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들은 의외로 남들 놀 때 일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저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공휴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라면 어차피 약속도 없고 나가봤자 사람만 많은 때라 차라리 일하는 게 좋기도 하고요, 이런 인기 있는 날에 내 음악이 부름 받았다는 은은한 기쁨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지요. 저에게 가을이 아름다운 건 여러 크고 작은 단체들이 인디 밴드 공연을 만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소중한 전통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따사로운 가을날 저는 기타와 짐꾸러미를 메고 열차에 오릅니다.
그날은 구미의 복합문화공간 ‘각산살롱’ 의 오픈 축하공연을 하러 갔습니다. 요사이 정신이 없는 탓에 부실하게 먹고 잤더니 공연 가는 기차 안에서 멀미로 고생했습니다. ‘노래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음원 사이트에 있는 저의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마인드컨트롤을 했습니다. 실기시험을 치르기 전에 머릿속으로 과정을 그려보는 식이랄까요. 멜로디가 나오는 목과 코의 감각을 리허설해봅니다. 그렇게 도착한 공연장은 문화공간의 앞마당이었습니다. 열매를 맺은 석류나무가 있는 아담한 공연장 속 오손도손 앉은 관객들, 기웃거리는 행인들과 가끔 지나가는 정겨운 오토바이 소리까지 오늘의 무대는 따스하게 예열되어 있었습니다. 공연자인 저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느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무대 위로 올라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 이야기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고요, 노래를 들려드릴게요.” 집중하기로 결심한 듯한 그날의 관객들은 저의 목소리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흡수했습니다. 멀미는커녕 도착하자마자 최상의 컨디션이 된 저는 누에고치처럼 목소리를 정성스럽게 뽑아냈습니다. 그러다 관객석을 보았습니다. 인파 속 드문드문 낯익은 얼굴, 몇명은 이름마저 알겠는 오래된 그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실제로 보신 적이 있나요? 보러 갈 돈과 시간이 없어서, 티켓팅이 어렵거나 나와 살았던 시대가 달라서 우리는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실제 공연을 보게 되면 우리는 농도 짙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이렇게라도 한번 봤으니 되었다” 같은 마음을 느끼게 되지요. 그렇기에 더더욱 저의 공연을 한번 이상, 두번 세번 보러 오시는 그들을 보면 ‘고마움’ 같은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정을 느낍니다. 당신은 한번 봤던 저를 어떻게 또 보러온 걸까요?
제가 나름대로 자주 봤다고 할 수 있는 공연은 이소라 콘서트일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녀를 보러 8번 이상은 공연장에 갔던 것 같네요. 처음에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갔다가 이젠 제 발로 갑니다. 아니 그녀가 공연하면 무조건 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소라의 공연에는 굉장히 그녀다운 지점이 있습니다. 일단 무대 위에 가습기가 있습니다. (건조해지는 걸 막는 것 같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의자 옆에는 인이어 이어폰으로 연결해서 자신과 밴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멀티 믹서가 있는데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볼륨 노브를 조절합니다. (마치 전자음악가의 공연 모습 같네요) 연말에 치르는 공연 일자 중 이소라의 생일(12월29일)에는 자신을 위한 생일 축하 노래도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무리 울고 빌고 애원해봐도 앙코르는 없습니다. 첫 공연에서는 그동안 사람을 안 만난 느낌이 뚝뚝 묻어나는 낯가리고 음울한 느낌의 그녀이지만 마지막 회차쯤엔 마음이 풀어졌는지 조잘조잘 수다도 들려주는 등 공연 동안 사랑받은 티가 납니다. 1회차엔 감동받느라 정신없지만 n회차에는 공연의 의도나 흐름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세트리스트라도 그날그날 바뀌는 컨디션을 감지하며, 어제는 해줬는데 오늘은 안 해준 멘트를 떠올리며 지금 우리 소라는 (죄송합니다) 어떤 기분일까? 생각합니다.
나름 많이 본 영화를 꼽는다면 왠지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이하 <밤해변>)를 말씀드리고 싶네요. 네, 그 당시 저는 실연을 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는 그냥 엉엉 울었던 것 같고 그 후엔 울고 싶을 때마다, 마음을 감당하지 못할 때마다 티켓을 끊어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밤해변> 속으로 들어가 제 상황을 회피하거나 직면했습니다. 그때는 헤어진 연인을 잊겠다면서도 기다리며, 진짜 사랑한다는 게 무언지 화가 난 듯이 묻는 영희(김민희)를 보아야 마취되고 치료되는 삶의 지점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김민희 배우가 담긴 장면들은 그냥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순한 표정과 묘한 말투, 특유의 가녀리고 세련된 움직임, 대담한 발성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무척 매혹적이지만 그런 매력 이상으로 당혹스러운 생동감이 있습니다. 스크린에서 이 배우가 담긴 장면을 볼 때면 무언가의 본질을 본 것 같은 귀한 기분이 듭니다. 마지막 신에서 겨울 해변에 누워 있던 영희는 모래를 털고 일어나고요, “저, 꿈꿨어요”라고 말하는 옆모습 뒤로는 바다새가 슥 지나갑니다. 꿈에서 깬 듯 영화관을 나오면 꽃을 샘내는 바람이 코트 속으로 맹렬히 들어옵니다. 아, 너무 춥다 하며 영화 상영 동안 잊고 있던 인생과 세상살이의 차가움을 실감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끔 자신의 삶과 포개어지는 작품을 만납니다.
30분 공연하는 저를 보러 여러분은 편지와 빵과 꽃을 들고 어떻게 이렇게 멀리까지 오셨을까요? 뭔가를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공연자는 매번 받는 존재입니다. 제 음악을 듣는 중학생이던 친구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 맥주를 마시고, 대학생이던 친구가 면허를 따고 어엿한 회사원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살아가는 게 덜 두려운 기분이 들다가도 공연을 찾아와주셔야 제가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두렵게 느껴집니다. 왜 제 영화는 오늘이 절정인 것 같은데, 이제 끝내면 될 것 같은 장면에서도 계속 이어져서 재미없는 내일로 이어지는 걸까요? 자정에 가까운 시간, 서울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타고 바라본 내부순환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눈물 맺힌 시야로 뿌옇고 찬란하게 보였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는 제가 그리 대단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음악가인 게 좋아서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