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사이코라는 별명, 싫지 않은걸요, <폰> 배우 최지연
2002-08-07
글 : 박은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얼굴을 마주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랑이라고 믿은 남자에게 살아서도 죽어서도 집착하는 여고생. 바닥까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밤마다 <월광소나타>를 치고, 남자의 딸아이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그 원혼이 휴대폰을 울리고 또 울린다. <폰>의 상영관에는 여지없이 찢어지는 비명이 터진다. 그 여고생이 등장할 때마다 그렇다. 그래서 한을 품고 죽은 여고생 진희를 연기한 최지연을 만난 순간, 이렇게 소리칠 뻔했다. “저기요, 저한테는 전화 걸지 마세요.”

그런데 자연인 최지연의 모습은 영 딴판이다. 결코 남을 겁줄 수 있는 얼굴이 아니다. 하긴 <폰> 이전까지 최지연은 ‘청순가련’의 대명사였다. 작고 가녀린 몸매, 선이 부드러운 얼굴, 크고 맑은 눈망울 때문이다. 입에 껌을 물고 유지태에게 권하던 귀여운 아가씨, 장동건이 신발끈을 매어주자 마음이 흔들리고 마는 소녀 등 CF를 통해 처음 얼굴을 알릴 때 최지연은 ‘김희선’과 ‘이영애’를 닮았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 최지연이 자신의 영화 데뷔작으로 <폰>을 택한 이유를 헤아리기란 어렵지 않다. “강한 연기를 하고 싶었나봐요. 무의식적으로. 첫 영화 이미지가 오래갈 거라며 걱정하는 분들도 많은데, 벗어날 자신이 있었어요. 선과 악이 동시에 담긴 역할이라, 꼭 해보고 싶었고요.”

청순가련 이미지를 고수해온 최지연이 원혼으로 거듭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최지연 말마따나, 독을 품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 “귀신을 본 적은 없지만, 가끔씩 느끼거든요. 전 안 무서워요. 진희의 원혼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진희는 자기 존재를 알리려 한 것뿐이거든요.” 캐릭터 분석을 마친 뒤에는 <월광소나타>를 연습했는데, 피아노를 전혀 못 치는데도 3주 만에 마스터해서 ‘시늉’이 아닌 진짜 연주를 해보였다. 진희가 죽는 장면을 찍던 날엔 턱선이 흐려질 만큼 임파선이 붓기도 했다. “연기 어땠냐고 물었더니, 다들 제 얼굴 탓만 하는 거예요. 몸관리 잘못한 건 제 잘못이지만, 너무 속상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촬영장에서 울었어요.” 어쨌든 ‘독을 품고’ 덤빈 덕에 최지연은 <폰>을 흡족한 데뷔작이라고 자랑할 수 있게 됐다.

또 한번의 반전. 청순가련에다 새침한 인상의 이 아가씨는 ‘내숭’과는 거리가 멀다.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입상하고, 브라질에 수년간 머무른 탓에, 일찍부터 남들 시선을 많이 받는 아이였다고. “중학교 때까지 공주였거든요. 어느 날 돌아보니 친구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털털하고 모자란 듯 보였더니, 더이상 외롭지 않더라고요.” 제일 친한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 ‘사이코’라면서, 아주 맘에 든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남자들한테 인기 많겠다는 칭찬에는 “그걸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하냐”는 너스레로 받아친다. “저 러셀 크로 싫어하거든요. 근데 <뷰티풀 마인드> 보면서 울었어요. 배우가 캐릭터에 흡착된 느낌이랄까. 전율을 느낀 거죠. 아직 멀었지만,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카타르시스, 희망, 모범, 치유. 그런 걸 보여줄 수 있는 진짜 배우요.” 솔직함이 통통 튀는 인터뷰 말미에 최지연이 내비친 각오는 야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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