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유작이된 <퀸 오브 뱀파이어>의 알리야
2002-07-03
글 : 황혜림
음악은 첫사랑, 영화는 마지막 사랑

<퀸 오브 뱀파이어>를 보면서 영화가 주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감상에 젖는다면, 아무래도 알리야 때문일 것이다. 오랜 세월 딱딱한 석상으로 굳어 있다가 뱀파이어 레스타의 음악에 눈을 뜨는 모든 뱀파이어들의 어머니 아카샤. 고대 이집트의 여왕답게 이국적인 의상과 장신구 사이로 흑갈색으로 빛나는 살결을 드러낸 채, 흐느적거리며 춤추듯 어두운 바를 가로지르는 알리야의 움직임에는 관능적인 에너지가 흐른다. 더이상 현실에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신비로운 여운을 남기는 미묘한 생기. 지난해 8월25일, 바하마제도의 아바코섬에서 일어난 불의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퀸 오브 뱀파이어>는 알리야의 유작이 됐다.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자신의 첫 음반 제목처럼, 15살에 데뷔하면서 팝계를 뒤흔든 소녀에게 ‘어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일급 R&B 프로듀서 겸 작곡가, 가수로 이름난 R. 켈리에게 발탁돼 데뷔한 94년, 알리야는 디트로이트 연기예술고등학교의 학생이었다. 앳된 티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였지만, 풍부한 울림을 타고난 음색과 켈리의 세련된 R&B 음악은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알리야를 앙팡테리블로 주목받게 했다.

사실 “음악은 첫사랑”이라는 그가 기억하는 시작은 6살 때. 처음 학교 연극을 하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연기도 하는” 것에 푹 빠져버린 꼬마는 내심 갈 길을 정해버렸다. 꽤 유망한 가수였던 어머니, 블랙그라운드 엔터프라이즈란 매니지먼트사를 운영하며 가수 글래디스 나이트와 결혼했던 외삼촌을 둔 영향도 있었다. 알리야는 9살 때 아마추어들의 경연장인 TV쇼 <스타 써치>에 출연했고, 어머니에 대한 오마주로 을 깜찍하게 소화하며 첫인상을 남겼다. 2년 뒤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글래디스와 함께 무대에 섰으니, 틈틈이 봤던 오디션까지 포함하면 어려서부터 실전 연습을 톡톡히 거친 셈이다.

알리야의 완전한 이름은 알리야 데이나 호튼. ‘알리야’는 스와힐리어로, “가장 높고 고귀한 사람”(The Highest, Most Exalted One)이란 뜻이다. 미성년이라 더욱 구설수에 올랐던 켈리와의 결혼설에 시달리긴 했지만, 알리야는 이름처럼 빠른 상승가도를 달려왔다. 96년 블랙그라운드에 적을 두고 팀벌랜드 등과 의기투합한 2집은, 켈리의 매끈한 감각 대신 성숙한 분위기를 내세우며 200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내 역할모델은 <스타탄생>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다. 노래와 연기를 둘 다 잘하니까.” R&B 스타로 등극한 알리야에게, 또 다른 꿈의 문이 열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나스타샤>와 <닥터 두리틀> 등 다수의 O.S.T에 참여하면서 영화계 견문을 넓히고, 밀려드는 시나리오 속에서 고른 첫 영화는 <로미오 머스트 다이>. 조직 보스의 딸이자 아시아계 ‘로미오’ 이연걸과 교감을 나누는 검은 ‘줄리엣’ 트리시는 무난한 첫 걸음이었으나, “음악과 영화, 둘 다 해내는 온전한 엔터테이너”를 향한 야심찬 여정의 끝은 확인할 길이 없게 됐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2, 3편으로 이어질 뻔한 행보를 상상해보거나, 남겨진 흔적을 기억하는 수밖에. 너무 일찍 떠났지만, 나지막하게 감기던 R&B의 음색과 함께 영원한 스물두살로 스크린에 남을 알리야를 말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