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참 예쁘게 생겼구나.”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소녀에게 묻습니다. “무서운 아저씨가 아니란다. 그냥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려고 그러는 것뿐이야.” 소녀는 뒷걸음질칩니다. 오래된 단짝친구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거나 부모님과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걸 제외하면 말이 없던 소녀에게 낯선 사람의 접근은 더럭 겁부터 불러일으킵니다. “잘 생각해 보렴.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돈도 벌 수 있단다.” 아저씨는 명함을 하나 내밀고 사라집니다. “돈을 벌 수 있다구?…” 소녀는 화려한 조명 아래 서는 것도, 인기를 얻는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듣지 못하는 부모님에게 외동딸의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수술을 시켜드릴 거야.” 99년, 소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펑’ 참으로 이상한 불빛이었습니다. 스튜디오의 불빛 아래 선 소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합니다. “그냥 아무 표정 짓지 말아요.” 수조 속에 얼굴을 담그기도 하고 허공을 향해 고기를 잡는 시늉도 해봅니다. 조개껍질을 귀에 대보기도 합니다. 사과나무 아래서 사과를 한입 베어물기도 합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 불빛을 받을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다르게 보입니다. 소녀의 얼굴이 TV를 통해 나가자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뭐하던 아이야?” “한국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일본 아이래….” 소녀는 슬며시 부끄러워집니다. “내가 아니야” 라고 친구들에게 말했지만 믿어주지 않습니다. 길거리를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습니다. 아직 스무살도 채 되지 않았는데 ‘스무살’이라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은경’이란 이름 대신 ‘TTL’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소녀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소녀처럼 머리를 자르고 소녀처럼 옷을 입고 다른 것들을 팔기 시작합니다. ‘TTL 소녀 같은’이란 수식어가 심심찮게 나오고, “저 아이는 휴대폰 속에 3년은 갇혀 있어야 하는 저주를 받았데…” 하는 악소문도 퍼집니다. 소녀는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하네… 난 이곳이 점점 재밌어지고 있는데….”
비바람 속에서도 태양은 뜨고 세월은 흐릅니다. 어느덧 토마토 세례를 통해 세상의 색깔과 화해한 소녀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길을 떠났습니다. 머리가 곱슬곱슬하고 붕 떠 있는 아저씨는 ‘감독’이라고, 안경낀 자그마한 아저씨는 ‘촬영감독’이라고 인사합니다. 조금 무서웠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강해진 소녀입니다. 하룻밤도, 이틀밤도 아니고 예순 밤도 넘게 매일 구르고 뛰고 매달립니다. 생채기가 아물기 무섭게 다시 상처가 생깁니다. 사람들은 이제 ‘TTL 소녀’가 아니라 ‘성냥팔이 소녀’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