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촬영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 어렵지는 않았나.
= 촬영 일수가 15일인 게 가장 놀라웠다. 15일 동안 어떻게 저 장면들을 그렇게 빨리빨리 찍었는지. (웃음)
- 그래도 부산에 상주했던 기간은 거의 두달 가까이였던 것 같던데.
= 맞다. 부산을 떠나는 마지막 날에 지진이 났던 기억도 난다. 스태프들이랑 돼지갈비를 먹다가 너무 무서워서 얼른 일어나 숙소에 가서 짐을 뺐다. (웃음) 십몇층이었는데 건물이 흔들리니까 무섭더라. 흔들리는 게 더 안전한 거라곤 하던데…. 아무튼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고 옛날 생각을 하니 당시 촬영 현장의 기억이 꽤 많이 떠올랐다.
- 서울과 부산의 물리적 거리가 꽤 있는데 그럼에도 부산 촬영의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 건가.
= 멀다는 게 이점이기도 하다. 춘천이나 대전만 해도 제작진, 배우들이 다 함께 한몸처럼 움직이기가 힘들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흩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부산처럼 아예 먼 곳으로 촬영 장소를 잡으면 모든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촬영에 집중하기가 좋다. 이 일이 정시 출퇴근하는 직종이 아니라 딱 집중해서 5~6개월 몰아치는 일이잖나. 그 단기간의 집중력을 제대로 뭉치게 하는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 영화는 결국 만드는 사람들의 에너지다. 감독을 포함해서 온 제작진과 배우가 삼시세끼를 같이 먹고 지내며 만드는 힘이 영화에 다 발산된다고 생각한다. 그 힘을 발휘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가 부산이다. 게다가 부산은 해운대 등 촬영 공간 근처에 먹거리, 숙소, 쉴 곳들이 다 모여 있어서 효율적인 동선과 일정으로 프로덕션을 진행할 수 있다.
- 수도권에서 촬영 장비 등을 운송하거나 수급하는 일이 어렵진 않았나.
=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제공하는 특수장비들이 있어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만약 부산에도 일반적인 촬영 장비가 더 많이 확보되고, 촬영 지원과 패키지로 묶어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프로듀서 입장에선 부산 프로덕션을 촬영의 3분의 1 이상 배정해야 한다 해도 장비 인센티브만 확보된다면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 촬영 지원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가 아무래도 실무진에겐 가장 매력적인 부분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 그렇다. <신과 함께-죄와 벌> 촬영 때는 숙박비와 식비로 인센티브를 받았다. 다만 인센티브의 기준이나 범주가 더 넓고 다양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예를 들면 숙박비 지원에 대해서도 성수기와 비수기 차이를 고려해 인센티브에 차등을 두거나 추가적인 혜택을 준다거나, 먹고 자는 것 외에 앞서 말한 실질적인 장비 사용이나 스튜디오 촬영 등에 대해 더 넓은 선택지가 있다면 실무진으로선 좋을 수밖에 없다.
- 인센티브 제도를 확장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을 실무진 입장에서 말해준다면.
= 옛 해사고등학교에서 촬영한 군부대 장면이 떠오른다. 원래는 부산에서 소방서와 KNN 빌딩 위주로만 찍으려 했는데 현지에서 로케이션으로 추가했었다. 그런데 만약 이 상황에서 부산의 실제 로컬 시민들과 더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다면 촬영 현장이 훨씬 수월하고 효율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케이션 근처의 상권이나 시민들과 협업하기 위한 방법을 인력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로 구성하는 거다. 예를 들면 지역 내 인력과 기업을 세트 제작 등 프로덕션 작업에 쉽게 고용할 수 있고, 그 고용에 대해서도 지역 영상위의 인센티브가 결합되기만 한다면 우리뿐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도 훨씬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요즘 영화 프로덕션의 가장 큰 고민은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산영화촬영소가 건립되고 운영된다면 이러한 측면에서 원활한 촬영 기반이 자연스럽게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 옛 해사고등학교를 로케이션 장소로 추가한 이유는.
= 영도와 해사고등학교의 이미지가 너무 적절하고 좋았다. 학교가 언덕 위에 자리하고 바닷가 근처이다 보니 하늘이 완전히 뻥 뚫려 있었고 나무들의 배치도 예뻤다. 뒷공간도 널찍하게 뚫려 있어 정말 시골 같았고, 가장 중요 했던 건 강림(하정우)의 하늘길과 자홍과 수홍의 어머니 역을 맡은 예수정 배우의 동선이 무척이나 조화롭게 구성될 수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감독님, 촬영감독님과 함께 차를 타고 내려오는 해안 길에서 바다를 실컷 보고 퇴근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점심때에는 버스 한두대씩 다니는 작은 버스 정류장 옆의 엄청 오래된 국숫집에서 할머니가 해주신 국수도 자주 먹었다. 그런 순간과 기억으로 충만해지는 것도 부산 촬영의 묘미 아닐까.
- 그외 촬영 당시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원이나 협업 중 실질적인 도움을 준 요소들이 있다면.
= 부산영상위원회는 지역의 다른 관, 조직과 결합이 정말 잘되어 있다고 느꼈다. 이를테면 지역 소방서와 협업할 일이 있다면 단순히 장비와 공간을 빌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소방수 분들이 직접 장비 운용도 해주셔야 하고, 소방차의 물을 쓰는 일도 사실은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부산영상위원회에서는 소방서를 설득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원래부터 한몸으로 움직이는 느낌으로 일을 준비해주더라. 처음엔 ‘부산영상위원회의 힘이 지역에서 엄청 큰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웃음) 하지만 모두가 영화를 만드는 일에 함께 재미를 느끼고, 자원해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걸 깨달았다.
- 다른 영화의 제작진은 부산 시민의 너른 협조를 부산 촬영의 장점으로 꼽기도 하던데.
= 정말 그렇다. 내 경험에 의한 편견일 순 있지만, 서울에선 도심 도로를 통제하면 이곳저곳 에서 컴플레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부산에선 신기할 정도로 협조를 해주시고 통제에 따라주시더라. KNN 촬영 때가 떠오른다. 촬영장 주변에 높은 동서대학교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 창문에서 촬영지를 보는 사람들이 찍히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건물에 통제를 부탁드렸는데 정말 다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도와주셨다. 유동 인구가 가장 적을 일요일 아침 시간대를 잡긴 했지만 도심인데도 세트에서 찍는 것처럼 촬영을 마쳤다. 할리우드의 도로 세트에서 찍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더라. (웃음) 정말 궁금하다. 실제로 영화도시 부산이라는 타이틀에 시민들이 자긍심을 느껴서인지 싶기도 하고. 서울이나 경기도처럼 되기보단 이렇게 촬영하기 편한 부산의 환경이 계속 유지되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