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간 뉴스를 끊고 살았다. 종종 멘털이 개복치급으로 약해질 때 일상을 버티는 방식 중 하나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압도적인 우위로 당선되고,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기자회견을 연 날부터 뉴스를 보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이 <씨네21> 마감일인지라 정상적인 마감을 위해서라도 속 시끄러운 소식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건 스트레스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정도다. 마감날 글을 못 쓰겠다며 울분을 토하는 후배의 열띤 항변을 초점 없는 눈빛으로 흘려들으며 번뇌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그렇게 내 주변 자잘한 일들에만 신경 쓰며 버틴, 나름 평안한 한주가 될 줄 알았다.
살얼음처럼 얇았던 (가짜) 평화에 금이 간 건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으신다, 고 늘 생각해왔다. 아직도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실 정도이니 관심이 없으실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하셨다. 몰아치는 일들로 한창 정신없던 와중이라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보러 가시라”며 무심하게 응대한 뒤 내내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에 젖어 한주를 보냈다. 바쁘면 마음 그릇이 쪼그라들고, 간장 종지처럼 작아진 내 그릇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짜증을 먼저 쏟아낸다. 차가웠던 말을 주워담을 순 없지만 뒤늦은 후회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극장에 가서야 깨달았다. 어느새 직원이 사라지고 전부 키오스크로 바뀌어버린 극장은 낯설고 어려워 어머니가 혼자 갈 엄두도 내지 못할 곳이 되었다는 걸.
“무관심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더러운 행동”이라던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빌리자면 관심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위 중 하나다. 관심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 만큼 힘들고, 힘든 만큼 드물고, 그리하여 마침내 귀해진다. 내겐 세태를 이해해보려는 너른 마음이나 위대한 지성도, 불의에 분노를 토해내는 뜨거운 가슴과 에너지도 없다. 그래서 한동안 뉴스를 멀리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귀를 닫고 눈을 감을 때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나빠진다, 는 사실 정도는 안다.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그 여파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감정적으로) 공감하긴 어려웠다. 내 어머니를 경유하여 나의 일이 되기 전까진.
<씨네21>의 아이템 회의는 매주 월요일에 한다. “동네에 치매 친화 극장이 있어서 가봤는데 관객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넘어질 위험이 있어 상영관 조명을 밝게 유지하고 출입구 맞은편에 가족화장실을 마련하는 등 환경적으로도 그랬습니다. 그동안 2030 관객층, 특수관에만 집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노인, 장애인 관객들은 극장을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이런 관객을 위해 극장은 어떠한 노력을 해왔고 없다면 무엇이 필요한지, 도입해볼 만한 해외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다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채 기자가 올린 아이템을 보며 새삼 굳은 머리가 깼다. 이젠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더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정도로 적당히 이기적이고, 시야가 좁고, 얄팍한 인간이다. 그렇기에 일단 시야에 들어온 것들은, 할 수 있는 일들은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그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이자 (한국영화계의 일원으로서 <씨네21>의) 최선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