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이투마마>의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2002-09-1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멕시코의 아도니스,아모레스 라틴아메리카

스무살 무렵엔 세상이 더없이 만만해 보인다. 존재하지도 않는 해변을 향해 떠날 수 있고, 불륜과 동성애적 긴장이 뒤얽힌 관계 속에 하룻밤쯤 던져볼 수도 있다. 멕시코의 햇살처럼 빛나는 시간. 그처럼 두려움 없이 엉뚱한 모험을 벌이는 <이투마마>의 소년 훌리오가 바로 일년 전 혼돈으로 부서진 <아모레스 페로스>의 거리 한복판에 던져졌던 옥타비오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빛과 어둠처럼 서로를 등진 두 인물을 연기한 배우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지금 멕시코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스물넷의 예쁘장한 젊은이다. 미(美)의 절정을 누리고 있어 소녀들에게 사랑받는 가르시아 베르날이지만, 온기어린 갈색 눈동자를 덮은 그늘 때문에, 그는 쉽게 스러진 다른 배우들과는 조금 떨어진 영토의 대기를 안고 있다.

가르시아 베르날은 <아모레스 페로스>에서 이상한 풍습을 가진 고장이라고 농담처럼 인용되는 멕시코 과달라하라 태생이다. 이국적인 발음을 가진 고향과 거칠게 칼날을 휘두르는 <아모레스 페로스>의 하층민 이미지 때문에 어두운 과거를 가졌으리라 짐작하기 쉽지만, 그는 꼬마 때부터 배우인 부모와 함께 연극무대에 선 복많은 아이였다. 연기만 하고 연기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아이. 그는 들뜬 십대가 되자 무작정 여행을 하겠다며 멕시코를 떠났다가, 영국에 도착해 “여행만 하는 건 지겨워”라며 연기학교에 들어가 2년을 눌러 살았다. 한 장소에서 벌어진 교통사고와 거기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아모레스 페로스>는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지만, 연극과 TV시리즈, 높은 평가를 받은 단편영화 <데 트리파스 코라존>은 배우 가르시아 베르날이 풍요로운 개인적 환경을 척박한 남미 일반의 토양으로 뒤덮을 수 있는 거름이 돼줬다.

<이투마마>에서 열두살 때 함께 일한 친구이자 동료배우인 디에고 루나는 인디오 출신 유모의 고향을 지나치며 혼자만의 회상에 젖는다. 그 장면은 어쩌면 가르시아 베르날에게 주어졌어야 맞는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것 없고 일찍 외국을 돌았던 청년답지 않게, 가르시아 베르날은 제3세계 국민으로서의 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하비 카이틀과 <줄리아를 꿈꾸며>를 찍은 그는 영향력 있는 할리우드 배우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보다 그 영화가 영어로 됐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영화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찍었고, 배우와 스탭 모두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었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비 카이틀뿐이었는데 우리는 영어를 사용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이제 할리우드로 갈 때가 되지 않았니?”라는 말이고, “소수민족이 소외되는 현실이 싫어 미국을 좋아할 수 없다”는 가르시아 베르날.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말이 유독 가르시아 베르날에게 이르러 다르게 들리는 까닭은 그것이 ‘예술’을 하겠다는 때이른 고집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르시아 베르날은 연기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든지 잘생긴 외모가 부담이 된다든지 하는 흔한 고민은 쳐다보지 않는다. 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그저 옷을 벗고 할 일을 하는 것이 섹스”라 생각하며 연기를 한다. 아직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부족한 나이인 탓에, 영화보단 ‘처녀지’라고 사랑스럽게 부르는 아메리카의 대지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가르시아 베르날은 그처럼 라틴아메리카를 사랑했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일대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출연할 예정이다.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죽음이 침범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 세월을 뛰어넘는 영원한 우상 체 게바라도 가르시아 베르날에겐 잠시 멈추는 정거장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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