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아내, 은희. 철판을 몇겹 둘렀는지 모르게 못되고 뻔뻔하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여자. 조은지는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저 그렇게 재미없는 설명? 하지만 이것은 조은지가 “완벽한 외모만 믿고 철없이 행동하는” 시나리오 속의 은희를 자기 나름대로 바꿔낸 설정이라 기특하다. “은희가 그렇게 예쁜 여자면 저를 썼겠어요? 그렇게 예쁘진 않아도 매력있는 인물이니까 제가 캐스팅된 거예요.” 겸손한 건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헷갈리고 있는데, 결정적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눈물> 촬영현장에 강아지가 있었거든요. 근데 스탭들이 다 저만 귀여워해서 제가 강아지였다니까요.” 벌써 네 번째 영화를 찍고 있지만 현장에선 항상 막내, 자유분방한 부모가 놓아 기른 팔팔한 셋째딸. “알고보면 무지 수줍은” 소녀라는 그 자신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조은지는 삐죽한 생기를 감추지 못한 채 몽땅 드러내고 만다.
조은지는 십대들의 그늘진 삶을 여과없이 투영한 영화 <눈물>로 데뷔했다. 데뷔작의 흔적과 날뛰는 것처럼 솔직한 몸짓 탓에 심상치 않은 과거를 가졌을 거라 짐작하기 쉽지만, 조은지는 비교적 평탄하고 상처없는 성장과정을 거쳤다. “제가 삭발한 적이 있거든요. 이런 거 말해도 되나? 예고라서 머리를 길게 길러야 했는데, 그냥 박박 깎았어요. 저 신기하죠?” 그 삭발사건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한 것을 제외하면, 처음 받은 모델료 400만원에 놀라 어렸을 때부터 일하느라 학교를 자주 빼먹은 것을 제외하면, 조은지는 <눈물>의 란이와는 좀 거리가 있다. 오히려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행복했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모델이랑 배우를 하게 된 게, 젊었을 때 한번 해보고 싶었다는 것과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나한텐 기회가 저절로 찾아왔다는 것 때문에” 이 길로 접어들었다니, 얄미운 마음이 살짝 일어나는 순간, “예뻐서 됐겠어요. 다 너무 특이하게 생겨서”라며 다시 귀여운 조은지로 돌아간다.
또래 주연배우 넷이 몰려다니느라 즐거웠던 <눈물>과 영화찍는 게 이런 거란 걸 알게 된 <아프리카>, 조연이라 시간이 많아 좋았던 <후아유>를 거쳐 조은지는 타이틀 롤을 맡은 <…태권소녀>의 막바지 촬영중이다. <휴머니스트>의 이무영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태권소녀>는 철없는 아내 은희를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남편과 태권소녀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인연으로 얽히게 되는 이야기. 조은지는 제목만 보고 이 영화가 코미디인 줄 알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선 일단 한번 당황했다. 이무영 감독과 긴 대화를 하면서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던 것이 올해 4월. TV인터뷰에 능숙한 동료 공효진을 부러워하고, 혀가 짧은 탓에 발음이 안 돼 열번 넘게 NG를 내는 사이 몇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세 남녀가 상식이 허용하는 선을 아무 생각없이 넘어서는 <…태권소녀>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묻자 “지구에서 세번쯤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 너무 좋다고 냉큼 대답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네편이나 되고, 날을 잡아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촬영이 끝나면 한참 쉴 거라는 조은지 역시, 지구에 세명쯤 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