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리보기 [1]
2002-06-21
글 : 김혜리
SF, 공상의 껍질을 벗고 누아르 보고서를 쓰다

“예언자의 보고서에 준거하여 사흘 뒤 일어날 존속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너를 체포한다.”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누군가 이불을 들추고 당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면? 물론 분노할 일이다. 그런데 그들 덕분에 바로 몇달 전 당신의 아이가 생명을 건진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 시스템에 동의할 것인가 항변할 것인가? 필립 K. 딕의 동명 단편을 각색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그런 골치 아픈 질문을 내장한 차별화 전략의 여름 블록버스터이며, <A.I.> 이후 계속 ‘전자양의 꿈’에 잠겨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톰 크루즈와 손잡고 내놓는 첫 번째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부추긴다. 흥행과 예술의 별을 함께 좇아온 할리우드의 두 스타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바닐라 스카이>와 <A.I.>로 한풀 꺾였던 그들의 박스오피스 파워는 어떤 포물선을 그릴까? 7월 말 국내 개봉을 앞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대한 마이너 리포트를 싣는다.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최대 난제는 톰 크루즈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동시에 시간이 나는 타이밍을 잡는 것이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프로듀서 보니 커티스의 후일담은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두 주모자만이 아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작성자’들은 하나같이 마이너리티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할리우드의 엘리트들이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스필버그의 많은 작품을 찍은 야누츠 카민스키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마이클 칸이 각각 촬영과 편집을 지휘했고, 프로덕션 디자인은 <파이트 클럽>의 알렉스 맥도웰, 의상은 <타이타닉>의 데보라 L. 스콧의 손끝을 거쳤고, 스턴트는 톰 크루즈의 내공을 속속들이 아는 <미션 임파서블2> ‘대원’들이 가담했다.

사진설명개인 비행장치인 ‘제트팩’을 착용한 프리크라임 대원과 맞붙은 존 앤더튼. 스필버그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야심만만한 스턴트를 시도했다.<미션 임파서블2>에서 90피트 추락연기를 해낸 톰 크루즈는 이번에도 스턴트 더블을 쓰는 일을 최대한 피하려 했다. 2054년 워싱턴 D.C의 자기부상 자동차 매그레브는 고층 빌딩 벽을 예사로 오르내리며 가옥과 접속하듯 주차가 가능하다. 낮에는 유능하고 냉철한 프로페셔널인 존 앤더튼은 밤이면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잃어버린 아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기록한 홀로그램을 되풀이 영사하며 고통받는다.

지금까지 20편의 영화로 미국 흥행 28억달러를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출연작 8편이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톰 크루즈는, 얼핏 진작 영화 서너편은 같이 찍었어야 마땅할 듯한 미다스 커플이다. 아닌 게 아니라 두 사람은 20년 전 <위험한 청춘> 세트에서 데이비드 게펜(현 드림웍스 공동대표)의 소개로 상견례를 나누었을 때부터 같이 영화를 찍어보자는 꿈을 품었다. 꿈만 꾼 것이 아니다. <레인맨>, 서부극 <아칸사스>, 노인으로 태어나 거꾸로 어려지는 사내의 이야기를 그린 F. 스콧 피츠제럴드 원작의 <벤자민 버트의 흥미로운 경우> 등이 그간 톰 크루즈와 스티븐 스필버그를 아슬아슬하게 스쳐간 프로젝트들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오랫동안 폭스 스튜디오의 시나리오 인큐베이터를 떠돌던 기획. 스필버그와 영화를 찍는 일을 언제나 예스 노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문제로 여겼던 톰 크루즈는 <아이즈 와이드 셧> 촬영 도중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초벌 각색을 스필버그에게 보냈고 프로포즈는 기꺼이 받아들여졌다.

2054년의 필름누아르

워밍업 단계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복습한 영화가 SF 걸작들이 아니라 <아스팔트 정글> <키 라르고> <말타의 매> 같은 ‘검은’ 고전들이었다는 소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접근하는 스필버그의 첫 번째 컨셉은 필름누아르다. 스필버그는 새 영화가 거칠고 어둡고 차갑기를 원했다. “나는 촬영감독 야누츠 카민스키에게 지금껏 내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추하고 더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A.I.>처럼 따뜻한 어드벤처가 아니다.”

폼나는 누아르에 필요한 진한 음영을 내려면, 차갑고 투명한 개념의 조립물에 가까운 필립 K. 딕의 단편 스토리에 손질이 필요했다. <조지 클루니의 표적>에서 엘모어 레너드의 <펄프 픽션>을 스크린판으로 훌륭히 각색했던 작가 스콧 프랭크는 냉철하고 건조한 필립 K. 딕의 원작에 대중영화에 적합한 감정의 회로를 설치하기 위해 인물을 전면으로 끌어냈다. 범죄의 씨앗부터 자르는 완전한 치안 체제의 정당성을 찬반에 붙이기보다 프랭크는 관객의 상식적 눈높이에 맞추어 “누가 봐도 파시스트적인 이 시스템에 충심으로 복무하는 사람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에 집중했고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을 골랐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주인공 존 앤더튼에게 원작 캐릭터에 없던 치명적인 과거를 갖게 만든 것. 톰 크루즈가 분한 앤더튼은 6년 전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잃은 뒤 아내와도 헤어져 프리크라임(돌연변이 예지자의 예언을 분석해 잠재범죄를 발본색원하는 워싱턴 D. C의 특수 경찰조직) 팀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아서, 애거사, 대쉬일이라는- 공상과학, 추리, 하드보일드 문학의 유명 작가 클라크, 크리스티, 해밋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진 세 예지자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프리즘 상태의 이미지를 종합 분석해 잠재범죄자의 주소를 추리하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사진설명<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와이어에 매달린 인상 남기는 보통 영화의 비행장면과 달리 상승하고 하강하고 땅 위에 끌리는 동작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위해 400피트 길이의 높이에 200개의 와이어를 달아 배우들을 떨어뜨렸다. 워싱턴 D.C의 프리크라임이 6년간 범죄없는 사회를 만들자 프리크라임의 전국 확대실시를 건 국민투표가 예정된다. 투표 전에 프리크라임의 결함을 내사하러온 연방수사관 대니 위트워는 앤더튼과 미묘한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기실 위트워는 돌연변이 예지자들을 사라진 신성의 대체물로 바라보는 또 다른 뒤틀린 믿음을 내비친다. 6년 전 아들을 잃어버린 사건은 앤더튼과 아내 사이도 갈라놓는다. 전처를 프리크라임의 동료로 설정한 필립 K. 딕의 단편과 달리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앤더튼과 헤어진 아내의 미진한 관계와 그에 대한 안타까움을 통해 가족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미래사회에서 망막 스캔(eye-dentiscan)은 신원 확인의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신분을 바꿔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여권위조자에 해당하는, 안구를 갈아끼워주는 불법 ‘업자’들과 접촉을 시도하기도 한다. 신원을 추적하는 로보틱 거미들의 탐침을 피하려는 존 앤더튼.

아들을 잃은 순간을 끝없이 머릿속에서 리플레이하며 남몰래 마약으로 고통을 달래는 앤더튼은 범죄의 씨를 말리는 프리크라임의 일에 열렬히 헌신함으로써 허물어진 삶을 지탱한다. 낮에는 유능한 프로페셔널이지만 밤이면 무너져버리는 그의 모습은 필름누아르에서 익히 보아온, 딱딱한 껍질 안에 망가진 영혼을 숨긴 터프 가이들의 계보에 들어맞는다. 앤더튼이 삶의 유일한 토대였던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균열을 발견하는 것은 36시간 이후 예고된 살인의 범인으로 자신이 지목된 순간. 프리크라임 제도의 전국 시행 국민투표를 앞두고 프리크라임의 결함을 점검하러 온 대니 위트워(콜린 패럴)는 그를 사냥하러 나서고, 자기 손으로 키운 일급 수색자들의 추격을 받게 된 앤더튼은 아버지와도 같은 프리크라임 의장 라마 버지스와 세 예지자 중 유일한 여성 애거사의 도움을 구하며 누명 벗기에 나선다. 물론 이 탈주와 반격의 과정에서, 스필버그가 “<말타의 매>+ <레이더스>”라고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소개하게 만든 지상과 공중을 화려하게 누비는 액션 시퀀스들이 영화 속으로 대거 진입한다.

자료제공 20세기 폭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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