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이 송강호를 만나면?
불륜이네. 현재 나는 오성이랑 잘 살고 있고, 송강호씨도 박찬욱 감독님이랑 잘 살고 있는데. 이런 질문에 답하다간 구설수에 오르는 것 아닌가? (웃음) 사실, 한번 러브콜을 한 적은 있다. 송강호씨를 처음 본 게 <초록물고기>에서였는데, 느낌이 너무 좋아서 데뷔작인 <억수탕>의 동네 건달 역을 제안한 적이 있다. 인연이 안 닿아서 성사되진 않았지만. 지금도 그는 여전히 연출자가 원하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배우다. 감독의 입장이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앞으로 송강호의 살냄새 나는 멜로영화를 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나보고 찍으라고? 오성이한테 일단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웃음)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배경으로 한 멜로영화가 되지 않을까.
곽경택이 송강호를 통해 본 박찬욱
송강호의 연기에는 섬뜩한 게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그랬고, <복수는 나의 것>은 더했다. 그런데 그의 연기에선 박찬욱 감독이 정확하게 계산한 숏이나 편집리듬 같은 게 보인다. 박 감독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제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송강호처럼 연출자의 의도를 제대로 읽는 배우들한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사실 뭘 해도 송강호 같은 배우는 다른 인물들과 잘 어울린다. 항상 밸런스를 유지한다. 연출자의 계산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라는 게 가끔 외국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그만큼 크다. 그는 굉장히 ‘외국어’를 잘 구사한다. 그것도 다른 이들과 구별될 만큼. 게임의 룰을 아는 그의 영화는, 그래서 볼 때마다 오싹하다.
박찬욱이 유오성을 만나면?
유오성을 흔히들 동물적인 직관과 본능에 의해서 연기하는 배우라 한다. 그건 근데 일면이다. 그 밑엔 영화 전체를 큰 눈으로 조망하는 능력이 있다. 중구남방으로 찍다보면 컷 연결조차 안될때도 있는데. 분명 그 사람은 순간에 돋보이는 연기, 감탄을 자아내는 연기 대신 참고 뒤로 물러서준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이 이어질 수가 없다. <친구>에서 약하는 장면은 난 계산된거라 본다. 절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잔기교에 기대지 않는 것도 내 취향이다. 강호 씨랑 같이 붙여놓으면 감독으로선 꿈의 기획이지. 나라면 처럼 영화 속에서는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고, 전체로는 좋은 앙상블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영화를 해볼 수 있다면 좋겠지.
박찬욱이 유오성을 통해 본 곽경택
경상도 머스마들은 무뚝뚝하면서도 정이 많다고 한다. 즈그들도 자랑하지 않나. 사실 <친구><챔피언>에서의 복고성은 포니자동차가 아니라 그런 남성성에 대한 매료다. 남들은 촌스럽다 하고, 흘러간 것이라고 그러지만, 영화속 유오성의 무뚝뚝한 얼굴은 곽경택에겐 가장 멋있는 남성의 표정이다. 엄청 센척 하는 남성. 그러나 그 유오성의 표정 안에는 뭔가 억눌린 것이 담겨져 있다. 그게 아니라면 슬픔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챔피언>에서 세계챔피언이 얼마버는지 아느냐고 뱉어놓고 우물쭈물하는 연기를 보면, 목표가 뭔지 모른 채로 맹목적으로 달리는 김득구의 어리둥절함이 인상적으로 담겨 있다. 그게 유오성의 매력이고, 곽경택 영화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