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지섭은 한쪽 팔에 커다란 부목을 받치고 스튜디오로 걸어들어왔다. 지난 3월 <출발! 드림팀>을 찍다 쇄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그는, 드라마 <유리구두>와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를 모두 끝낸 얼마 전에야 수술을 받았다. 지금 그의 어깨는 부러져 어긋난 채로 자라 있던 뼈를 제대로 맞춰 핀을 박은 상태로, 6주 뒤 핀을 뺀 다음 재활치료를 3개월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4개월 반의 휴식기간이 부상으로 인해 생기는 셈. 연예계 데뷔 이래 처음으로 맞는 긴 휴식기를 앞두고, 소지섭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인터뷰를 끝낸 뒤 그에 관한 인상은 이렇다. 그는 결코 말을 많이 혹은 잘하는 남자는 아니지만, 툭툭 내던지는 적은 말에서 특유의 내성적인 듯하면서도 장난끼 있는 남자스러운 매력을 강하게 내비치는 배우라는 것.
드라마에서는 익히 잘 알려진 그이지만 <씨네21>이 그를 ‘페이스’에서 다루게 된 것은, 그가 데뷔 8년 만에 <도둑맞곤 못살아>로 첫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사는 집을 몰래 구경하면서 스릴을 느끼는, 돈을 훔쳐도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념품’으로서 훔치는 별난 도둑이자 유망한 게임개발자, 최강조. 소지섭의 첫 영화 캐릭터는, 두 가지 튀는 직업을 동시에 가진 튀고 또 튀는 인물이다. 최강조는 도둑질 취미 외에 특이한 것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바로 독특한 미감이다. 그가 공략하는 고상태(박상면)의 저택 냉장고에는, 미맹(味盲)에 걸려 매운맛과 신맛을 구별 못하는 안주인(송선미)의 끔찍한 요리가 들어 있는데, 최강조는 그 요리에서 ‘강렬한 맛’을 발견하고 그 맛에 반해버린다. 인생에서 재미와 스릴을 찾는 데 위험을 의식하지 않는, 자기만의 ‘혀’를 가진 이상한 도둑 최강조는, 어떻게 보면 소지섭 자신의 인생관을 연상시킨다.
“인생에서 대박을 노리지 않아요.” 고3 때 292513=storm 카탈로그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원래는 김성재의 백모델이었는데 그의 죽음으로 송승헌과 함께 메인모델이 되었다 한다) <모델>부터 <유리구두>까지 10편가량의 드라마에 출연하고, 8년 만에 스크린에 도전한 소지섭은, “대박이 났으면 벌써 났겠죠”라며, 소박하게 자신의 입지를 되새긴다. 그에게 ‘대박’이란 무엇일까? 최고의 개런티? 최고의 꽃미남이라는 칭호? 소지섭은, 자신은 “꽃미남도 아니”고, “잘생긴 배우도 아니다”라며, 그저 “캐릭터에 나의 개성을 불어넣는다”라고 한다. 아마도 그게 그의 매력일 테다.
“TV에서는 채널 돌아가게만 안 하는 탤런트, 영화에서는 저 사람 나온다고 영화 안 보게 하지만 않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라는 소지섭. 그의 꿈엔 군더더기 하나 없다. 최강조가 기껏 어렵게 고상태의 저택에 침입해 갖고 나오는 게 TV리모컨과 현금 3만원인 것처럼, 그는 삶이건 연기생활이건 간에 ‘대박’보다는 소소한 재미를 노린다. 숱한 시나리오 가운데 <도둑맞곤 못살아>를 택한 것도 “시나리오가 술술 읽히고 무엇보다 혼자 주인공인 게 아니라 천만배우인 박상면 선배가 함께 주연인 작품이라서”라고.
수영선수였던 학창 시절 꿈도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니, 그가 지금 받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는 이미 하나의 대박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정말로 소박하다. <도둑맞곤 못살아>도 자기 배역인 도둑보다 박상면씨의 배역인 가장에 초점을 두고 봐달라고 당부한다. “돈 못 번다고 가장을 무시하면 안 되죠.” 스물여섯 나이인 그 자신, 이미 실질적인 가장이라는 귀띔과 함께. 소지섭은 휴식기인 4개월 반 동안 재활치료와 함께 영어공부를 할 계획을 세웠다. 내년, 평범하고도 특별한 그의 건강한 ‘컴백’을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