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 친구’ 하면 웃기는 세 남자부터 떠오르지만, 예의 TV 시트콤이 있기 전까지 우리에게 ‘세 친구’는 못내 안쓰럽고 쓸쓸한 이름이었다. 단편 <우중산책>에서, 삼류 극장 매표소 처녀의 비에 젖은 어깨를 감싸안았던 임순례(39) 감독은 첫 장편 <세 친구>(1996)에서 학교와 사회 사이 바람부는 공터에 내버려진 발목 꺾인 소년들을, 눈물을 삼키며 지켜보았다. <세 친구>가 하고 싶은 일이 아예 없거나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어 불행한 사내아이들의 이야기였다면, 4년의 공백을 끝낸 임순례 감독이 명필름에서 완성한 신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불행한 30대 밴드 마스터와 그 친구들의 스토리다. <와이키키…>의 친구들은 상반기 화제작 <친구>의 주인공들과 달리 ‘친구’라는 한마디에 피가 끓기에는 많이 쇠약해진 사람들이고, <와이키키…>의 불행은 너무나 만연돼 있어 ‘불행’이라는 드라마틱한 명칭마저 쑥스러운 흐릿한 서글픔이다. 지난해 연말 40여회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에 몰두해온 임순례 감독을 마지막 색 보정을 마친 이튿날, 봄볕 환한 인사동에서 만났다. 5월로 내정됐던 영화의 개봉이 국제영화제의 반응을 밑거름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을로 미뤄진 요즘, 그는 한 영화의 ‘끝’을 조금은 즐겁게 음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짧고 어리석은 질문들에 대한 그녀의 긴 대답들은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우리가 아는 그녀의 세계와 같고도 다름을 조근조근 일러주었다.
정말 끝인가.
작업은 완전히 종료됐다. 지난주 토요일 기술 시사를 마치고 그 결과에 따라 그제, 어제 색 보정을 했다. 시나리오 첫 느낌 그대로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찍으면서 각본의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순서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음악영화이다보니 음악이 들어갈 때 요구되는 최소한의 호흡 때문에 러닝타임이 조금 길어져서 편집에서 정리했다.
애초 <세 친구>와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로 귀환했다는 평이 많다.
인물이 처한 지리멸렬한 상황은 통하는 곳이 있지만 캐릭터는 전혀 다르다. 말하자면 삼겹, 섬세, 무소속이 나이먹은 모습을 그린 영화는 절대 아니다. 사실 일부러라도 달라지고 싶었고 변화할 만한 공백도 가졌다. 그런데 영화가 감독의 정서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기본 설정이 <세 친구>와 완전히 다른데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기분은 비슷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친구>의 아이들은 희망도 부여받은 책임도 없었다. 하지만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밴드 멤버들은 자꾸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스스로 굴레를 깨치지 못하고 소시민으로 사는 그들에게는 본인의 책임도 크다. 주인공 성우의 고교 동창들도 기본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어야 하는 삶의 순수를 포기하고 편안함과 편리함을 좇는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 만연된 30대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첫 영화를 마치고 관객과 의사소통하는 ‘화술’에 대해 고민했다고 들려준 적이 있다. 미장센이나 리듬에서 어떤 새로운 궁리를 했는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콘티 단계에서 의식적으로 <세 친구>(380컷)의 두배 정도로 컷을 분할할 계획을 세웠다. 카메라 움직임이 3, 4회에 불과했던 전작과 달리 크레인과 달리숏도 많이 써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출 의도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수줍고 꼭 이럴 필요가 있나 싶어 부자연스러웠다고나 할까. 심지어 공연장면에서도 그랬다. 결국 400컷 정도로 매듭지었는데도, <세 친구>보다 인물과 에피소드가 많고 음악이 들어가서인지 보는 사람들이 훨씬 덜 지루해 한다. 해인사 인근에서 1년 반쯤 휴식하는 동안 삶이 너무 평안해서, 왜 굳이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제 스트레스의 세계로 돌아온 셈인가.
감독에게 스트레스의 뿌리는,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요소들이 혼자 맘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현실일 것이다. 초반에는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지!”하며 어려움을 많이 느꼈는데, 중반을 지나면서 점차 편안해졌다. 처음 함께하는 충무로 스탭들이라 구도나 움직임이 서로 익숙지 않은 상태였다. 예컨대 나의 개인적 스타일은 미장센이건 카메라워크이건 특정한 한 요소를 끌어내 연출 의도를 강조하지 않는 것인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리는 없으니 촬영이나 조명에 대해 최초의 컨셉이 다를 때도 있었다.
충무로 제작 시스템 안에서 작업하면서 예전에 짊어졌던 프로듀서 역할의 짐을 덜었다. 전작들과 <와이키키…>의 경험을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충무로는 “선수들끼리 무슨…” 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대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나 역시 큰 틀만 초기에 이야기하면 세부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어서,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조율하는 능력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이번에는 첫 영화와 달리 배우들이 10년 이상 연극무대에 선 프로들이어서 연기면에서 마음을 조금 놓아버린 면도 있었다. 다들 정말 열심히 해주었다. 연기와 관련된 어려움은 밴드영화이다보니 연주 연습에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 캐릭터에 대해 토의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
명필름의 <섬>이 그랬듯이 따로 사무실을 얻어 제작을 진행했고, 이은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았는데.
물심양면으로 아주 편안한 영화만들기였다. “이건 이렇게 안 하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단 한번도 제작자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성공일지와 제작기간이 딱 겹쳐졌다. <…JSA>가 개봉하고, 100만, 200만 연이어 기록을 경신하는가 싶더니 또 베를린영화제에 출전하고, 다음에는 일본 개봉 프린트를 준비하느라 후반작업을 같이 하다시피 했다. (웃음) <…JSA>가 아니어도 이은 감독은 영화계 일 등등으로 바쁜 분이라 늘 현장에 있지는 못했지만 분주한 와중에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주었다. 자잘한 간섭이 없었던 한편, 내가 정신없이 궤도를 벗어나려 하면 그러지 못하도록 길을 다잡아주었다. 이은 제작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적재적소에 최적의 지원과 충고를 해준 최선의 프로듀서였다. <세 친구>도 그랬고 나는 딴 건 몰라도 정말 제작자 복은 있구나 싶다.
음악이 전면에 나선 영화인 만큼 음악과 사운드에 많은 공과 비용을 들인 걸로 안다.
만족스럽다. 한국영화에서 플레이 백(play back) 시스템으로 제대로 녹음한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거의 처음이라고 한다. 플레이 백은 모든 레코딩을 최적의 조건에서 미리 해서 입히는 방식이다. 예컨대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장터나 야외에서 노래하는 장면은 성균관대 운동장에서 녹음을 하고, 클럽장면은 수안보 실제 클럽에서 녹음했다. 전문 세션맨의 연주를 멀티 채널로 녹음한 다음, 카메라가 악기에 접근하는 거리나 숏의 사이즈에 따라 채널마다 분리된 악기 소리를 조정했다. 사운드를 담당한 블루캡의 김성원 사장은 스스로 고교 밴드 활동 경험이 있어 영화에 애정이 컸다. 게다가 믹싱 과정에서 멀티 채널의 음향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 덕에 음향팀이 매우 즐겁게 재미있게 작업했다. 작년 인터뷰에서 ‘팬 서비스’ 차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세 친구>와 달리 로맨스의 요소가 들어 있어 눈길이 끌렸다. 시사 뒤 사람들이 들려준 해석에 좀 놀라기도 했다. 영화 전체의 톤이 가라앉아 있다보니 관객 스스로 등장인물의 마음이 되어 삶을 바라보고 동기를 부여하고 어떤 요소를 나름의 희망으로 이해한다는 점이 감독으로서 재미있었다.
염두에 둔 다음 프로젝트가 있나. 가을까지는 어떻게 지낼 계획인가.
이제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는 일은 없을 거다. 세 가지 정도 기획이 있는데, (남자들 이야기만 한다는 기자의 불평에) 그 가운데에는 고아원 소녀 축구단 이야기도 있다. 가을까지는, 파리에서 베리만 영화를 보다 처음 만난 이후 <우중산책> <세 친구>를 같이 만들었던 박경희 감독의 데뷔작 <미소>를 제작하는 데에 힘을 보탤 생각이다. 그 밖에, 여성영화인모임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으면 도울 생각이다. 지난해 4월 창립 이후 초반에 일을 돕다가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문에 바빠져서 소홀해졌다. 심재명 대표가 혼자 많이 고생한다고 들었다.
올 들어 데뷔하는 여성감독들이 열 손가락을 넘기는, 전례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영화계에 자본들이 흘러 들어오면서 기회가 많아졌고 자연히 영상원, 아카데미, 독립영화계를 통해 이미 자격을 구비해 놓았던 여성 인력들이 마침내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영화제작 공정의 변화도 이유다. 요즘은 과거처럼 감독들이 술도 잘 마시고 힘도 세고 욕도 잘하고,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대다. 그보다 개성있는 시나리오를 쓰는 능력이 제작자들이 사는 포인트가 됐고 이는 여성감독들에게 고무적이다.
여성감독의 부상은 한국영화계에도 이롭다. 우리는 현재 블록버스터이건 멜로이건 장르영화들이 획일화, 형식화돼 있다. 여성감독이 팬시 상품 같은 영화뿐 아니라 그런 장르영화에서도 작지만 자기 이야기를 분명히 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영화가 나올 것이다. 물론 예산이 40, 50억원을 넘어가는 영화는 여전히 여자감독의 기용을 주저한다. 그러나 그것도 양적으로 영화가 많아지면 달라지리라 본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와 달리 지금은 놀이 문화에 성구별이 없어졌다. 당장은 어려워도 전통적인 여성적 감수성의 영역을 벗어난 여성감독의 영화들이 나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향후 1, 2년이 매우 중요한 국면이라고 본다. 차제에 제작자와 관객에게 여성감독도 제작에 있어 관객과의 교류에 있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신시킬 수 있다면 성별을 떠나 개인의 특질대로 평가하는 인식이 보편화될 것이다. 단편영화 경선 심사를 해봐도 얼마간 코드화, 관습화돼 있는 남자들의 상상력보다 여성 출품자들의 상상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