장인물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영화다. 박광현의 말을 빌리면 한마디로, “한권의 만화책” 같은 영화다. 우진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물었더니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요” 하고 씨익 웃는다.

그림을 잘 그리는 고은기 감독이 콘티북에 인물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그려놓아 배우들이 상상해야 할 수고를 완벽하게 덜어주었다고. 촬영하면서 영화 속 상황이 마음에 안 들면 “이런 코미디가 어딨어요. 감독님이 만화책을 너무 보신 것 같아” 하고 투덜거려도 감독은 사람 좋은 웃음만 보여주었다고. “그런데 참 이상해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감독님이 웃으면서 노, 하면 에이, 그냥 져주자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0분 만에 3컷 찍는 TV드라마에 익숙하던 그에게 분장을 마친 뒤 3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게다가 밤샘촬영이 많았어요. 50회 촬영이었는데, 우리끼리는 100회 촬영이라고 했어요. 하도 밤샘이 많아서.”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박광현은 기대했던 첫 영화가 많이 아쉽다. 원래 코믹+멜로였던 영화가 멜로가 빠지고 코미디를 강화하면서 우진과 윤아의 멜로라인이 희미해졌고, 우진의 진지한 캐릭터는 붕 떴다. “극 전체의 코믹함과 진지한 우진 사이에 생긴 괴리”는 당연한 결과. 영화 자체가 대사보다는 상황이 빚는 웃음이다보니 우진에게 돌아온 대사도 적었고, 공들여 찍은 액션장면도 많이 날아갔다.

친구따라 얼떨결에 치렀던 1997년 SBS 톱탤런트 선발대회에서 금상을 받으며 친구 대신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박광현은 몇편의 드라마를 거쳐 MBC의 <왕초>에서 거지 명태 역으로 얼굴을 알렸다. MBC 시트콤 <점프>에서 연영과 학생으로 출연한 박광현이 내세운 신세대의 밝고 가벼운 친근감은 꽤 힘이 셌다. 뒤늦게 투입되었지만, 곧 주연급으로 발탁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 행운도 누렸다. 방송가에서 급상승한 인기도 덕분에 시나리오도 꽤 들어왔다.

드라마 출연, 쇼프로그램 MC, CF 촬영 등으로 3년 내내 휴식시간 없이 분주한 결과, 얻은 것은 약간의 피로와 매너리즘. “정신과라도 한번 가볼까봐요.” 장난처럼 한마디 툭 던지지만, 지금 출연중인 SBS드라마 <나쁜 여자들> 끝나면 충전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박광현, 이름 석자가 처음 나온 영화 <뚫어야 산다>는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많지만, 아무튼 배우의 길을 ‘뚫은’ 영화. 남은 것은 그 길 위를 걷는 것이니, 다음엔 “내 능력을 100% 보여줄 수 있는 영화, 챌린지 정신이 필요한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