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아퀘트는 자신이 광대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우편배달부로 출연해 안쓰러운 슬랩스틱 코미디를 펼치는 <스팟>이나 매력적인 여성 리포터에게 바보처럼 이용당하는 <스크림>을 떳떳한 필모그래피로 내세운다. 심지어 그는 서커스의 어릿광대 쇼에 출연하면서 “멋지지 않아요? 거기선 진짜 광대옷을 입을 수 있고 진짜 광대 분장도 해줘요!”라고 자랑까지 한다. 눈코입이 오밀조밀하게 가운데로 몰린 얼굴만으론 당연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퀘트는 진지하다 못해 그늘로 뒤덮인 두 여배우, 로잔나와 패트리샤의 막내동생이고, 배우 혹은 제작자로 미국 독립영화의 중심인 선댄스영화제에 5년 연속 참가한 경력이 있다. “블록버스터는 무서워서 싫다”는 아퀘트는 그저 광장공포증 환자에 불과한 것일까. 여동생마저 무시하는 지진아에서 냉소적인 성인으로, 마음 깊은 보호자로, 시리즈 내에서 변화를 거듭하는 <스크림>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아퀘트는 ‘아퀘트 가문’으로 불리는 연예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클리프는 보드빌 쇼와 라디오의 스타였고, 아버지 루이스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TV 배우였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의 향기에 취해 살았을 것 같지만, 루이스가 띄엄띄엄 일을 맡는 조연이었던 탓에 아퀘트 가문 아이들은 종종 먹을 것이 떨어지거나 자선기금의 도움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아퀘트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트레일러에 사는 백인 하층민 연기에 능숙한 것도 당연한 일이랍니다. 우리가 바로 그렇게 살았으니까요”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비루한 환경은 역설적으로 어린 아퀘트의 영혼을 자유로운 거리로 내몰았다. “나는 마약도 했고, 그래피티 아티스트 노릇도 했어요. 우리는 창녀와 남창, 마약거래꾼들과 알고 지냈죠.” 그 시절의 경험은 아퀘트가 경력의 전환을 이룬 독립영화 <존스>에서 남창을 연기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할리우드 변두리 초라한 아파트를 “연기를 하라고 강요한 누나들” 덕분에 탈출한 아퀘트는 <와일드 빌> <로드레이서> 등에 출연하며 아퀘트 가문의 신성으로 자리잡았다.
<스크림>의 파트너 커트니 콕스와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다 결혼에 이른 지금, 아퀘트는 여전히 평범하지 않고, 그렇다고 타락하지도 않은 생활습관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그는 콕스와의 관계를 방해한 마약을 끊은 뒤에도 병적으로 심리치료사에게 의존한다. 때로는 스트립 클럽에 들른다고 공식적으로 털어놓으며, <드림 위드 피시>의 상습적인 자살미수가 인간의 보편적인 성질 중 하나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프릭스>의 돌아온 탕아 크리스, 사랑하는 여인에게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남자, 그리고 먼지를 묻힌 채 돌아와 실소밖에 안 나오는 방법으로 괴물 거미에게 대항하는 크리스의 변화무쌍함은 아퀘트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아퀘트는 난처하고 슬픈 듯한 눈빛과 코미디의 기운이 관찰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를 보는 대신 영화 보러 온 사람들을 보는” 습관 때문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그는 “버스터 키튼을 모범으로 삼지만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인다. 물결같은 사람들 속을 헤치면서도 자그마한 눈동자를 빛낼 것 같은 그는 이제 러시아로 긴 여행을 떠난다. 신작 <포린 어페어>가 전통적인 주부를 찾아 러시아로 간 형제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좀처럼 미국을 떠나지 않았던 아퀘트는 이제 더 넓은 공간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