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니?” 그녀는 전혀 엉뚱한 대답을, 아니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인터뷰 마지막, 으레 던지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을 놓고 그녀는 한국영화의 미래가 행복한지 되레 묻고 있었다. 선지연(29)의 묻는 듯한 눈빛 앞에서 추상적이게나마 한국영화의 낙관론을 돌려줄 순 없었다. 그녀가 묻고 있는 건 단호하고 단순했으며, 사실적이었다. “영화만 하고도 생활이 들까요? 기자 분이 보기엔 그래요?” 고개가 슬그머니 가로저어진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 꿈을 말하기 위해선 우선 그 꿈이 가능한 상황인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판의 막내까지 영화만 하고도 먹고살 수 있을 때, 그땐 정말 ‘영화만 하는 선지연’이 가능할 테니까요.” 흠, 그렇다면 그녀의 바람은 쪼들리지 않는 영화쟁이인가? 아니다. 선지연의 꿈은 원래 백수다. 아직까지 한 차례도 쉰 적 없는, 그래서 백수의 생활이 어떤 건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가 백수가 꿈이란다. (그/런/데) 외국어 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 독문과를 다니던 그녀는,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재학생 신분으로, 흥미 반 응시한 면접에 덜커덕 붙어 면접 다음날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불운(?)을 겪었다. 패션 머천다이저. 그녀의 첫 번째 직함이었다. 외국에 자회사를 둔 패션업체를 소개한 건 같은 과 교수님이었다. 몸에 걸치는 것이라면 남보다 조금씩 센스업된 그녀를 눈여겨본데다, 독일어와 영어 실력이 뛰어난 점도 추천 이유가 됐다. 종이 한장의 디자인을 실제 옷으로 둔갑시키는 일에 매진하던 그녀는 홀연히 영화사 마케팅팀 직원으로 탈바꿈한다. 당시 <씨네21>에 실렸던 영화사 ‘봄’ 구인광고를 본 직후였다. 본인만 빼고 다 말렸단다. 수당 높고 대우 좋은 전 직장의 매력은 구구절절이 그녀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굳이 전직 이유를 대자면 의상은 ‘취미’요, 영화는 ‘취향’이기 때문이었다. 취미는 바꿀지언정 취향을 바꿀 수 없다는 이유에서 그녀는 영화 마케터가 됐다. 마케팅이라는 게 국내일이든 해외일이든 멀티태스킹이라는 점에선 동일한데, 국내에선 관객과 대면하고, 해외 마케팅에선 바이어를 상대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란다. 영화의 기획단계부터 실시간으로 영화에 대한 정보(시나리오 작업, 캐스팅, 제작 진행 등)를 흘리고, 영화의 개봉과 함께 포스터, 스틸, 각종 보도자료 뿌리고, 각 협력업체를 통한 프로모션(영화의 이미지와 맞는 상품을 함께 홍보하여 양대 광고효과를 봄)과 크고 작은 이벤트로 영화에 대한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기까지가 그녀가 하는 대충의 일이다. <쓰리>는 유명 감독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입소문이 진작에 난 작품이라 바이어들이 알아서 모여들었다. 개봉일은 3국이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한국이 가장 마지막 개봉지가 됐다고. 좀 쉴 때가 안 됐냐고 하자, 이번주 개봉인데, 지금부터 뛸 때라고 도리어 스스로를 채근한다.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프로필
→ 1974년생
→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98∼99년 봄 패션 머천다이저로 활동
→ 99년 여름부터 영화사 봄 근무
→ <정사> 해외 마케팅
→ <반칙왕> 국내외 마케팅
→ <눈물> 국내외 마케팅
→ <쓰리> 국내외 마케팅
→ 현재 <장화, 홍련> <스캔들> 준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