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나한테 뭘 잘 못한 것도 아닌데, 나는 무슨 억한 심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충무로 한 켠에 눌러 붙어 자신의 재주 없음에는 아랑곳 없이 소위 ‘스탭 생활’이라는 고행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준비 중인 작품이 아직 촬영에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지만 “누구든 영화를 하겠다는 건 도 닦거나 자학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지난 수개월의 작업 과정에서 이미 “뜨거운 맛을 볼 만큼 봤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영화를 꼭 한 편 제작하고 말겠다는 심산으로 하루하루의 번민을 감내하게 된 데에는 수 년 전부터 무심코 따 먹은 몇 편의 선악과와도 같은 영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갈 수록 내 마음 속에 크게 자리를 잡으며 요즘 들어 부쩍 마음 속에 되뇌이게 되는 작품이 바로 미타니 고키 감독의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원제: 라디오의 시간)이다.
2000년 겨울, 유학생이던 나는 우연히 안면을 트게 된 토니 레인즈의 제안으로 그가 감독한 다큐멘타리 <장선우 변주곡>의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한달 씩이나 자체 휴강(?)을 하고서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하지만 웬 일인지 그 학기의 성적이 가장 좋았는데 이것이 내가 미국의 대학원 교육을 불신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뜻하지 않게 촬영이 취소된 어느 날, 망중한을 달래려고 혼자 찾은 극장에서 야릇한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그 제목 만큼이나 야릇한 충격을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색이 영화이론 전공자이다 보니 그간 숱한 거장들의 쟁쟁한 걸작들을 두루 섭렵해 온 터였지만, 그들 작품에서 ‘참 어안이 벙벙해 지도록 감동적인 명작이군’하는 경외심을 느꼈을 망정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볼 때처럼 ‘이건 정말로 신나는 걸, 저런 걸 언젠가 꼭 한번 만들어 볼 테야’하는 강한 의지를 느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무심코 끌려 나간 미팅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작고 야무진’ 영화다.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드라마의 리허설을 마치고 휴식 시간을 거처 본 방송이 끝나기까지 단 수 시간 동안 작가와 출연자, 스탭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이 영화의 전체 스토리이다. ‘하나의 장소에서 제한된 인원으로 순식간에’ 승부를 내는 감독의(그는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 출신이다.) 번뜩이는 기지와 연출력에는 정말이지 매장면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이처럼 극도로 압축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의 이야기는 더 없이 풍부하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군상과 그들 사이의 갈등이 매우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형상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캐릭터들의 ‘한 없이 사랑스러움에 가까운 소심함 (혹은 치졸함)’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결국 이 변변치 못한 방송계의 2부 리거들을 마음 속으로 껴안게 만든다.(그래서인지 나는 영화 속의 인물들이 현재의 내 자신에 대한 일종의 직업적 메타포라는 생각마저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 열렬히 환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영화 속의 세계가 참으로 ‘신나고’ 그 속에서 열연하는 배우들 역시 너무나 ‘행복’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그 현장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흥에 겨운 장면들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불행으로 가득 찬 현장에서 작업했을 리는 없다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신명이 나서 작업에 참여했을 스탭들과 배우들의 현장 모습을 내 마음대로 상상해 보면서 겪어 보지도 못한 이 영화의 촬영장에 대한 막연한 동경마저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웰컴 미스터맥도날드>는 언젠가 치르게 될 시험에 대비해 미리 만들어 둔 모범 답안, 아니면 컨닝 페이퍼 같은 영화이다. 언젠가 ‘작지만 야무진’ 작업을 통해서 참가자 모두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 말리라 다짐하며 내 마음대로 상상해 본 엉터리 이데아의 세계라고나 할까….