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공포영화 귀신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배우로 뽑힌 바 있다. 데뷔작 <가위>에 이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네 번째 영화 <폰> 역시 공포물인 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생김새에서 풍기는 스산한 독기가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하지원은,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미로를 얼굴 속에 지니고 있는 배우다. 걸어감에 따라 더 어두운 골목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렇지 않은 일상적인 풍경이 스치기도 하는, 그런 미로다. 공포영화에서 잔잔한 일상이 늘 공포를 배가시키곤 하듯, 하지원의 생김새에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표정과 유혹적인 섬뜩함이 섞여 있다. 그런 느낌을, 본인은 알고 있을까. 배우인 딸을 위해 어머니가 유난히 거울을 많이 걸어두었다는 집에서, 하지원은 샤워하고 나올 때면 문득, 거울에 비친 스스로에게 무서움을 느낀다고 한다. “누군가 자꾸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스물네살 한참 밝고 발랄할 나이에 듣는 평판이 ‘공포’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보니 그리 달갑지 않을 듯도 하나, 하지원은 내심 반기는 눈치다. “사실 여배우들이 공포물이라면 시나리오도 안 보고 안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가위> 이후에 너무 이미지가 그쪽으로 굳어질까봐 공포영화는 안 하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폰> 시나리오가 아주 재미있었고, <디 아더스> 같은 영화를 보면서 공포물에서의 연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공포영화에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가위>의 안병기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은 <폰>에서 그녀의 역할은 원조교제 등 사회의 어두운 사건들을 발굴 보도하는 르포기자 ‘지원’. 친구 호정의 남편이 저지른 원조교제가 부른 심령 괴담에 휴대폰을 매개로 말려들어간다. <가위>의 귀신처럼 직설적인 공포연기가 아닌, 사건의 밖에서 서서히 사건의 중심으로 걸어들어가는 ‘절제된’ 공포연기를 카메라 앞에서 해보였다고. 어느 정도로 절제돼 있냐 하면, “몸은 모두 고정시켜놓은 상태에서, 동작이 전혀 없이 눈빛만으로 무서움과 놀람을 표현”하는 장면도 꽤 있다고 한다.
<가위> 이후 2년 만에 다시 만난 안병기 감독에게 하지원은 한마디 들었다. “너 많이 나아졌다. <가위> 때는 촬영장에서 스탭들한테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세 마디밖에 안 했는데, 이제는 너무 까부는 것 아니냐?”라는. 외로움을 많이 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어색하다는 하지원에게 ‘까분다’는 건 칭찬이다. 아니 원래 배우는 잘 까불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평소에는 말이 없지만, 자신이 출연한 작품에 대해, 자신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라치면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가 줄줄 나온다는 하지원. 점점 영화라는 ‘종목’과의 ‘호흡 맞추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까불기’에 맛을 들이고 있는 하지원에게 우리는, 올 여름 한줄기 서늘한 공포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월드컵: 미국전 땐가요? 축구 보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포르투갈전은 직접 인천에 가서 보았죠. 주위 관람객들과 사진도 찍고 어울려서 관전했어요. 좋아하는 선수요? 안정환하고 박지성. 저는 열심히 하는 선수가 좋아요. 아, 그런데 전부 다 열심히 해서 사실은….(하지원은 소속사가 같은 최수종이 주장으로 있는 연예인 축구팀의 서포터로, 월드컵 기간 텔레비전에 종종 모습을 비췄다. 그녀는 최수종의 소개로 알게 된 한 고아출신 축구선수- 현재 모 대학팀 소속- 의 든든한 친구이기도 하다.)
영화제: 부천영화제와 하지원은 인연이 많다. 데뷔작 <가위>가 2000년 부천영화제의 폐막작이었던 데 이어 <폰>도 올해 부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다. 이번에는 ‘페스티벌 레이디’까지 맡아, 부천에서 그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