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톰 크루즈
2002-07-18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나도 또 뛸 거야!

2002년 7월3일. 톰 크루즈는 마흔살이 되었다. 나이 마흔에, 이 세계가 사랑한 ‘꽃미남’은 아랫니가 내려앉는 바람에 입을 다물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아이들처럼 교정용 ‘철도’를 깔았다. 1990년에 <탑건>으로 만났었던 미미 로저스와 한번, 2001년에 <파 앤드 어웨이> 로 만난 니콜 키드먼과 또 한번, 두번의 이혼경력을 등판에 백넘버처럼 달았다. 그리고 키드먼과의 사이에서 입양한 이사벨라와 코너라는 두 아이를 “테러와 범죄가 가득한 미국에서 키우지 않을 것”이라 공언하며 ‘극성아빠’ 티를 내고 다닌다. 그러나 불혹(不惑)의 나이 40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에 톰 크루즈는 달린다. 철도 물고 달린다. 백넘버 보이며 달린다. 아이들을 매달고 달린다.

“중년의 위기란… 적어도 나에겐 없어요. 나는 그냥 하던 대로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성장할 뿐이에요. 물론 지난해는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난 쭉 축복받은 삶을 살았잖아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난다는 건 축복이죠.” 애초부터 ‘국가대표 미국배우’ 톰 크루즈의 입에서 ‘불안하다’느니 ‘절망적이다’라는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봉을 앞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포함해 그가 출연했던 지난 4편의 영화에서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그가 가면을 쓰고 카메라를 향한다는 것. 위장전술 때문에 얼굴덮개를 썼던 <미션임파서블2>에서도, 가면을 쓴 채 난교파티장을 허둥대며 걷던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도, 사고로 일그러진 얼굴을 기괴한 가면으로 가리던 <바닐라 스카이>에서도, 일시적으로 얼굴을 늙고 추하게 만드는 주사를 맞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그는 잠시 가면 뒤로 자신의 진짜 얼굴을 가린다. 지난 1년간 그를 괴롭히던 여러 소문들과 결혼 10주년의 니콜 키드먼과의 갑작스런 이혼발표. 공식적인 석상에서 늘 강인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의 모습과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시달렸을 실제모습을 영화의 설정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그는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언론이 이번주에 페넬로페 크루즈와 내가 깨졌다고 말하면, 다음주에 다른 언론에선 우리가 바하마에 결혼식을 하러 간다고 말할 지경이었죠”. 수많은 추측성 기사에도 ‘그저 친구’라고 주장하다 직접 제작을 맡았던 <바닐라 스카이> 개봉과 함께 연인 사이임을 밝혔던 페넬로페 크루즈와의 스캔들은 그의 이혼소식만큼이나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언론의 호들갑에 관심이 없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와 애증어린 조우를 하던 <매그놀리아>의 프랭키처럼 84년 암으로 죽어가던 아버지를 만난 것이 그 생애 아버지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을 만큼 불우하고 가난한 성장기를 거친 톰 크루즈. 1962년 이혼녀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15번의 전학을 거듭했던 학창 시절을 거친 그에게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은 어쩌면 꽤나 익숙한 것인지 모른다. “난 늘 학교에서 ‘새로운 학생’이었어요. 학교를 옮길 때마다 나도 모르는 이상한 소문들과 추측들이 따라다녔죠. 나는 늘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아이였고 당연히 파티에는 초대받지도 못했죠. 그러나 언젠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냉정하게 충고했어요. ‘톰! 정신차려, 이게 바로 세상이야.’ 그래요. 그게 바로 세상이었어요.”

톰 크루즈가 “감독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소개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스필버그와 크루즈는 20년 전인 1982년 <위험한 청춘> 세트에서 데이비드 게펜의 소개로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 순간 나 자신이 그와 일하길 원한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진 몰랐죠.” 결국 몇번의 스침 뒤에 운명의 끈은 짝을 찾았다. 그가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을 찍고 스필버그가 <A.I.>를 찍어가는 동안 필립 K. 딕의 소설과 초벌 시나리오를 읽어내려가던 톰 크루즈의 머리속엔 단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굉장할 거라 생각했죠.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필터를 통해 만들어질 이 영화를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스필버그의 확답을 받아낸 그는 <바닐라 스카이>의 촬영을 끝내고 24시간 뒤, <마이너리티 리포트> 촬영장으로 달려갔다.

“3살인가 4살 때, 침대보를 찢어서 낙하산 삼아 창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던 기억이 나요. 많이 다치고 깨지면서도 매일 나무에 오르는 그런 소년이었어요.” 그는 이번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촬영 때도 타고난 운동신경과 <미션 임파서블2>를 찍을 때 2천 피트 높이의 암벽을 안전장치 없이 7번이나 재촬영하며 오우삼을 질리게 했던 그 ‘완벽주의자’다운 풍모를 여실없이 드러냈다. 숨막히는 추격전과 자기부상자동차를 넘나들며 펼치는 아슬아슬한 액션씬을 스턴트맨 없이 연기하겠다는 톰 크루즈에게 스티븐 스필버그는 “제발 내가 ‘NO’ 할 수만 있게 해달라”고 말했을 정도다.

요즘 톰 크루즈는 검술연습에 한창이다. <커리지 언더 파이어>의 에드워드 즈윅이 연출하는 <마지막 사무라이>(The Last Samurai)를 위해 ‘사무라이’식 칼솜씨를 연마하고 있는것. 이제 고풍스런 19세기의 일본으로 날아갈 그는 얼마지 않아 다시 <미션 임파서블3>의 에단 헌트 요원이 되어 최첨단 장비들을 작은 슈트케이스 안에 챙기고 우리 곁으로 달려올 것이다. 누명을 쓰고 프리크라임 대원들에게 쫓기던 존 앤더튼이 계속해서 읊조리는 그말(“모두들 달린다”)처럼, 톰 크루즈는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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